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SF X 페미니즘] 창조자와 피조물의 이야기 (프랑켄슈타인 2부 발제)2023-02-15 09: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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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2

 

2부에서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다시 만난다. 빅토르는 쥐스틴의 억울한 죽음과 가족들의 슬픔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죄책감과 함께 자신의 피조물에 대해 책임감도 느낀다. ‘내가 풀어놓은 마귀의 악행에 그들을 무방비로 놔둔 채 비겁하게 도망쳐서야 되겠습니까?’(125) 그러나 빅토르는 죄책감과 책임감 속에서 고립되어 자신이 처한 상황을 피해 달아나기에만 바쁘다.

 

빅토르는 자기 피조물이 태생부터 사악하다고 믿는다. 또 아무것도 모른 채 갑자기 생명을 얻은 이 피조물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관심이 없다. 빅토르에게 중요한 문제는 자신이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뿐이다. 이 죄책감은 빅토르가 자신이 피조물보다 우월한 존재임을 확인하는 증거로 작용한다. ‘! 어째서 인간은 짐승보다 우월한 감성을 지녔을까요? 그래봐야 더욱 얽매이기만 할 뿐인데.’(133)

 

그는 계속 다가오더군요. 얼굴에는 경멸과 전의가 뒤섞인 고통이 엿보였지만, 끔찍한 모습은 인간의 눈으로 견딜 수 없을 만큼 오싹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분노와 증오로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혐오와 경멸의 독설을 퍼부었지요.’(135) 피조물과 다시 만났을 때 빅토르는 일말의 책임감과 동정심도 묻어둔 채 인간 아닌 존재에 대한 혐오를 복수심과 섞어서 드러낸다.

 

피조물은 제발 자기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읍소한다. 갑자기 거대한 몸으로 생명을 얻은 피조물에게 세상은 혼란스럽고 가혹했다. 자신을 창조한 빅토르가 그를 버린 뒤 아무도 그에게 온정을 베풀어주지 않았다. 피조물은 그 이유를 자신이 인간과 다르다는 점에서 찾는다. 인간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피조물의 외모와 우월한 신체, 뛰어난 생존능력은 이후에 인간이 기이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 칭하게 될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인간은 자신들보다 우월한 존재도, 열악한 존재도 허락하지 않는다. 신체 능력과 외모가 모두 자신들이 규정한 정상 범위 안에 있어야만 인간으로 받아들여진다. 빅토르의 피조물은 짐승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며, 그렇다고 신도 아니다. 인간은 상상 속에서 신을 만들어내지만, 현실에서는 지구상 어떤 존재도 인간의 우월한 지위를 넘어서지 못하리라고 단언한다. 그러므로 피조물이 인간보다 능력이 우월하다고 해서 인간과 함께 어울릴 수는 없다.

 

피조물은 인간의 삶과 언어, 문자를 어렵사리 익혔지만, 극한의 고립 속에서 인간을 피해 다니며 살아간다. 인간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거나 함께 어울리고 싶은 마음은 거듭하여 고통스러운 거절로 되돌아온다. 이런 과정에서 괴물의 외양을 지녔던 피조물은 때로는 방화와 살인 같은 악마의 행동도 하게 된다. ‘괴물악마가 되는 과정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럽다. 빅토르가 아무런 증거 없이도 피조물의 악행을 예상했던 대로.

 

빅토르와 피조물 둘 다 고립 속에서 고통받는다. 피조물은 인간 안에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고립 속에서 고통을 호소한다. 우연히 만난 빅토르의 동생을 죽였던 피조물은 빅토르에게 자신의 동료를 만들어달라고 간청한다. 빅토르는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고립된다. 피조물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죄다. 빅토르는 가족들의 애정 속에서도 자신을 고립시키며 죄책감을 느껴야만 다시 인간 안에 속할 수 있다.

 

한편 2부에서는 피조물의 고통스러운 서사가 꽤 오래 이어진다. 메리 셸리는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은 존재이자 괴물이라고 불리는 존재를 왜 만들어냈을까? 아무래도 이 부분은 메리 셸리의 개인사로 미루어 짐작해볼 수밖에 없겠다. 메리 셸리는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의 죽음을 겪었다. 여성의 출산을 인간을 창조하는 이야기로 변주해본다면, 메리 셸리 입장에서는 태어나자마자 창조자에게서 버림받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 글을 구상하고 쓰기 얼마 전 메리 셸리는 아내가 있는 남자와 멀리 여행을 떠났다. 오랜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임신한 상태였고, 많은 이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를 잃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뒤 생명을 창조하는 연구에 매진하던 빅토르에게는 어머니와 자식을 잃었던 메리 셸리의 삶이 겹쳐 보인다. 그러나 빅토르가 했던 일은 현실에서 용인되지 않는다. 그런 일이 가능한 공간은 소설뿐이다.

 

죽은 이를 되살리고, 죄책감에 시달리고, 생명을 얻은 피조물이 악행을 저지르며 자신을 단죄하고, 자신의 어리석음과 죄에 고통과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과정을 상상하는 일이 소설 안에서는 가능했다. 특히 SF에는 그런 서사가 빈번하다. 많은 SF가 과학과 생명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지만, 그 배경이 되는 이야기는 누군가를 낳고 기르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피조물이며,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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