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SF X 페미니즘] 과학과 SF의 친숙하고도 괴이한 관계 (프랑켄슈타인 1부 발제)2023-02-08 09: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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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서문 & 1

 

종종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최초의 SF로 꼽는다. 그만큼 프랑켄슈타인은 초기 SF의 특징과 지향점들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초기 SF 작가들은 현대과학이라는 전문영역과 지성을 통해 자신들의 작품을 과거의 문학과 차별화하려고 했다. 동시에 자신들의 작품이 문학이라는 영역 안에 온전히 속하기를 바랐다. 이들에게 SF는 문학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기존 문학과는 다른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영역이었다.

 

메리 셸리의 남편 퍼시 비시 셸리가 쓴 이 책의 짧은 서문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그는 참신한 소재로 재미를 더했으며, 물리적인 현실성이 떨어질지언정 진부한 사건을 평범하게 엮은 이야기들(기존 문학)에 비하면 인간의 열정을 더욱 포괄적이고 감동적으로 다루는 새로운 상상의 관점을 제시한다.’(12)고 말한다. ‘이 파격 혹은 규칙’, ‘무료함을 달래는 동시에 시도해보지 않은 정신적 자산을 표출한다고 하는 표현도 비슷한 맥락이다.

 

과학에 대한 애호와 지성에 대한 집착은 이 소설 전반에 걸쳐 강하게 드러난다. 초기 SF 작가들은 SF가 최신 과학을 소재로 삼아야 한다고 여겼다. 미신을 넘어선 새로운 학문, 최신 과학의 성과들, 믿음이나 신비함보다는 지성에 대해 말하는 소설을 SF라고 주장했다. 소설의 등장인물인 프랑켄슈타인 역시 연금술 같은 고대 과학에 심취했다가 실망하고 현대과학에 경도되었으며 지식을 추구하는 일에 몰두하는 인물이다.

 

흥미로운 점은 SF가 문학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보이듯 과학에 대해서도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SF는 기존 문학을 비판하면서도 문학의 역사 안에 속하고자 한다. 마찬가지로 SF는 과학을 숭배하는 동시에 과학에 대해 의심하고 회의하는 시선을 유지한다. SF 작가들은 과학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리라는 점을 알아보았으며, 그 모든 것에는 새로운 세계로의 전환과 파멸의 가능성이 공존한다는 사실도 짐작했다.

 

소설 프랑켄슈타인1816년 셸리 부부와 바이런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여름을 보내던 시기에 시작되었다. 세 사람은 초자연적인 사건을 소재로 이야기를 한 편씩쓰기로 했다. 과학을 숭배하는 SF판타지라는 영역을 자기 내부에서 제거하려고 했으나, 판타지는 SF와 태생부터 함께했다. 이 책의 서문에서는 시시한 유령 이야기나 마법 이야기의 허점을 거부’(11)한다고 했으나, 이 새로운 동시에 전통적인 문학 역시 초자연적인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이유로 미신을 거부하는 과학의 서사는 수많은 과학자의 이름과 과학 지식의 나열에도 불구하고, 으스스한 분위기와 불안한 인간의 정서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더 탁월한 매력을 드러낸다. ‘불멸이나 특별한 힘을 탐구하던’(57) 고대 연금술의 질문은 인체의 구조생명의 원천’(63)에 대한 현대과학의 질문으로 연결된다. 그렇게 청년 프랑켄슈타인은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를 가르는 죽음이라는 존재론적 주제에 빠져든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이미 죽은 몸에 생명을 불어넣을 방법을 찾게 된 프랑켄슈타인은 지식의 습득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는 자기 연구의 성공, 즉 피조물이 깨어난 일을 참사’(71)라고 표현한다. 피조물이 깨어나자 프랑켄슈타인의 삶은 그 자체로 악몽이 된다. 피조물과 대면하는 일을 수년 동안 피해오던 그는 멀리 고향에 있던 동생의 죽음을 알게 되었고, 피조물이 자기 동생을 죽였으리라 확신한다.

 

수년을 몰두하던 연구과제였던 피조물은 어느새 프랑켄슈타인에게 자기 삶을 망친 존재가 되었다. 액자식으로 구성된 소설의 앞부분은 북극으로 탐험을 떠나는 중에 프랑켄슈타인을 구조한 탐험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이십 대 초반에 만든 피조물을 평생 쫓아 지구의 끝까지 가게 되었을까? 왜 피조물이 자기 동생을 죽였다고 여길까? 왜 처음부터 피조물과의 대면을 거부했을까? 생기 없는 피조물의 흉측한 외모 때문에?

 

우리는 모두 이 소설을 쓴 메리 셸리가 여성임을 알고 있다. 정치철학자인 아버지와 페미니즘 이론가로 유명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딸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 소설에서도 페미니즘의 분위기가 진하게 풍기지 않을까 기대할 수 있는데, 분위기는 의외로 잔잔하다. 소설의 주요 화자는 모두 남성이며, 사건은 남성들 위주로 굴러간다. 메리 셸리를 낳고 얼마 후 죽은 어머니와 메리 셸리 사이에는 접점이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소설은 급진적인 페미니즘과는 조금 다른 면에서 젠더에 대한 비유들로 가득 차 있다. 메리 셸리는 학문이라는 영역에서도 사회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성역할의 구분 같은 무엇이 존재함을 간파했다. 메리 셸리가 보기에 과학은 남성의 영역이었고, 문학은 여성의 영역이었다. 윽박지르고 면박을 주면서 지식을 가르치는 이들(크렘페 교수)과 자상하고 온화하며 겸손하게 가르치는 이들(발트만 교수)이 명확하게 구분되었다.

 

주요 화자와 등장인물을 남성으로 설정했지만, 이들에게서는 일반적인 남성과는 다른 분위기가 엿보인다. 모두 온화하고 자상하며 함께 우정을 나눌 만한 이를 찾는다. 어떤 면에서 이 남성들은 현실의 남성이라기보다 메리 셸리가 살고자 했던 또 다른 삶의 모습들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책을 읽었으나 정규교육을 받지 못해 자신감이 없는 상태로 북극 탐험을 떠나는 남성과 가족의 죽음을 슬퍼하며 죽은 이를 되살려내려는 남성이 바로 그들이다.

 

SF가 지향하는 유토피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토피아는 우리 현실이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더 강하게 드러낸다. 여성 작가에게 SF는 현실의 고통을 직시하고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공간이다. 바이런과 셸리 부부가 글을 쓰기로 한 후 글을 완성한 이는 여성인 메리 셸리뿐이었다. 과학과 SF는 여성을 거부하려 했지만, 여성들은 과학과 SF에서 자신들이 생존할 가능성을 엿본다. 지금 이 세계에서 가능하지 않다면, 다른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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