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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리딩R&D] 분석이 끝났다면 다음 인류를 예측해주시오(총균쇠 4부)2022-06-14 15: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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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균쇠> 4부 인류사의 발전적 연구 과제와 방향 및 에필로그



분석이 끝났다면 다음 인류를 예측해 주시오



식량 생산과 가축화에 유리했던 유라시아 대륙은 문자와 정치조직 발달에서 앞서갔고 소위 문명 발달의 선두주자가 됐다. 가축화는 필연적으로 질병의 선진화를 가져왔고 신대륙의 원주민 사회를 점령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이 차차 총과 기술을 앞세운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에 위치한 유럽이 세계의 패권을 차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중국 등지에서 개발된 문물들을 받기만 하던 곳이다. 유라시아 대륙 중 가장 낙후된 곳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옥한 초승달지대와 중국은 수천 년이나 앞서갔으면서도 어째서 유럽에 뒤처지게 되었을까? 직접적 요인은 물론 상인계급과 자본주의의 발달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왜 유럽에서 발생했을까?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가축화와 작물화에 최적 요건을 갖춰 다른 곳보다 일찍 출발할 수 있었지만 그 선발 간격을 추월당한 뒤에는 더 이상 지리적 이점이 없었다. 옛날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속했던 많은 지역은 현재 사막, 반사막, 스텝으로 변하거나 토양이 심하게 되거나 염분이 많아 농업에 부적합한 땅이 되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생태학적으로도 과거의 이점을 누릴 수 없게 된 것이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거의 맞먹을 만큼 식량생산을 일찍 시작한 중국의 뒤처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중세 때 중국은 전 세계의 기술을 선도했다. 주철, 나침반, 화약, 종이, 인쇄술 등 수많은 문물의 원산지가 중국이다. 중국은 정치적인 힘, 항해술, 제해권 등에서도 세계를 선도했다. 콜럼버스나 바스코 다 가마보다 먼저 신대륙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중국은 제국 초기부터 통일을 이룬 드문 국가이다. 몇 차례 분열 시대가 있었지만 언제나 재통일로 마감되었다. 통일 제국은 한번 내려진 결정을 번복하여 다른 정책을 펼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중국은 지리적으로도 분할 요소가 없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유럽은 지리적 분할로 인한 정치적 분열 상황이 계속되었다. 지리적으로 분열된 유럽에서는 정치적 집단 사이의 경쟁이 혁신을 자극한 반면, 통합된 중국에서는 그러한 경쟁의 부재가 혁신을 주춤하게 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여기서 ‘최적 분열의 법칙’을 말한다. 혁신은 분열이 최적에서 중간 정도에 머문 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일어나고, 지나치게 통합되었거나 너무 분열된 사회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인류사 연구에 남겨진 과제에 대해 논의하며 여러 질문들을 남겨놓았다. 지리적 환경적 이점에서 시작된 ‘진보’는 정보사회가 된 현대 사회에서도 이어지고 있을까? 문화적 특이성, 개인의 특이성은 인류사에 어떤 작용을 하고 있을까? 이 모든 인류사 탐구가 과학적 방식으로 가능한 일인가? 등. 이외에도 여러 질문들이 이어질 수 있겠다. 특히 식민지배가 원주민들이 후진적이어서가 아니라면, 총균쇠를 앞세운 제국주의 국가들의 찬탈 또한 같은 이유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인가? 총, 균, 쇠를 통한 자명한 지배의 역사 법칙이 전지구적 환경 위기에 직면해 있는 지금의 인류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등. 문명과 야만은 구분되어 있지 않고, 역사는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는 분석이 끝났다면 다음 예측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미 권위가 되어버린 주장들 앞에서 이 시대 지식인들은 어떤 연구를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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