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차이나] 0126_낡은 기준을 버리는 새로운 방법2021-01-26 10: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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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리터러시] 글쓰는 여자는 잊히지 않는다 : 장옥랑, 심의수, 왕단숙 0126 발제_아라차



 - 낡은 기준을 버리는 새로운 방법 - 



글쓰는 여성 문인들에 대한 평가가 이토록 천편일률적이다. 장옥랑에게도 “관습에 저항했던 가련한 여인”이라는 말이 훈장처럼 붙어 있다. 명·청대 문인들은 장옥랑을 유교 이데올로기로 포장하여 그녀를 정절의 화신으로 치켜세웠단다. 여성을 치켜세우는 일은 늘 이런 식이다. “재주와 미색이 있으면서도 정숙함을 사명으로 삼아”라고 굳이 자신들의 덕목을 끼워 넣는다. 글쓰는 여자가 미색과 정숙까지 갖춰야지만 평가의 대상이 되는 모양이다. 


장옥랑이 쓴 시를 보고 누군가는 “부녀자가 쓸 법한 글이 아닌데!”라며 감탄했단다. 이는 명백한 여성혐오임에도 칭찬이라고 대놓고 남겨놓았다. “부녀자가 쓰는 글은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틀을 만들고 놓고 그것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사내 대장부가 쓴 글처럼”이라며, 대단한 ‘칭찬’인 양 평가를 해 놓는다. 유사 이래 여성의 글은 늘 다채로웠을 텐데도 일련의 틀 속에 한계지어 놓고, 그것도 오로지 “시대와 관습에 저항한”이라는 가난한 기준으로 그들의 창작을 폄훼하고 있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평가를 한다는 것은 다른 많은 뭔가를 배제하는 것이다. 뭔가를 배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 평가의 속성이다. 평가받지 못했던 혹은 평가절하되었던 여성 작가들의 글을 재평가해야 한다면 그들의 글에서 다른 것들을 발견해 나가야 하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이 책에서처럼 기존 남성 문인들과의 비교나 당대 평범하다 여겨진 여성들과의 비교가 올바른 기준인지는 잘 모르겠다. 


명말 청초의 여성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심의수에 대해서 “주부이자 작가, 그리고 평론가”라는 부제를 달아 놓고, “봉건시대 부녀자로서의 한계 때문에 세상에 대한 안목이나 관심이 그다지 넓거나 깊지는 못했지만”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미 한계를 지어 놓고 안목이 부족하다는 결과를 내어놓는다. 그녀는 13남매를 두고 가난한 집안을 이끌어가면서도 “바쁜 일상에서 짬을 내어 글을 쓰고”, “중심을 잃지 않았고 늘 자신의 내면과 조우하면서 성찰했으며, 결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세상에 대한 그 어떤 훌륭한 안목도 이런 성실함과 치열함보다 낫다고 볼 수 없다. 


잘 교육받은 여성 평론가의 기준도 결국 남성들의 기준이고 남성의 시각이다. 이런 남성의 시각이 여성의 글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글에 대한 평가를 이야기하면서도 미색과 정절을 주석으로 붙이고, 검소함과 도덕을 각주붙여 놓아야 제대로 된 평가라고 생각하는 걸까. 한자의 대구를 못 알아먹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왕단숙에 주목해 보자. 왕단숙이 살았던 명말 청초는 여성의 문학 창작이 공전의 성황을 이루었던 시기. 그녀는 여성의 글이라는 이유로 버려지고 전해지지 않는 이 오래된 현실에 대해 무척 가슴 아파했다. 그녀는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시문을 짓거나 혹은 재주를 뽐내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속 수많은 말들을 쏟아놓기 위해 글을 쓴 무수한 여성들의 목소리야말로 진정한 문학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옥같은 여성의 시문이 후세에 길이 남도록 여성의 글들을 모아 총집을 편찬하기로 했다. 


그녀는 당시의 기준인 “남성 못지 않게 잘 썼다”고 평가받는 여성 작가 몇 명이 아니라 명청대를 넘어 그 이전까지 시대와 지역, 신분과 종교, 종족을 모두 초월하여 오로지 여성이 쓴 글들을 모두 기록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1661년 편찬된 [명원초편시위]이다. 선록 기준에서 인상적인 것은 소수의 대작가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 여성 문학의 총체적 면모를 담고자 한 의도만 보더라도 남다름이 엿보인다. 


‘시위’라는 제목도 인상적이다. 수천 년 숭상되어온 (남성들의) ‘시경’이 있었다면 이제 ‘시위’가 있어야 한다는 발상이 전복적이다. 왕단숙은 경과 위 모두 상보적 관계이지 어느 것이 더 우월하거나 어느 것이 더 열등한 관계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는 ‘시경’의 거대한 명성을 겨냥하여 자신이 엮은 책이 그와 동등한 위치에 거하는, 나아가 그를 보완할 수 있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자부한 것이다. 


왕단숙이 19세 되던 해에 시작하여 44세가 되는 해에 편찬된 명원초편시위. 한 여성의 일생에서 무려 26년이라는 장구한 시간도 놀랍지만 이 시기가 명청전환기의 혼란기였음을 감안한다면 더욱 위대한 업적이다. 명원초편시위는 이후 청대 여성 시문집이 활발하게 간행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했다. 지금도 이와 비슷한 간행물은, 세상이 여성의 글을 평가하는 편협한 기준에 끼워 맞추지 않으면서도, 여성의 글 자체가 희귀한 평가의 대상에서 벗어나는 데 제법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녀자답지 않게”, “여인의 가냘픈 정서”, “정절을 지키며”, “미모와 재색을 겸비한”, “남성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이라는 허술하고 재미없는 봉건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여성의 글은 더 많이 더 다양하게 발굴되어야 한다. 먼저 양으로 승부를 건 왕단숙의 시도는 선견지명이었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강한 자신감과 그것을 세련되게 표현하여 상대에게 전할 수 있었던 능력”이 있었던 왕단숙의 이야기에서 여성의 글과 비평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 전개도 가능하지 않았을지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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