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동아시아] 뜨거운 심장과 더욱 뜨거운 머리로2023-03-26 23: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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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서운 심장과 더욱 뜨거운 머리로

에레혼

동아시아 세미나를 준비하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요즘 고등학생들은 역사 교과목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배우지 않는단다. 예전 교육과정에서 역사 과목이라 하면 ‘국사’, ‘한국 근현대사’, ‘세계사’ 세 과목을 칭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2010년부터 고등학교 역사 하위 과목이 개편되었으며, 각 과목은 국가와 지역(‘한국사’, ‘세계사’, ‘동아시아사’)을 기준으로 바뀌었다.

최애 과목 한국 근현대사가 사라졌다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조선 말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역사를 배우는 과목은, 즐겁게 배울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조선 왕조의 몰락, 일제 강점기, 한국 전쟁과 군부 독재로 이어지는 교과서의 내용은 하나같이 어두운 내용이었다.

교과서 속에서 어떠한 근대사 혹은 현대사 속 사건을 서술하든, 그 사건의 종지부를 설명하는 문장의 시작은 부정적인 단어였다. 하지만 대한제국의 국운은 이미 저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강압적 통치는 변하지 않았다.’ ‘결국 한반도는 남북으로 나눠지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당시 과목을 가르치던 역사 선생이 이런 접속어를 두고 ‘한국 근현대사 전용 접속어’라고 칭하던 농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동아시아 세계질서의 종막》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당시 기억이 되살아났다. 몇몇 사람들은 당시 한국 근현대사 교과목이 반일반미 감정과 좌편향적 사상을 주입하는 도구라며 비판의 날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역사 교과의 이념적 편향의 문제는 (이렇게 객관적이지 못한 내용이 포함되었는지에 대해 판가름해야 하는 것과 별개로) 주요한 비판거리가 될 수 없다.

오히려 한국 근현대사 과목을 비판적으로 논하려면 지역 편중적 과목 구분을 문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동아시아 세계질서의 종막》은, 내가 그동안 ‘우리=피해자’라는 공식에 매몰되어 교차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지 않았음을 일깨워주었다. ‘한국인들은 왜 우리 일본이 원자 폭탄을 피해를 입은 해를 축하해야 하는 시기로 정했느냐’고 묻는다는 일본 젊은 세대를, 내가 마냥 비웃을 수는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저자인 김기협 교수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조선을 국제 세계로 이끈 중국과 일본의 정책과 행동은 동아시아의 기존 세계질서에 어떤 영향을 줬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조선을 국제 세계로 이끈 사건’을 다룬 기존의 (한국인 저자들이 쓴) 역사 저작들은 중국과 일본이 얼마나 이기적인 판단 하에 조선을 방기했는지, 그리고 국제 사회에 던져진 조선이 어떤 과정을 거치며 일본에게 농락당했는지를 설명하는 데에 급급하다. 혹자는 이를 두고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하겠지만, 한국인이 오롯이 관찰자의 위치에서 자국의 19, 20세기 역사를 서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동아시아 세계질서의 종막》에서 ‘조선 근대’로부터 출발한 물음이 ‘동아시아 기존 세계 질서에 미친 영향’을 향한다는 점은 새삼스레 신선하다.

김기협 교수는 1860년에서 1882년에 이르는, 20년이 조금 넘는 시기를 분석하고 있다. 1860년과 1882년이라는 두 시간축을 특정하는 것은 저자가 철저하게 교차성에 입각하여 동아시아사를 서술하고 있다는 뜻이다. 1860년은 아편전쟁이 끝나고 청나라가 여러 서구 국가들과 베이징 조약을 체결한 해이다. (청나라는 베이징 조약을 통해 서구 열강들에게 철도 부설권을 내주고 각 도시에 공관을 설치하게 된다.) 그렇다면 1882년은?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과 임오군란 두 사건으로 정리할 수 있는 때이다. 아마 한국인들에게 동아시아 근대사의 특이점을 짚어보라고 하면,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1876년이나 청일전쟁이 발발한 1894년을 지목하지 않을까.

동아시아사의 맥락에서 보면 한국 근현대사에서 상식처럼 다뤄진 내용도 달리 해석할 수 있다. 조선 말기 왕족 및 사대부 사이에서 ‘반청反靑반만反滿’의 기치가 강화되는데, 이는 청나라의 무리한 조공 요구에 대한 오랜 불만이 표출된 것은 아닐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서 조선 정벌에 대한 논의가 불거지는 상황은 양국 관계의 불균형이나 조선의 대일본 인식에 대한 피해의식과 연관되지 않았는지, 하는 질문이 꼬리를 문다.

단일 국가 관점을 초월한 시각을 갖춰야 한다는 말에는 무조건적으로 공감하면서도 《동아시아 세계질서의 종막》 속 꼬장꼬장한 조선 사대부들의 모습을 보고는 마냥 마음이 편치 않았다. 조선이 모범적인 유교 국가라서 조공관계를 맺는 일이 명조와 청조의 정당성을 뒷받침할 수 있었다는 분석은 블랙 코미디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척화파들에게 짠한 마음을 느끼다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내가 어쩔 수 없는 한국인, 아니 조선반도 태생이라는 점이 체감되는 독서 경험이었다.

최근 모 정치인이 적대적인 반일 감정을 비판한다며 꺼낸 말이 논란이 되었다. ‘식민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나. 분명 1920세기 한국의 역사를 보고도 차가운 머리로 생각할 줄 아는 성숙한 한국인도 존재할 터. 그러나 나는 그런 쿨한 사람이 되기까지 더 많은 쑥과 마늘이 필요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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