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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리딩R&D] 양자역학, 알고 보니 대단한 발견2021-10-06 20: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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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스토리1부 작용양자

 

양자역학의 초기 역사는 고전역학과 결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19세기 후반 뉴턴으로 대표되는 고전역학은 거의 완성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리학자들은 이제 자신들이 할 일이 더는 없겠다고 걱정했다. 그로부터 100년도 더 지난 지금 우리가 양자역학사를 돌아보면, 그 시기는 태풍 전야와도 같았다. 분명하게만 보였던 모든 것이 뒤바뀌고, 젊은 학자들이 낯선 개념과 계산에 몰두하면서 새로운 이론을 쏟아낼 시기가 곧 다가오려는 참이었다. 물론 그 시기를 열심히 헤쳐나간 학자들 역시 자신들이 무엇을 발견했고 어떤 시기를 살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알수록 대단한 동시에 알수록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 혁명의 도화선, 막스 플랑크

고전적인 열역학을 연구하던 막스 플랑크는 근면하고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엔트로피가 감소할 수도 있다는 볼츠만의 열역학 제2법칙 해석을 반박하기 위해 흑체복사를 연구하던 플랑크는, 온도와 진동수에 대한 복사 공식을 유도해냈다. 공식을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공식의 의미까지는 밝혀내지 못했던 플랑크는 점점 엔트로피와 에너지의 관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19001214일 자신의 공식을 해석하기 위해 새로운 상수를 하나 도입하면서 플랑크는 역사에 남을 선언을 한다. “모든 에너지는 분명한 값을 갖는 아주 작은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불을 붙인 이도 깨닫지 못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혁명의 기운이 번지기 시작했다.

 

- 1905,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905년 아인슈타인은 자기 인생과 과학사를 뒤바꿀 논문을 연이어 발표했다. 플랑크의 복사 법칙의 성립에 필요한 작은 에너지 알갱이(광양자-광자)에 대한 논문, 분자의 물리적 실체와 운동 방식 분석에 대한 논문들, 특수상대성이론 관련 논문들이었다. 아인슈타인은 고전이론으로는 플랑크의 발견을 해석할 수 없음을 간파했다. 에너지양자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아인슈타인은 빛의 입자설과 파동설이 양립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플랑크의 발견이 가진 의미를 알아보았던 아인슈타인이지만, 아인슈타인의 양자가설 입장은 조심스러웠다. 막스 플랑크 역시 빛의 양자가설을 거부했으나, 1905년 양자혁명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 에너지의 불연속성, 닐스 보어

양자역학은 원자 연구에도 영향을 미쳤다. 막스 플랑크가 원자의 존재를 믿지 않다가 자신의 발견을 통해 원자에 집중하게 되었듯이, 이 시기에는 고전물리학의 범주 밖에서 원자를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많이 나타났다. 기존의 원자 설명을 의심했던 닐스 보어는 아인슈타인과 유사한 방식으로 전자의 에너지가 불연속적이라고 가정했다. 전자 에너지의 불연속성은 원자의 구조에서 중요한 문제였고, 에너지의 불연속성은 양자역학을 예고하는 혁신적 발상이었다. 전자의 궤도 특성인 양자수와 두 궤도 사이의 도약인 양자도약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면서, 양자역학에서 인과법칙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기 시작했다.

 

- 물질은 파동이다, 루이 드 브로이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을 통해 에너지와 질량이 동등하게 교환될 수 있음을 밝혔다. 에너지는 질량은 물론 진동수와도 연결된다. 루이 드 브로이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모든 전자에 적용하여, 전자를 파동으로 간주하였다. 이때 모든 물체는 파동으로 존재하게 되는데 우리가 이를 감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주 미시적인 규모에서만 관측되기 때문이다. 브로이의 가설은 기발했지만 양자도약에 대한 충분한 설명으로 이어지지도 못했고, 학계의 인정을 받지도 못했다. 아인슈타인은 브로이의 연구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양자도약이 확률 계산의 문제로 접어드는 현상을 반기지 않으면서 양자역학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 추론보다 입증이 중요하다, 하이젠베르크

1920년대 중반이 되면 기존 물리학 이론으로 양자역학을 공격하려는 시도들은 대부분 실패한다. 닐스 보어의 제자였던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원자의 내부 구조를 이해하려면 양자역학을 도입해야 한다는 막스 보른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의 추론에서 눈에 보이는 증거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는 원자를 서술하는 새로운 언어의 발견과도 같은 일이었다. 당시의 양자역학은 결과값에서 시작하여 거꾸로 이론을 추론해가는 방식이었다. 하이젠베르크가 이 결과들 사이의 관계에서 새로운 법칙을 발견하여 일부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게 함으로써, 양자역학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 전자의 배타원리, 볼프강 파울리

볼프강 파울리도 하이젠베르크처럼 보어의 영향을 받았다. 전자에 대한 고전적 이론을 거부한 파울리는 원자 속 전자들에서 일정한 배타원리를 발견했다. 이 배타원리는 전자들이 낮은 에너지 궤도로 몰리는 일을 막아주어, 다양한 원소들이 존재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따금 학자들은 중요한 발견만큼이나 큰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하나의 궤도에 수용 가능한 전자 수가 두 개인 이유에 대한 답으로 랠프 크로니히가 전자의 자전을 제안하는데, 파울리는 너무 쉽게 이 제안을 무시해버린다. 크로니히가 연구를 중단한 이후 보어가 아인슈타인에게서 영감을 받아 전자의 자전과 유사한 전자의 스핀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 파동역학, 에르빈 슈뢰딩거

당시에 주목받던 젊은 물리학자들과 달리 에르빈 슈뢰딩거는 삼십대 후반까지도 양자역학과 관련된 중요한 발견을 하지 못했다. 업적에 대한 부담과 양자역학에서 소외되는 상황에서도 슈뢰딩거는 아인슈타인과 다른 젊은 학자들의 이론에 계속 관심을 보인다. 특히 파동을 다루려면 파동방정식이 필요하다는 디바이의 의견을 받아들여 파동방정식에 몰두한다. 파동방정식을 통해 양자역학은 추상적 영역에서 가시적 영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파동역학은 위치-운동량 교환관계를 나타내며,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과도 연결된다. 초기에 슈뢰딩거와 하이젠베르크가 서로의 발견이 같은 의미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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