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차이나] 중국 혐오 권하는 사회2022-11-10 01:3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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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깨주의의 탄생 9, 10

중국 혐오 권하는 사회

에레혼

“이런 내용이면 주인공이 행복하게 사는 세계선 맞나?” 인터넷에서 세계선이라는 단어가 종종 목격된다. 상대성 이론의 주요 용어라는 이 말은, 뜬금없게도 SF나 판타지 컨텐츠 장르에서 많이 쓰인다. 평행우주를 횡단하는 인물이 등장하고, 대안적 역사를 다루는 작품에서는 다수의 세계가 존재하기 마련. 이런 장르물의 팬들도 작가가 설정한 스토리라인을 뛰어넘어 자신들만의 세계선을 상상하곤 한다.

이곳과 다른 또다른 우주를 찾는 사람들은 단순히 장르문학 팬덤에만 모여 있는 게 아니다. 취임식 때 참가 인원 숫자를 조작했다는 지적을 받았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참모는, 자신들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대안적 사실’을 말한 것이라고 되받아쳤다. 이 에피소드는 나/우리에게 유리한 세계선을 설정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주목할 부분은 현실 왜곡과 오도가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대안적 사실 운운하는 말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현장과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현상을 비교하는 사진이 공개된 이후 나왔다. 진실에 초점을 맞추는 이라면 참모의 발언을 비판할 것이다. 언론사가 정보를 조작했고 왜곡되지 않은 또다른 진실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그런 말을 듣고 싶은 누군가에게는 어떤 진실보다 호소력이 있다.

팩트 체크가 중요한 작업이라는 점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진실을 알리는 작업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접근하고자 하는 정보가 복잡할수록 어떤 사람들은 그 정보를 파악하는 일을 포기해버린다.

《짱깨주의의 탄생》은 중국에 대한 진실을 외면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중국에 등 돌리도록 만든 발화자들을 고발하는 작업에 집중한다. 중국에 대한 대안적 진실을 생산하는 이들은 다양하다. 미국 정치권, 한국의 보수 성향 정치인과 언론, 그리고 진보 지식인까지. 왜곡된 정보의 생산자들은 다양한 이해관계로 인해 중국에 프레임을 씌운다. 이러한 정보를 사람들은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저자는 이러한 중국 혐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제대로 된 정보의 전달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듯하다. ‘중국 이해 바로하기’에 심취한 저자는 《짱깨주의의 탄생》 9부와 10부에서 본격적인 팩트 체크에 나선다. 각 파트에서 지적하는 내용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다. 특히 언론사들이 중국 뉴스에 접근하는 방식이 아직도 수교 이전의 겉핥기 방식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은 통렬한 비판이자, 중국 보도의 고질적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짱깨주의의 탄생》에 등장하는 두 가지 의구심이 강하게 든다. 첫째로, 저자의 비판과 지적이 누구를 향한 외침인가? 질문을 바꿔서 10부에 이르기까지 등장한 수십가지 사례, 이를 통한 중국에 대한 정보 바로잡기는 ‘짱깨주의자’들을 위한 것일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한다. 중국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해당 국가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취득할 기회를 적극적으로 거부할 공산이 크다

두번째 질문. 짱깨주의를 제창하는 이들이 ‘혐중은 모두 신자유주의와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에 근거한 기획’이라는 점을 모른 채 혐오 담론을 수용 및 재생산하고 있을까? 오히려 이들은 미국 중심의 패권을 긍정하며, 현재 미국 수뇌부가 ‘미국 패권의 귀환’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짱깨주의의 탄생》의 미덕은 꼼꼼함 하나에 그친다. 저자는 방대한 프로젝트를 수행하였으나, 이 작업의 방향은 책 중반부를 지나서 갈피를 잃어버린다. (특히 9부와 10부의 내용은 중국에 대한 올바른 정보전달 보다는 한국 언론 비판에 더 치중해 있다.) 중국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에게 《짱깨주의의 탄생》은 신선하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으며, 반대편에 있는 이들에게는 펴볼 마음조차 들지 않는 저서일 뿐이다.

제대로 된 정보를 더 많이 습득해서 혐오를 극복한다는 태도는 순진한 발상이다. 《짱깨주의의 탄생》에서 아무리 ‘착한 중국-나쁜 미국’이라는 세계관을 설정해도, 사람들은 이내 자신들만의 세계선을 구축하기 마련이다. 저자는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혐중이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이유에도 집중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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