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차이나] 혐오는 얼룩이 되어2022-05-12 00:4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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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는 얼룩이 되어

에레혼

 

요즘처럼 중국이 잘 먹히는 때도 없다. 중국이라는 키워드는 여론을 뒤집기 위한 필수요소가 되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올해 초 한 유튜버가 짝퉁 브랜드 착용으로 인해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다. 자신의 이미지를 마케팅 수단으로 삼았던 ‘인플루언서’였기에 이 논란은 점차 가열되었다. 논란과 동시에 해당 유튜버에 대한 비판이 과도하다는 여론도 형성되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중국과 커넥션(?)이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 인터넷에 올라오게 되면서 여론은 한번 더 반전을 맞이한다.

 


 

 

해당 유튜버가 자신의 영상을 중국 영상 플랫폼 ‘빌리빌리’에도 올리고 있었으며, 중국에도 팬층이 상당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이 빌리빌리에 올린 영상에는 중국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서 사실상 시시비비가 종결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유튜버가 여성이기에 더욱 가혹한 잣대를 들이민다’라든지, ‘개인의 신상까지 뒤져가며 논란거리를 증식하는 것이 올바른가’하는 문제 제기는 의미 없는 것이 되었다. “중국 묻었다”는 한마디는 전가의 보도가 되어 비교적 이성적인 의견을 내는 사람들까지 친중론자로 둔갑시켜버린다.

예전에는 중국 혐오(혹은 중국의 한국에 대한 혐오)가 넷상에서만 존재하는 현상이라며 웃어넘길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짱깨’와 ‘빵즈’의 간극>에서도 분석하고 있듯, 이러한 혐오 담론은 양국에서 다양한 사건을 계기로 켜켜이 쌓여왔다. 논문에서는 625 전쟁이 한중 양국이 감정의 골이 깊어진 계기라고 이야기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혐오 정서는 최근 4~5년 사이에 급격하게 증대했다.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당연히 코로나 19이다.

이전에도 한국과 중국이 서로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기는 계기는 빈번하게 존재해왔다. 특히 연예 관련 이슈는 줄곧 양국의 밑바닥 감정을 좌우하는 주요한 요소였다. 촌극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우리나라 연예인이 중국에서 돈을 뜯어간다는 뉴스가 보도된 에피소드, 중국인 연예인들이 한국에서 활동하다가 자국으로 돌아가 한국 혐오를 조장하는 컨텐츠에 출연하는 일 등은 한국/중국을 싫어해도 되는 근거가 되었다.

발제문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이러한 근거는 누적되고 있다. 트위터에 ‘중국’, 웨이보에 ‘韩国’라고 검색해보면 긍정적인 내용이 더 많이 나올지, 혹은 비난으로 점철된 포스팅이 더 많이 나올지는 굳이 실험할 필요조차 없다. 이러한 여론전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현재 반한-반중 감정을 주도하고 있는 양국의 9000년대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키보드 배틀’을 단순히 찻잔 속의 태풍이라고 웃어넘길 일은 아니다.

다시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혐오가 증폭되었던 순간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것으로 코로나19를 꼽은 이유는, 이 문제가 한중 양국에 있어서 결정적인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2020년부터 강력한 방역 정책을 거치면서 중국 혐오가 보편 정서처럼 자리잡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중국인들에 대한 필터 없는 비난이 넘쳐나게 되었다. <’짱깨’와 ‘빵즈’의 간극>에서도 말하고 있듯, 중국에 대해 한국인들이 우월감을 느낀 것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우월감을 표출하는 순간에도 중국인들을 ‘짱깨’와 같은 혐오 단어로 지칭하는 것은 지양하자는 암묵적 규칙이 있었다. 지금은? 한국 관광지에 중국인들이 없으니 너무나 쾌적하다는 이야기에 공감하는 댓글이 달리고, 마라탕ㆍ마라샹궈를 파는 음식점 사장들이 대부분 조선족이고 그들이 얼마나 비위생적으로 가게를 운영하는가 하는 글들이 올라온다.

이런 상황과 비교해보면, 2020년 이후 중국에서의 한국 혐오는 미미한 편이다. 우리나라의 중국 혐오와 달리 중국에서 한국 혐오는 아직 마이너(?)한 축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국 혐오에는 이전과 유의미한 변화가 포착된다.

최근 중국 네티즌들은 한국의 문화 수준, 국민성에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김치 논쟁에서 중국인들이 강조하는 건 한국의 김치는 지저분한 음식이라는 논리이다. 중국의 문화는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에, 한국의 문화는 아류이며 혼종이라는 폄하적 시각이 포함된 것이다. 최근에 보았던 혐한과 관련된 글 가운데 흥미로웠던 것은 부대찌개에 대한 이야기였다. 중국에서는 부대찌개는 본토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도 메뉴에 있을 정도로 중국인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한식이다. 그런데 해당 게시글은 이런 부대찌개의 기원을 이야기하며, 이 음식은 태생부터 더럽기 때문에 먹으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펼친다.

‘중국 묻었다’라는 표현부터 식문화에 대한 비하까지, 혐오 발언은 많은 경우에 불결함과 짝을 지어 다닌다. 전염병이 심화되는 시기에 혐오 발언의 수위가 강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우리는 여전히 중국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배상금을 물어내야 한다는 발언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한국을 비롯한 국가들의 방역 실태를 비웃고, 특히 2022년 한국에서 많은 사망자가 나온 사실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한국은 위드 코로나 정책으로 점진적인 전환을 시행하고 있으며, 중국은 여전히 질병과의 공존(위드 코로나의 중국식 표현)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세는 약화될테고, 사람들은 거기에 적응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결과에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결국 살아남았고 승리했다는 의미 부여가 일어나겠지. 그렇게 상황이 종결되면, 양국의 혐오 감정도 다시 줄어들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쉽게 긍정할 수는 없다. 한중 양국의 상호 인식은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아 갈 수 없으리라. 그렇기에 단순히 교류하면서, 시간을 두고 갈등이 해소되기를 바라는 일은 어리석다. 2022년은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는 해이다. 무조건적이고 의무감에서 촉발된 양국의 교류가 이어지겠지만, 이를 통해 지금의 혐오 정서를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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