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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리딩R&D]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은 계속 수정되어 가는 중"2021-01-07 06: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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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R&D] 보이는 것은 실재가 아니다 : 첫 번째 강의 0108 발제_아라차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은 계속 수정되어 가는 중”


앎은 유한하다. 지금 맞는 것은 언제든 틀릴 가능성을 품고 있다. 더구나 인간은 육체를 뒤집어 쓴 상태에서 세상과 대면하는 존재. 아무리 이성적이고 유물론적인 근거가 있다 하더라도 감각 이상의 것은 알 수 없다. 초감각, 초차원의 세계 중 극히 일부만을, 잘 아는 것도 아닌, 안다고 착각하면서 지금을 사는 존재가 인간이다. 세상이 무엇인지, 인간(나)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일은 매번 갱신되는 진리를 쫓아가는 일이다. 이론 물리학자인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과 공간이 없는 세계”를 설명하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아예 처음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고 제안한다. 데모크리토스에서부터 시작해 쭉 거쳐서 공간의 양자들까지 나아가보는 것이다. 


카를로 로벨리를 따라 인류가 해온 가장 눈부신 여행 가운데 하나를 따라가 본다. 시작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이다. 우주 전체는 끝없는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속에서 무수한 원자들이 돌아다닌다. 공간은 한계가 없다. 위도 아래도, 중심도 경계도 없다. 실상은 원자와 진공 뿐이다. 이것이 세계의 짜임이라는 것.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데모크리토스의 자연주의적 설명을 거부했고 목적론적으로 세계를 이해했다. 특히 플라톤은 ‘자연학자들’이 지구가 둥글다고 설명했을 때, 지구가 둥근 것이 뭐가 ‘좋은’ 건지, 무슨 유익이 있는지 알고 싶어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를 “위대한 플라톤의 헛다리짚기”라고 표현한다. 


데모크리토스의 위대한 서적들은 전부 유실되었지만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시를 통해 살아남았다. 루크레티우스의 문헌도 수 세기 동안 잊혀졌다가 1427년 교황의 비서인 포조 브라치올리니에 의해 발견된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유럽의 르네상스에 깊은 영향을 미쳤고, 뉴턴과 스피노자, 다윈에게까지, 나아가 아인슈타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아인슈타인은 데모크리토스의 생각을 수학으로 옮겨 원자의 크기까지 계산해 낸다. 


플라톤은 헛다리를 짚기도 했지만 미래의 과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도 했다. 바로 피타고라스의 직관과 가치를 이해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밀레토스의 자연과학이 이집트와 바빌론까지 갈 수 있었던 열쇠는 수학이었고, 그 수학의 이론적 유용성을 발견한 사람이 피타고라스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자신이 세운 학교의 입구에 이런 구절을 새겨놓았다고 한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 곳에 들어올 수 없다.” 플라톤의 이러한 확신은 긴 우회로를 돌아 근대 과학의 출현으로 이어진다. 플라톤의 제자들은 천체들의 움직임을 지배하는 수학적 법칙을 발견하였고 고대 천문학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마게스트>에서 수학적인 천문학 체계를 제시했다. 인간의 시력이라는 한계가 있었음에도 예측이 거의 완벽할 정도로 정확했다고 한다. 수학을 통해 세계를 기술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 거의 천 년동안 의미있는 진보를 할 수 없었던 천문학이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다시 도약할 수 있었던 것도 수학적 방식 덕분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알마게스트>의 수정 개정판을 썼다. 이 개정판에서 태양이 중심에 있고 지구는 다른 행성들과 더불어 태양 주위를 돈다고 기록한다. 다음 세대인 케플러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그리고 갈릴레오는 망원경이라는 새로운 발명품을 통해 인류사를 바꿔놓는다. 과학적 도구들은 인류의 근시안적인 눈을 열어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광대하고 다채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갈릴레오를 통해 최초의 실험 과학이 시작된다. 그의 실험은 간단했다. 물체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 실험의 결과는 중대했다. 사람들은 물체가 항상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가속도의 발견이었다. 인류는 이제 천체 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물체들에 대해 똑같은 수학적 법칙을 적용하게 되었다. 


실험과 연구와 상상을 통해 다음 스텝을 이어간 사람은 뉴턴이다. 뉴턴은 작은 달 상상을 통해 달의 공전 주기를 계산하고, 물체가 떨어지도록 만드는 힘, ‘중력’을 생각해낸다. 우주는 물체들이 서로 ‘힘’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넓은 공간인 것이다. 모든 물체가 다른 모든 물체를 끌어당기고 있다. 뉴턴 역학이 바로 데모크리토스의 세계이다. 광대하고 균질하며 언제나 동일한 공간으로 이루어진 세계, 그 속에서 입자들이 영원히 움직이며 상호 작용하는 세계이다. 19세기 사람들은 뉴턴이 가장 영리하고 통찰력 있는 사람일 뿐 아니라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자연의 근본 법칙들의 체계는 오직 하나 밖에 없는데 그가 그것을 발견하는 행운을 누렸기 때문에.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자신의 발견의 한계를 아는 것이 천재들의 특징이라고 했던가. 뉴턴은 자신의 수학이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힘들을 기술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중력 말고도 물체에 작용하는 다른 힘들이 있다. 또 다른 힘, 바로 전자기력이다. 물질을 뭉치게 하여 고체가 되게 하는 것이 바로 이 힘이다. 이 힘을 이해하려면 뉴턴의 역학은 수정되어야 한다. 이 수정으로부터 근대 물리학이 태어났고 이 책의 나머지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개념인 ‘장場, field’이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마이클 패러데이와 제임스 맥스웰은 추론과 실험을 통해 ‘장’을 발견한다. 뉴턴이 가정했던 것처럼 힘들이 떨어져 있는 물체들 사이에 직접 작용하지 않고 공간에 퍼져 있는 어떤 실체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전기와 자기를 띤 물체에 의해 변형되고 밀거나 당기면서 작용하고 있다.


‘장’이라는 새로운 존재자를 도입하면서 우리는 뉴턴의 우아하고 단순한 존재론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게 된다. 세계는 더 이상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입자들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맥스웰은 패러데이가 말로만 설명했던 통찰을 방정식으로 옮겨낸다. 맥스웰 방정식은 모든 전기 현상과 자기 현상을 기술하고 안테나와 라디오, 전기 엔진, 컴퓨터 등을 설계하는 데에 일상적으로 상용된다. 맥스웰은 페러데이의 역선들의 파동이 움직이는 속도를 계산하고, 그것이 빛의 속도와 정확히 같다는 것까지 알아낸다. 빛이 페러데이 역선들의 빠른 진동과 다름없음을 발견한 것이다. 


무언가가 옮겨주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것도 공간 속의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넘어갈 수 없다. 이 진동하는 선들이 우리에게 영상을 옮겨주기 때문에 우리가 뭔가를 볼 수 있다. 맥스웰은 이 선들이 빛보다 느린 주파수로 진동할 수 있다고 예측한다. 전하들의 운동에 의해 발생하여 다른 전하들의 운동을 유도하는, 다른 파동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전하를 흔들면 파동이 발생해 저기에서 전류를 흐르게 할 수도 있다는 것. 이 이론의 실체를 밝힌 사람은 독일의 물리학자인 하인리히 헤르츠이다. 그리고 몇 년 뒤 굴리엘모 마르코니가 최초의 무선 전신을 발명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전송하면 저기에서 받는 세계를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


세계에 대한 이해는 달라졌다. 세계는 더 이상 공간 속의 입자들만이 아니라 공간 속의 입자들과 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세계를 그 바닥까지 뒤흔들어놓는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으로 발걸음을 옮겨놓아야 한다. 물질의 본성적 자리나 보편 법칙같은 것이 설 자리는 사라진 지 오래이다. 우리의 앎은 유한한 가운데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부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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