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포스트휴먼] 비판적 사유가 아닌 사유에 대한 비판적 태도2021-10-06 10:3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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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로지 브라이도티_포스트휴먼 2장 발제문 .hwp (98.5KB)

포스트휴먼2장 탈-인간중심주의: 종 너머 생명

 

포스트휴머니즘 이외에도 탈-인간중심주의를 내세우는 이론과 실천들은 많다. 이번 장에서 로지 브라이도티는 여러 탈-인간중심주의 이론과 자신이 주장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의 차이에 대해 다룬다. 이 차이의 관건은 고전적 휴머니즘을 절대화하지 않으면서, 얼마나 부정보다는 긍정에 가까운 태도를 유지하는가에 있다. 무엇이 우리를 반인간주의와 탈-인간중심주의 너머 로지 브라이도티가 말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의 세계를 이해하게 만들어 줄까?

 

-인간중심주의를 사유하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되어주는 철학자는 스피노자(1632~1677)이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1596~1650)와 거의 동시대를 살았지만, 추구하는 철학은 몹시 달랐다. 스피노자와 데카르트의 차이는 세계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왔다. 스피노자는 신체와 정신을, 한 속성의 두 다른 양태(양상)으로 보았다. 반면 데카르트는 신체와 정신이 분리되어 있고, 그 둘을 이어주는 기관이 우리 몸속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데카르트의 세계관이 이원론이라면, 스피노자의 세계관은 일원론이다. 인간의 신체와 정신뿐 아니라 세계를 이루는 모든 물질이 스피노자의 철학에서는 단일한 속성에서 비롯된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신은 창조자가 아니라 세계의 근원이며, 이 근원에서 비롯된 만물에는 위계가 존재할 수 없다. 68혁명 이후 유럽의 철학자들은 스피노자의 일원론을 급진적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관계에 바탕을 둔 이 생명과 물질 개념은 현대 과학의 발견들과도 연결된다.

 

스피노자의 시대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스피노자의 세계관이 낯설지 않다. 자본주의는 생산과 소비를 증진하기 위해 인간을 기계나 인간-아닌 존재와 유사하게 취급하면서 범주를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 때로는 차이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면서 문화적 타자들을 소비하라고 유혹한다. 자본주의는 과학기술의 매개를 통해 탈-인간중심주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이에 대한 저항 역시 탈-인간중심적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페미니즘과 환경운동, 동물권 운동에서 이루어지는 이런 탈-인간중심적 저항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며, 포스트휴머니즘과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고전적 휴머니즘에서 말하는 인간(안트로포스)의 권리를 인간-아닌 존재들에게 확장하면서 범주를 넓혀가는 방식의 저항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모든 차별과 배제의 원인이었던 고전적 휴머니즘으로 다시 복귀해가면서 지금의 체제를 영속시키려 한다는 점이 문제이다.

 

-인간중심주의 이론과 실천들이 현실적으로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고정된 인간범주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공동체 안에서 인류의 윤리적 책임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영향력이 크다. 그렇다고 여기에 만족할 수는 없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포스트휴먼을 이야기할 때 비판적 사유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비판적 사유를 넘어 사유 자체가 무엇인지를 전면적으로 다시 고려해야 한다.

 

포스트휴머니즘에 필요한 무기는 비판적 사유보다는 인간의 사유 행위 자체를 재검토하는 일이다. 인간의 사유가 언어에 기대고 있다면,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탈-인간중심주의의 한계는 명백하다. 인간의 도구인 언어만으로는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우리가 언어와 사유로만 채우던 자리에 신체의 변용을 통한 상상력을 끌어온다. 일원론을 넘어서는 이 힘은 정신의 체현과 신체의 두뇌화”(114)로 표현된다.

 

우리 생명을 구축하는 이 새로운 힘은 내부의 타자성을 부정하지 않는 분열된 주체성으로 체현된다. 이 주체성을 통해 공동체는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다. 우리가 흔히 지구의 문제를 거론하면서 갖게 되는 태도들인 부채감과 죄의식, 취약성의 공유와는 다른 방식이다. 타자들과의 상호의존성과 공감, 인정이 새로운 공동체를 실현할 수 있게 한다. 로지 브라이도티에게 주체는 어디까지나 죄의식보다 욕망, 부정보다는 긍정을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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