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차이나] 자불어 | 보이지 않는 세계를 위한 역사서2022-06-15 12: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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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세계를 위한 역사서

차이나리터러시/ 자불어/ 2022 6 16/ 에레혼

 

청나라의 소설?

‘한 시대에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장르가 있다.’ 이 말은 중국 문학을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된다. 지나친 법칙화는 경계해야 하는 법이라지만, 이 법칙은 이미 기정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나라를 대표하는 문학장르는 시이다. 원나라 때에는 잡극이라는 희곡 장르가 발달했다. 명나라, 그리고 청나라 때에는 말할 것도 없이 소설이 가장 각광받았다. 오죽하면 ‘중국 고전 소설=명청소설’이라는 공식이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을까.

여기서 명청소설이라는 단어를 뜯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 머릿속에 있는 중국 옛소설의 제목들을 끄집어 내보자. 《삼국지》,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 《홍루몽》 등등.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고전 소설들은 이 정도를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목록에서 명나라 때의 소설과 청나라 때의 소설을 분류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앞에서 언급한 소설들을 가운데 《홍루몽》을 제외하면 모든 소설이 명대에 탄생한 작품들이다. 바꿔 말하면, 명청소설이라는 명칭에서 ‘청’이라는 단어가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홍루몽》의 성취에 힘입은 결과이다.

이렇게 임팩트가 약하다고 해서 청나라 소설이 보잘 것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청대에는 출판업이 완전하게 자리 잡으면서 ‘독서를 위한 소설’들이 완전하게 자리 잡은 시기이다. 《삼국지》, 《수호전》, 《서유기》와 같은 명나라 때의 소설들은 등장인물들이 난리법석을 치며 서로 치고 박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구절들은 이야기를 읽어주는 사람들의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청나라 때에 등장한 소설들은 누군가가 대신 읽어주는 방식과 그리 어울리지 않는, 내면의 세계에 천착하는 작품들이 많다. 《홍루몽》과 같은 소설이 대표적이다. 혹은 귀신을 다루거나 도사와 자객이 등장하는 소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런 소설의 소재는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읽기 민망한 ‘남녀상열지사’ 혹은 ‘괴력난신’에 속한다. 소설의 소재의 변화와 출판업의 발달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선행했는가, 하는 물음은 ‘계란이 먼저인가, 닭이 먼저인가’와 비슷한 종류의 질문이겠지만.

포청천이 개작두를 대령하라며 호통치던 중국 드라마를 알고 계시는지? 이 드라마는 청나라 시기의 소설 《삼협오의》를 원작으로 한다. 《천녀유혼》과 《화피》 같은 영화는 청나라 초기의 소설 《요재지이》의 에피소드들을 각색한 작품이다. ,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지 청나라 소설은 오랜 시간 동안 각광받아온 컨텐츠였다.


 

 

《자불어》가 탄생하기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불어》는 낯선 소설이다. 지은이 원매는 《수원식단》이라는 요리책의 저자로 더 유명한 인물이다. 《자불어》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문제적 인물 원매에 대해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청나라는 한족 문인들을 정권의 휘하로 포섭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펼쳤다. 당연히 아무나 대신이 될 수는 없었고 과거에 통과한 이들만이 황제와 함께 국정을 도모할 수 있었다. 문제는, 청나라가 시행했던 과거 시험 스타일에 있었다. 당시 과거 시험은 명나라 때 탄생한 ‘팔고문’이라는 문체에 맞게 글을 작성하는 것이었는데, 이 시험 방식은 지금까지도 악명이 자자할 정도이다. 팔고문투를 도입한 과거 시험은 무조건 ‘사서(논어맹자대학중용)’를 출제범위로 삼았으며, 문장을 지을 때에도 어느 위치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 지가 미리 정해져 있었다.

이렇게 범위가 명확하고, 출제 스타일이 뻔한 시험의 장점은 분명하다. 통치자는 예측 가능한 사람만을 조정에 들일 수 있게 되며, 응시자는 정해진 범위만 잘 공부하면 녹봉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팔고문에 대비한 과거 시험 준비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무엇보다도 재미가 없다. 그래서 어떤 지식인들은 이 제도에 영원히 적응하지 못했다. 원매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

원매는 스무 살이 되던 해에 과거 예비시험에 합격하였다. 하지만 그 다음해에 열린 본시험에는 낙방하고 만다. 다시 3년을 준비한 과거시험에서는 본시험에까지 합격하여 한림원 학사가 되었지만, 여기에서 다시 최하위에 해당하는 시험 결과를 얻고 지방 현령직에 오르게 된다. (참고로 원매가 한림원 연수 기간을 끝내고 친 시험 과목 중에 낙제점을 받은 과목은 만주어였다고 한다.)

이렇게 청나라의 관리 등용 시스템과 원매의 개인사를 길게 풀어 쓴 까닭은, 이러한 상황이 당시 소설가들의 일반적인 모습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명나라 이전만 해도 글을 쓸 줄 아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은 관리로 등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그러나 명대 이후로는 식자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며, 과거 시험을 위해 습득해야 하는 팔고문은 글을 잘 짓는 능력과는 별개의 영역이었다. 따라서 명대와 청대에는 자연스럽게 ‘고학력 실업자’ 혹은 ‘글 잘 쓰는 프리랜서’가 급증하게 되었다.


 

 

 

나는 왜 쓰는가

이러한 시기에 지식계층에 속하였지만 조정의 부름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글공부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거나 아무 글이나 닥치는대로 쓰는 전업 작가가 되어야 했다. 원매 역시 이 두가지 일에 모두 종사했던 사람이다. 물론 이런 프리랜서이 글을 쓰는 심정은, 관직에 종사하며 유유자적 시를 짓는 문인 관료의 마음과 사뭇 달랐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소설 작가들이 남긴 글을 보면, 자신의 저작에 대해 한탄하거나 합리화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원매는 《자불어》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옛날에 안진경이필은 종묘사직에 공로를 세웠으면서도 신선과 요괴를 즐겨 말했고, 한유는 도의 보존을 스스로의 소임으로 삼았지만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을 좋아했다. 서현은 불교와 도교를 배척하였으나 기이한 이야기들을 즐겨 수집하여 문하의 선비 중에 급기야 이야기를 날조하여 환심을 사려는 이까지 있었다. 네 현인의 뛰어난 점은 내가 소임으로 삼을 수 없으나, 네 현인의 단점은 삼가 취했다.(“백광준 역, 《원매 산문집》,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인용)

원매가 소환한 ‘네 성형’은 중국 역사에서 충신으로 알려졌거나, 유가 통치 시스템을 굳건히 하는 데에 본분을 다한 인물이다. 원매는 이런 인물들의 업적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소위 ‘성현’들도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이야기를 즐겼다는 사실을 꼬집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업물도 성현의 업적(혹은 악취미)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여타 청대의 소설가들이 먹고 사는 문제로 인해 글을 썼다면, 원매의 《자불어》 집필 동기는 조금 다른 것이었을 지 모른다. 대중에게 팔기 위한 소설을 짓는 사람이 자신의 글을 성현의 작업물과 동등한 자리에 놓는다? 원매가 《자불어》의 집필을 마무리한 시기를 보면 이러한 의혹이 더욱 강화된다. 그는 79세가 되는 나이에 《자불어》를 완성했고, 3년 뒤에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이렇게 탄생한 이야기는 모두 1025편에 다다른다. (지만지 번역본의 서문에서는 《자불어》 전체 이야기가 700여개라고 말했지만, 이것은 《속자불어》를 제외한 수치로 보인다.)

원매는 《자불어》 서문의 다른 부분에서 “문장과 역사 외에는 스스로 즐길 만한 것이 없어 부득이 야사에 마음을 붙였다, 수십년 동안 견문이 미친 것 가운데 생각해보게 하고 감동을 줄만한 것들을 엮어 남겼으니 미혹된다가 있어서는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러한 구절로 미뤄볼 때, 그가 단순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팔아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소설가도 역사가라는 믿음으로

《자불어》의 작품들을 보면 기존의 소설과 다르다는 인상이 강하게 든다. 이 생경함은 지금의 소설과 청대의 소설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원매의 소설은 흔히 즐겨보던 고전 소설들, 《삼국지》, 《수호전》, 《홍루몽》 같은 작품들과 차이가 두드러진다.

일단 작품의 편폭이 굉장히 짧다. 중국 고전 소설들이 대체로 짧은 이야기들이 이어져서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지만, 《자불어》는 편당 이야기가 짧아도 너무 짧다. 심지어 각각의 에피소드는 기승전결이 뚜렷해보이지도 않고, 어떤 사건이 시작된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마무리되기도 한다.

비교를 위해 《삼국지》를 예로 들어보자. 《삼국지》의 저자는 유비와 제갈량이 만나는 과정을 서술하기 위해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였다. 제갈량은 본격적으로 소설에 등장하기 전부터 주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속세를 떠나 있는 고수로 회자된다. 그리고 두번의 방문은 실패로 돌아가고 세번째의 시도를 통해 만남이 성사되기까지 성미 급한 장비가 화를 내는 장면도 나오고, 등장인물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시 구절도 삽입되어 있다.

《자불어》는 이런 디테일을 언급할 틈이 없다. 우선 각각의 이야기마다 등장하는 인물의 숫자는 매우 적다. 작가는 그들이 어떤 관계로 얽혀있는지 간단하게 설명하고 사건은 금새 종결된다. 이 정도면 《자불어》는 우리가 익히 알던 고전 소설들과 다른 종류의 작품이 아닐까? 실제로 《자불어》와 같은 소설들은 ‘문언소설’이라고 불린다. 《삼국지》, 《수호전》, 《홍루몽》과 같은 소설이 ‘백화소설’이라고 불린 것과 대비되는 표현이다. 문언소설로 분류되는 작품들은 경서나 역사서에 쓰일 법한 어투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달리 백화소설은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던 대화체를 소설에 상당부분 반영한 것이 특징이다.

문언소설은 어투뿐만 아니라 서술 방식에서도 ‘먹물 냄새’를 풍기고자 애쓴다. 《자불어》의 각 작품들을 보면, 공통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매 에피소드의 서두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사람과,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 그의 출신 지역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역사서에서 인물에 대한 기록을 적을 때 사용하는 규칙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타일을 공식처럼 자리잡게 하는 데에 큰 공헌을 세운 사람이 바로 사마천이다.

그러니까 이런 ‘근엄한 분위기 풍기는’ 문언소설들의 원류가 《사기열전》이라고 주장하여도 크게 무리는 없다. 실제로 《자불어》와 같은 문언소설들은 사람들에게 자주 읽히지 않았을 뿐, 백화소설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사를 살펴보면, 사마천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괴상망측한 이야기를 역사서의 어투로 서술하는 사례를 여럿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의 소재는 놀랍게도 귀신과 괴물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역사가를 존중한다면서 귀신과 괴물을 논한다? 이는 사실만을 다루는 역사가의 함과는 거리가 있는 태도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언소설의 저자들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이들은 무엇이든 빠짐없이 기록하는 일도 역사가의 본분이라고 여겼다. 역사가로서의 책임의식에 힘을 보태는 어록도 존재했다. 《춘추》를 편집하여 ‘역사가의 역사가’로도 불리는 공자는 이런 소설가들에게 희망이 될 말을 남겼다. 《논어》에는 공자의 제자 자하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작은 기예라고 하여도 반드시 볼 것이 있으나, 너무 깊이 빠지면 나올 수 없을까 두렵기에, 군자는 그것을 추구하지 않는다.(《논어자장편》) 문언소설의 저자들은 그저 호사가로 취급될 수도 있었겠지만, 이런 흥미거리도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는 믿음으로 기록을 남긴 셈이다.

앞으로 만나게 될 《자불어》 속 작품들은 소재는 흥미진진하되 전달하는 어투는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시각을 조금 달리해서, 원매가 만든 이야기들은 사료처럼 취급해야 하는 문장일지도 모른다. 허무맹랑한 이야기 취급하며 스쳐 간 풍문에도 진리가 있는 법! 귀신이 득실거리는 이야기를 여든 가까운 나이까지 끼고 살았던 ‘수원노인(원매의 호)’을 떠올려본다. 그에게 《자불어》 집필은 당시 떠돌던 괴담을 아카이빙하는, 필생의 프로젝트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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