후기

제목[장자강독] 소요유 22021-04-02 15: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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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요유> 뒷부분입니다. 역시 <장자익>에 실린 곽상주까지 옮겼습니다. 만만치는 않은데, 그래도 좀 길을 찾아가고 있어요. 3월 마지막 주부터 <제물론>을 강독하는데, <제물론> 번역은 더 ... 커다란 모험입니다. <장자> 전문을 번역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바로 <제물론>의 난해함 때문이지요. 기왕 시작한 것이니 여튼 꾸역꾸역 초역본이라도 만들어 놓습니다.

* 곽상 주석에 대해서는 조금 더 익숙해져야겠는데, 그래도 슬슬 그가 이야기하는 게 무슨 내용인지 감이 오네요. 다만 그의 주속을 번역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따로 설명이 필요할텐데, 나중에 길을 찾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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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오가 연숙에게 말했어. "내가 접여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데 터무니없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더군. 나는 그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했지. 끝도 없이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어찌나 황당무계하던지 상식에 어긋난 이야기뿐이더라고." 

연숙이 말했어. "뭐라 말했길래?" 


"막고야산에 신묘한 사람이 살고 있데. 피부가 마치 눈처럼 뽀얗고, 여인과 같은 자태를 가졌다나. 헌데 곡식은 먹지 않고 바람과 이슬을 마신 다지. 구름을 타고, 용을 부리며 세상 밖으로 노닌다네. 신묘함을 모아 병을 고치기도 하고 곡식을 여물게 한다지. 그 말이 너무 어처구니 없어 믿지 못하겠더라구." 


"그래? 맹인과는 화려한 풍경을 함께 구경할 수 없고, 농인과는 아름다운 음악을 함께 들을 수 없는 법이지. 어찌 몸뚱이에만 맹인이나 농인이 있겠어. 앎에도 그런 게 있지. 바로 너를 두고 하는 말이야. 그 사람이 가진 덕이란 만물과 함께 뒤섞여 하나가 되고자 하는 거야. 세상이 이처럼 어지러운데 누가 애써 천하를 다스리려고 하겠어. 그 사람은 누구도 해칠 수 없어. 큰 홍수가나 나서 하늘까지 물이 차올라도 그는 멀쩡하고, 쇠와 돌이 흘러내리도록 산이 불타더라도 거뜬하지. 또 먼지나 쭉정이 같은 것으로도 요순 같은 인물을 빚어낼 수 있는 사람이니, 세상일에 연연하겠는가. 


송나라 사람이 관모를 팔려고 월나라로 갔다는 이야기가 있다네. 헌데 월나라 사람은 머리를 짧게 깎고 몸에 문신을 하는데 관모가 무슨 쓸모가 있겠어. 결국 빈 손으로 돌아왔다지. 요임금은 천하 백성을 다스리고 세상을 평안케 했지. 헌데 그도 막고야 산에 올라가 네 명의 성인을 만난 뒤에는 돌아오는 길, 분수汾水에서 멍하니 천하 일을 잊어버렸다더라고."


肩吾問於連叔曰。吾聞言於接輿。大而無當。往而不返。吾驚怖其言。猶河漢而無極也。大有徑庭。不近人情焉。

連叔曰。其言謂何哉。

曰藐姑射之山。有神人居焉。肌膚若氷雪。淖約若處子。不食五穀。吸風飲露。乘雲氣。御飛龍。而遊乎四海之外。其神凝使物不疵癘。而年穀熟。吾以是狂而不信也。

連叔曰。然。瞽者無以與乎文章之觀。聾者無以與乎鍾鼓之聲。豈唯形骸有聾盲哉。夫知亦有之。是其言也。猶時女也。之人也。之德也。將磅礴萬物以為一。世蘄乎亂。孰弊弊焉以天下為事。之人也。物莫之傷。大浸稽天而不溺。大旱金石流。土山焦。而不熱。是其塵垢粃糠。將猶陶鑄堯舜者也。孰肯以物為事。

宋人資章甫而適諸越。越人斷髪文身。無所用之。堯治天下之民。平海内之政。往見四子藐姑射之山。汾水之陽。窅然喪其天下焉。


【郭注】


이는 모두 예로 든 이야기일 뿐이다. 신인神人은 곧 성인聖人이다. 성인이 비록 조정의 궁중에 있다 하더라도 그 마음은 산속에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세상 사람들이 어찌 이것을 알까. 누런 집에 살고 옥새를 차고 있다는 것을 보면 마음이 매여있겠구나 하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백성을 돌보면 정신이 메말라있겠구나라고 한다. 지극한 사람의 충만함을 어찌 알까. 여기서 덕이 지극한 사람이 산에 산다고 말한 것은, 세속의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함이다. 그러므로 까마득히 먼 곳을 이야기하여 직접 보고 듣는 것들을 생각하도록 할 뿐이었다. 


處子 : 바깥의 것으로 안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不食五穀,吸風飲露 : 신인神人, 신묘한 사람은 오곡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오묘한 기운을 따를 뿐이라는 뜻이다. 신묘영험함을 터득하고 지극히 오묘한 것을 탐구하는 사람은 비록 고요히 집 안에 거하더라도 사해 바깥의 존재들과 아득히 함께 한다. 그러므로 음양의 기운을 타고, 우주의 기운(六氣)을 부리면서도 사람들과 함께하며 만물을 다룬다. 모든 사물이 그를 따르니 구름에도 탈 수 있다. 모든 것을 다룰 수 있으니 용도 부릴 수 있다. 자신을 버려두나 자유롭다. 그러므로 움직임은 마치 마른나무를 끌고 다니는 것 같고, 멈춤은 불 꺼진 재를 모아둔 것과 같다. 이런 까닭에 정신을 모은다(神凝)라고 하였다. 정신을 보았으니 모으지 않은 것은 자유롭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제가 보는 것으로만 단정하니 어찌 이런 말을 믿겠는가. 지극한 가르침의 지극히 오묘함을 알지 못하면서 헛소리라고 믿지 않으니 이런 사람이 앎의 농인이나 맹인이다. 


是其言,猶時女 : 접여는 자연스레 사물의 필요를 이룬다고 말하나 앎의 농인이나 맹인은 도무지 그럴 수 없다고 여긴다는 뜻이다. 성인의 마음은 음양의 지극한 움직임을 법칙으로 삼고, 만물의 오묘한 숫자를 탐구한다. 그러므로 변화를 따르며 무엇이든 할 수 있다. 


磅礴萬物 : 만물이 모두 그러하다. 세상이 어지럽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나를 찾지만 나는 무심하다. 내가 무심하다 하더라도 어찌 세상일에 상관치 않을까. 만물의 본성을 따르며 천하를 빚어내 요순의 다스림을 이루니, 다스리지 않음으로 다스릴 뿐이다. 누가 애써 그렇게 정신을 수고롭게 하며 일을 만들어 일을 한 뒤에야 가능하다고 할까. 


物莫之傷 : 다침을 편안하게 여기니 해치더라도 다치지 않는다. 해치더라도 다치지 않으니 사물이 그를 해칠 수 없다. 어디든 편안하니 머무는 곳이 모두 마땅한 자리이다. 삶이나 죽음이나 나를 바꾸지 못하는데 물에 빠지고 불에 타는 것 따위는 어떻겠는가. 그러므로 지극한 사람(至人)이 화를 입지 않는다는 것은 피한다는 것이 아니다. 마주한 사태의 이치를 탐구하여 자연스레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堯舜 : 세상일을 부르는 이름일 뿐이다. 이름 붙였다는 것은 본디 이름이 아니다. 요순이라 하는 것이 어찌 단지 요순을 일컬은 것이겠는가. 반드시 신묘한 사람의 실질이 있어야 한다. 지금 요순이라 하는 것도 다만 먼지나 쭉정이에 붙인 이름일 뿐이다. 월나라 사람에게 관모가 쓸모없었던 것처럼 요가 천하를 다스리는데 쓸모가 없었다. 그러나 천하를 내버려 두는 것이 참으로 천하가 바라는 것이다. 비록 천하가 요를 바란다 하였지만 요는 천하를 소유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멍하니 천하를 잊고, 가 없는 경지에 마음을 노닐었다. 비록 천하 사람의 윗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자유롭게 노닐지 않은 적이 없었다. 


네 명의 신묘한 사람은 예로 든 것이다. 요가 늘 한결같은 요가 아님을 설명하고자 했다. 요가 아득히 만물과 하나가 되었어도 요의 흔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요를 보고 요라고 여기고 그가 아득히 만물과 하나가 됨은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세상 바깥의 네 신인을 예로 들어 눈에 보이는 요와 견주었다. 사물과 더불어 어지러이 흔들리는 사람은 그 자유롭게 노닐지 못한다. 지극히 원대한 자가 따르는 것은 가까운 것이며, 지극히 높은 자가 도리어 낮아진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고집을 피우며 홀로 높아지고자 하며, 세속에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산속에 은거하는 선비가 그렇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는 자유로운 자가 아니다. 어찌 그런 사람이 지극한 이치를 말하고 끝없는 세계에 노닐 수 있겠는가. 


此皆寄言耳。神人即聖人也。夫聖人雖在廟堂之上。然其心無異於山林之中。世豈識之哉。徒見其戴黄屋佩玉璽。便謂足以纓紼其心矣。見其歷山川同民事。便謂足以憔悴其神矣。豈知至足者之不虧哉。今言至德之人。而寄之此山。將明世無由識。故乃託之於絶垠之外。而推之於視聽之表耳。

處子者不以外傷内也。不食五穀吸風飲露者。明神人非五穀所為。而特禀自然之妙氣也。夫體神居靈。而窮理極妙者。雖静黙間堂之裏。而玄同四海之表。故乘兩儀而御六氣。同人羣而驅萬物。茍無物而不順。則浮雲斯乘矣。無形而不載。則飛龍斯御矣。遺身而自得。故行若曳枮木。止若聚死灰。是以云其神凝也。其神凝。則不凝者自得矣。世皆齊其所見而斷之。豈嘗信此哉。不知至言之極妙。而以為狂而不信。此智之聾盲也。

是其言猶時女者。謂此接輿之所言者。自然為物所求。但智之聾盲者謂無此理也。夫聖人之心。極兩儀之至會。窮萬物之妙數。故能體化合變。無往不可。

磅礴萬物。無物不然。世以亂故求我。我無心也。我茍無心。亦何為不應世哉。其所以會通萬物之性。而陶鑄天下。以成堯舜之治者。常以不為為之耳。孰弊弊焉。勞神苦思。以事為事。然後能乎。

物莫之傷者。言安於所傷。則傷不能傷。傷不能傷。而物亦不傷之也。無往而不安。則所在皆適。死生無變於己。况溺熱之間哉。故至人之不嬰乎禍難。非避之也。推理直前。而自然與吉會也。

堯舜者世事之名耳。為名者非名也。故夫堯舜者豈直堯舜而已哉。必有神人之實焉。今所稱堯舜者。徒名其塵垢粃糠耳。夫堯之無用天下為。亦猶越人之無所用章甫也。然遺天下者。固天下之所宗。天下雖宗堯。而堯未嘗有天下也。故窅然喪之。而常遊心于絶冥之境。雖寄坐萬物之上。而未始不逍遥也。

四子者。蓋寄言。以明堯之不一於堯耳。夫堯實冥矣。其迹則堯也。世徒見堯之為堯。豈識其冥哉。故將求四子於海外。而據堯於所見。因謂與物同波者。失其所以逍遥也。然未知至逺之所順者更近。而至髙之所會者反下也。若乃厲然以獨髙為至。而不夷乎俗者。斯山谷之士。非無待者也。奚足以語至極。而遊無窮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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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시가 장자에게 말했어. "위왕께서 나에게 커다란 박씨를 주셨다네. 그것을 심었더니 과연 커다란 박이 열리더군. 다섯 섬을 넣을 정도였어. 헌데 거기에 물을 담았는데 단단하지 않아 제대로 세워둘 수가 없어. 잘라서 바가지로 쓰려고 했지만 망가져 쓸 수가 없어. 정말 크기는 하더만 아무 쓸모가 없어 부숴버렸다네." 


장자가 말했어. "선생께서는 큰 것을 쓸 줄을 모르십니다. 손을 트지 않게 하는 연고를 잘 만드는 송나라 사람이 있었지요. 대대로 솜을 빨아 생계를 꾸리는 사람이었습죠. 한 나그네가 그 소식을 듣고 찾아와 그 비법을 사고자 했답니다. 무려 백 금을 주겠다 했어요. 그러니 가족들이 함께 모여 의논할 수밖에요. 우리는 대대로 솜을 빨아 살았는데, 큰 돈을 만져본 일이 없다. 오늘 하루아침에 비법을 팔아 백 금을 얻을 수 있게 되었으니 팔아버리자. 나그네는 비법을 가지고 오나라 왕에게 유세했지요. 마침 월나라와 전쟁이 벌어졌는데 오나라 임금이 그를 장수로 삼았어요. 한 겨울 월나라 사람들과 수전을 벌이는데, 그 연고 덕분에 월나라에게 큰 승리를 거두었지요. 그 공으로 나그네는 봉지를 받았답니다. 손을 트지 않게 하는 건 똑같아요. 그런데 누구는 봉지를 받았고, 누구는 여전히 솜빠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바로 다르게 썼기 때문입니다. 


지금 다섯 섬 들이 박을 가지고 있다 하셨지요. 그것을 통째로 물에 띄워 놓고 올라타면 어떨까요?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고 불평만 하시니 선생께서는 꽉 막힌 생각에 갇혀 계십니다 그려." 


또 다른 날 혜시가 장자에게 말했데. "나에게 커다란 나무가 있소. 사람들이 그걸 못쓸 나무라 부르더군. 밑동에는 옹이가 있어 재단해 쓸 수가 없고, 가지는 이리저리 휘어져 물건을 만들 수가 없지. 떡 하니 길 한복판에 심어져 있어도, 목수가 쳐다보지도 않아. 자네가 꼭 그런 꼴이네. 크기만 하고 쓸모가 없어. 그러니 사람들이 자네를 무시하는 게야."


장자가 말했어. "살쾡이를 아시지요? 몸을 낮추고 기어가 작은 동물을 덮칩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오르락내리락하며 제 세상인 듯 쏘다니다가도 덫에 걸려 목숨을 잃어버립니다. 저 커다란 소는 어떻습니까? 하늘의 구름처럼 커다란 몸집을 가지고 있어요. 크기는 합니다만 굼떠서 쥐새끼 한 마리도 못 잡습니다. 


큰 나무를 가지고 계신다 하셨지요. 그게 쓸모가 없어 걱정이라구요. 그것을 어느 것도 없는 가 없이 막막한 들판에 심어둔다면 어떻겠습니까? 어슬렁거리며 그 곁을 돌아다녀도 좋고, 느긋하니 그 아래서 잠을 자도 좋습니다. 잘려 나갈 일도 없고, 해칠 사람도 없을 겁니다. 쓸모가 없다며 고민할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惠子謂莊子曰。魏王貽我大瓠之種。我樹之成。而實五石。以盛水漿。其堅不能自舉也。剖之以為瓢。則瓠落無所容。非不呺然大也。吾為其無用而掊之。

莊子曰。夫子固拙于用大矣。宋人有善為不龜手之藥者。世世以洴澼絖為事。客聞之。請買其方百金。聚族而謀曰。我世世為洴澼絖。不過數金。今一朝而鬻技百金。請與之。客得之以說吳王。越有難。吳王使之將。冬與越人水戰。大敗越人。裂地而封之。能不龜手一也。或以封。或不免於洴澼絖。則所用之異也。

今子有五石之瓠。何不慮以為大樽而浮乎江湖。而憂其瓠落無所容。則夫子猶有蓬之心也夫。

惠子謂莊子曰。吾有大樹。人謂之樗。其大本擁腫而不中繩墨。其小枝卷曲而不中規矩。立之塗。匠者不顧。今子之言。大而無用。衆所同去也。

莊子曰。子獨不見狸狌乎。卑身而伏。以候敖者。東西跳梁不避髙下。中於機辟死於網罟。今夫斄牛。其大若垂天之雲。此能為大矣。而不能執鼠。

今子有大樹。患其無用。何不樹之於無何有之鄉。廣莫之野。彷徨乎無為其側。逍遥乎寢卧其下。不夭斤斧。物無害者。無所可用。安所困苦哉。


【郭注】


그 연고는 손이 갈라 터지지 않도록 한다. 그러므로 늘 물에서 솜 빨래할 수 있었다. 


蓬 :직접 도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작고 큰 사물이 그 정해진 법칙을 잃으면 이롭거나 해롭게 되는 이치가 같다. 쓰임에 맞게 사용하면 사물은 모두 자유로이 노닌다. 


其藥能令手不拘坼。故常漂絮於水中。蓬非直達者也。蓋言小大之物。若失其極。則利害之理均。用得其所。則物皆逍遥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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