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차이나] 잔향의 중국 철학|| 언어는 망각되어야 한다2022-03-10 09: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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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망각되어야 한다

에레혼

 

고대 중국인들의 언어에 대한 태도는 미묘했다. 이들은 언어를 신령하다 여겼으나 언어를 탐닉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여겼다. 중국에 몇 천년도 넘은 사전이 존재한다는 점은 ‘언어 숭배’의 증거이다. 반면 언어를 연구하는 학문을 ‘소학小學’이라는 멸칭으로 부른 것 또한 사실이다. , 두 가지 태도가 언어의 다른 층위에 대한 상이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러러 본 대상은 언어 자체이지만 비난을 당하는 것은 언어학인 셈.

언어에 대한 중국적 특수성은 결핍인 양 취급되었다. 중국에는 언어학이 없고, 언어철학도 없으며, 애초에 철학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잔향의 중국 철학》에서도 중국의 학문을 둘러싼 ‘서구 근대주의의 책망’을 언급하고 있다.

“중국에 철학은 없다.” 이 언명은 근대에 중국철학이라는 ‘학學’이 탄생한 그 순간부터 던져진 피상적인 축복이었다. … 바로 ‘근대’라는 개념이 그러했던 것처럼 일단 철학이 등장하자마자 ‘동양’이라고 표상된 지역에 존재했던 학문은 ‘전철학前哲學’ 또는 ‘비철학非哲學’으로 정의되었다. (본문 14)

중국 철학의 존재 여부를 운운하는 말다툼은 지리멸렬하다. 근대적인 의미의 중국 철학을 증명하는 작업, 혹은 중국만의 철학을 탐색하는 일은 모두 중국의 학문적 맥락 바깥의 논의에 대한 호응/대응이다. 저자인 나카지마 다카히로는 말한다. 중국 철학을 둘러싼 논쟁은 결국 “스스로 내부를 향해 들어간 오리엔탈리즘의 구조 그 자체”이며 파괴되어야 할 구조이다. (16)

저자는 중국과 철학 두 키워드를 뒤흔들기 위해 언어에서 출발한다. 앞서 말했듯 언어는 고대 중국에서 신성시되면서 동시에 탐닉해서는 안될 존재였으나, 정말 많은 사람들이 언어에 대해 갑론을박을 펼쳤다. 고대 중국의 언어학, 혹은 언어에 대한 논의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순자와 노자, 장자일 것이다. 《잔향의 중국 철학》에서는 이 중 순자에 대해 가장 먼저 언급을 하고 있다. 그는 중국에서 가장 처음으로 언어에 대한 ‘논문’을 쓴 사람이다.

《순자》 <정명>편에는 언어를 지배하여 그것으로 올바른 통치를 하고자 하는 시도가 나타난다. 언어를 지배하고 언어를 올바르게 배치하려는 시도는 공자의 시대에서부터 계승된 것이다. 언어를 지배할 수 있으면 군주의 의도를 틀림없이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고, 군주가 기대하는 바와 같은 조리條理의 의미를 세계에 부여해 사람들에게 체득시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이상적인 다스림의 극한이다. … 《순자》 <정명>편의 과제는 우선 지배해야만 할 언어의 정체를 파악하는 일에 있었다.(본문 34)

이러한 필요에 의해, 순자는 지금의 용어로 언어의 자의성 그리고 역사성과 같은 이름을 부칠 수 있는 개념을 제시했다. 언어에 정해진 의미는 없다. 그렇기에 언어는 변화할 수 있다. 순자는 이 간단한 논의를 중국에서 최초로 명문화한 사상가이다. 독특한 점은 그가 이렇게 생성되는 언어, 즉 명에 우선순위를 부여했다는 사실이다. 순자 이전의 유가 사상가들은 신화시대의 왕(선왕)들이 내세운 가치를 긍정하고, 해당 시기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이와 달리 순자는 후왕을 강조했다. 하지만 후왕이 새로운 규약을 확립하는 일은 선왕이 세운 관습을 기준으로 한다. , 《순자》에 나타나는 언어관에서는 단순히 역사에 따라 언어가 변화한다는 논의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상황이 강조되어 있다.

순자, 하면 흔히 언급되는 성악설 역시 이러한 언어관과 연관되어 있다. 순자는 인간의 속성을 내버려 둘 경우 혼란이 야기된다고 보았기에 “자연적인 본질에 반하여 그 밖에서 선善의 근거를 추구(40)해야 한다고 보았다. 여기서 말하는 ‘밖’이란 예의로 대표된다. 이러한 예의를 수립하는 주체로 다시한번 소환되는 것인 성인(<정명>편에서 이야기한 후왕과 유사한 역할)이다. 순자가 언급한 성인은 단순히 본성만을 따라도 사람들간에 분란이 없었던 시대의 이상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성인은 과거의 작위를 계승하고 그것을 반복하는 역사적 작업(41)을 행한다.

그런데 이러한 순자의 논의를 따라오면서 우리는 논리적 공백이나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순자의 논설에서 자주 나타나는 특성이다. 순자는 기존의 유학 체계를 논리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치지만 그 체계를 완전히 해체하지는 못한다. 예컨대 후왕이 옛 명칭을 역사적으로 중첩하여 새로운 명칭을 만들었을 때, 사람들이 그것에 따르지 않는다면? 순자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군주의 세勢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러한 강제력을 동원해야 하는 상황은 앞서 순자가 이상적으로 본 ‘군주의 언어가 사회에서 순탄하게 전달되는’ 국가 형상과 어긋난다. 《순자》 <정명>편에서는 이러한 사회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언어를 철저하게 수단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본다.

명사名辭라는 것은 말하고자 하는 의미의 사용이고, 그것에 의해 서로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이 통하면 그것으로 버려지는 것이다. 게다가 위곡委曲(자세한 사정이나 곡절)을 위해 애 쓰고자 하는 것은 간악한 일이다. 따라서 명칭이 충분하게 대상買을 가리 키고, 언사가 말하고 싶은 것의 근본을 나타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순자》 <정명>, 본문 47쪽에서 재인용)

흔히 <정명>편을 학문적 이단을 타파하고자 하는 의도로 작성된 글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순자는 성인의 뜻이 올바르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다투는 말이나 반대하는 논의가 등장해서는 안된다고 보았다.(본문 45-46) 다시 말해 <정명>에서는 언어가 통치에 활용되는 원리를 논하기 위해 언어의 성질에 대해 정의를 내리지만, 이러한 언어는 떨쳐버려야 하는 존재가 된다. 순자의 철학이 왜 언어와 정치의 관계를 논의하는 책에서 첫머리에 등장하는지 깨달을 수 있는 부분이다.

위진남북조 시대에 접어들면 언어의 의미와 수단으로 활용되는 언어에 대한 논의가 다시 한 번 반복된다. 이러한 논의는 보다 사변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잔향의 중국 철학》에서는 진晉나라에서 벌어졌던 언진의言盡意, 언부진의言不盡意 논쟁을 소개한다.

‘말은 뜻을 다한다’고 주장한 구양건은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한다’는 기존의 전제에 대항하는 논리를 펼친 인물이다. 그의 논리는 역대 성인들이 ‘정명’을 중요시 한 점에 착안한다. 언어가 사물이나 의미에 대해서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언어를 중시하는 이유는? 그것은 “언어를 빼고서는 타자에게 전달할 수 없기 때문(52)이다. 그리고 대상을 지칭하는 언어는 주관적인 성질을 갖지만, 그 성질은 결국 사물에 근거하여 정해진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언어는 뜻과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한다’고 주장한 대표자는 순찬이다. 《역》 <계사상전>에 대한 논쟁에서 순찬은 “…이理의 미세함微, 그것은 물상物象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사辭를 붙여서 그것으로 그 할 말을 다하였다’라는 것도 또한 계표繫表(계사의 밖) (의 말)를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본문 55)라고 했다. 그런데 이 논쟁을 촉발한 《역》 <계사상전> 원문에는 글로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로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는 내용과 상象괘卦사辭를 도입하여 성인이 ‘그 할 말을 다하였다’는 진술이 공존한다. 순찬은 전자에 초점을 맞추어 사 등의 (성인이 잘 다룰 수 있는) 특권적 언어를 사용해도 그것으로 포착할 수 없는 성인의 뜻과 미언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논쟁 구도에서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한 인물은 왕필이다. 흔히 왕필이 내세운 언어와 의미에 대한 주장을 ‘득의망상得意忘象 (뜻을 얻으면 형상을 잊는다)’이라는 말로 압축하기도 한다. 왕필은 《역》 <계사상전>에 대한 질문을 성인의 뜻을 전달하는 문제에서 조금 더 확장하여 언어 일반에 대한 논의로 확장시켰다. 그는 순찬과 같이 초월적 언어를 설정해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뜻을 다할’ 수 있는 언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상’이라는 특권적 언어를 다시 고찰하는 일로 접근하려고 했던 것이다.(본문 62)

독특한 것은 왕필의 주장이 언어를 잊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본문 60) 이는 《순자》 <정명>에서 ‘언사가 근본을 나타낸다면 그것으로 끝난다’고 이야기한 부분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망각에 대한 왕필의 주장은 저자가 본문에 인용한 호리아케 노부오의 말처럼 “잊는 일 자체가 목적화(본문 63)되는 일이다. 뜻을 얻기 위해 사용된 언어는 방치되었을 경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다른 뜻을 유추하기 위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 이는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동원될 수 있는 방법이나, 왕필은 이러한 과정을 진리로부터 멀어지는 과정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는 이러한 주장을 더욱 밀고 나가 보다 근본적인 논리를 내세우는데, 이는 도덕경 21장의 주석에서 살펴볼 수 있다. 가장 진실한 궁극은 이름 붙일 수 없다. 무명이야 말로 그 궁극의 이름이다.(본문 68)

언어와 정치에 대한 고대 중국인들의 논의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생각의 방향을 조금 바꿔보자. 통치를 위해 체계가 감히 언어를 떨쳐버릴 수 있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리고 언어를 완전히 망각해야 진리에 더 가까이 도달할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는 누구에게 매력적으로 들렸을까? 이런 질문에 어울리는 사람은 권력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다. 구태의연한 이야기지만 강조할 필요가 있다. 고대 중국이야 말로 언어에 대해 치밀하게 고민했던 시대라고. 고민의 이면에는 언어를 지배하고자 하는 흑심과 지배자에게 어울리는 언어를 다듬었던 기획이 교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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