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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서양철학사] 7장 패러다임 전환과 르네상스 세계관2021-02-17 10: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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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 0217 제7장 자연과학의 발흥 발제_아라차



패러다임 전환과 르네상스 세계관



현재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우리가 배웠던 것과 다른 내용들이 많다고 한다. 시대가 달라졌으니 새로 추가되고 재해석되는 내용들이 많으리라 짐작은 된다. 이미 선입견이 된 지식들을 재고없이 그저 읊조리는 고장난 라디오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철학책을 만나는 일이 필요한 것 같다. 불변의 진리처럼 여겨졌던 철학이나 물리법칙조차도 뒤집히고 무너지는 시대에 고정된 지식 정보만을 고집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이번 챕터를 읽으면서도 기억을 수정해야 하는 지점들이 있었다. 


고정된 기억과 해석 중에 하나가 중세는 암흑의 시대이고, 르네상스는 빛의 시대라는 이분법이 있다. 이 책에 의하면 이 또한 선입견이자 편향된 해석인 것 같다. 저자는 어둠의 시대라 기록됐던 중세에도 치열하고 촘촘한 지적 흐름이 이어졌으며, 르네상스는 빛이 돌아온 시기가 아니라 오히려 꺼져간 시기라고 보았다. 여러 면에서 르네상스 철학은 중세철학보다 지적으로 더 혼란스러웠다고. 물론 통상의 긍정적 견해를 단순히 뒤집어버리는 실수를 해서도 안 된다고 지적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일어난 자연과학의 발흥은 중세철학 내에서 과학적 개념들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수공업과 농업에서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진 기나긴 과정의 결과물이다. 자연과학은 단순히 이론만으로나 실천적 관심만으로는 생겨나지 않는다. 두 가지 요인이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르네상스 시기에 이것이 가능했다. 과학이 진리를 다루는 새로운 지적 활동으로 추가되면서 철학으로서는 과학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물론 신학을 버리고 자연과학을 택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에게 신학은 여전히 당연한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실험과학은 17세기를 거치면서 형태를 갖춰나갔다. 과학은 순전히 연역적이지도, 순전히 귀납적이지도 않고 가설연역적이었다. 르네상스 시기에 추구되었던 것은 새로운 지식인데, 연역법으로는 새로운 지식을 찾을 수 없었고, 귀납을 통해 도달한 결론은 결코 완전히 확증될 수 없었다. 새로운 지식은 가설과 연역적 추론과 귀납적 관찰의 역동적인 결합에 놓여 있었다. 이 새로운 조합이 바로 가설연역법이다. 가설이 유지될 수 있는지 아닌지 시험을 통해 결정하고, 가설이 참이라면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일들에 관해 일정한 명제들을 연역한다. 그리고 실제로 일어나는지 시도한다. 이 가설은 이론이 되고 새로운 지식을 낳을 수 있다. 이 때의 지식은 절대적으로 확실한 지식은 아니다. 미래의 관찰을 통해 이 이론이 부정될 가능성이 항상 있기 때문이다. 


가설연역법으로 자연의 과정들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이 지점에서 이론과 실천적 융합이 일어난다. 가설연역법에 기반을 둔 지식은 자연현상에 대한 통찰과 통제를 가능하게 해준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이같은 새로운 과학과 새로운 과학 덕분에 이루어질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는 테크놀로지를 통한 자연의 통제를 꿈꿨다. 기술적 합리성이 인류를 새로운 사회로 이끌어줄 규율로 작용했다. 좋은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 자연을 정복하는 수단은 오직 과학 뿐이었다. 가설연역적 과학은 생활 조건의 개선을 가능하게 했고, 인류가 자율성을 확보해가는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베이컨이 서술한 정치적 유토피아에서 진보적인 역사 발전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변화되어야만 하는 사회이고 그 목적은 저 세상이 아니라 바로 이 세상에서 추구되어야 한다. 신성한 구원의 역사는 더 이상 역사의 핵심이 아니다. 자연을 이용하고 통제하는 인간의 능력이 핵심이 된다. 역사는 앞으로 전진하며 그 방향타는 인간이 쥐고 있다. 베이컨은 계몽주의의 선구자였다. 그는 인간의 생각과 태도가 얼마나 쉽게 왜곡되고 제한될 수 있는지 네 가지 유형의 선입견(종족우상, 동굴우상, 시장우상, 극장우상)에 대해 논했다. 무지와 편견에 맞서 싸우는 그의 사상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를 예비하는 사상이었다. 


일반인의 자기 이해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과학적 변혁은 천문학에서 일어났다. 천동설적 세계관에서 지동설적 세계관으로의 이행. 천문학자들도 가설연역적 방법과 물체 운동의 개념을 사용하였다. 지동설은 교회와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에 대해서만 혁명적인 것이 아니었다. 직접적인 생활경험도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스스로를 중심 밖에 있는 것으로 상상하고 전적으로 새로운 시각에서 우주를 관찰하도록 부추겼다. 세상이 지금까지 살고 있던 것과 다르기 때문에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도 다르게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이 반성적 거리두기와 시각의 전복을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 불렀다. 칸트는 인간의 인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는 데 이 혁명을 이용했다. 어떤 이들은 이 혁명을 인간 이성에 대한 과도한 믿음과 우주 내에서의 인간의 위상에 대한 현실적인 비판으로 보았다. 이후에 다윈의 진화론과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론이 등장하면서 인간이성의 가치는 점차 축소된다. 


여기서 저자는 이러한 인간의 자기 인식의 변화는 그 의미가 이중적이라고 본다. 인간이 우주에서 차지하는 위상의 추락을 뜻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새로운 긍정적인 자기의식을 제공하기도 했다는 것. 인간은 우주를 탐구하면서 성취한 진보 덕분에 새로운 긍정적 자기상을 구축할 잠재력이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제시한 긍정적 자기상에도 막 수긍이 가는 것은 아니다. 세속적이고 과학에 근거한 진보에 대한 믿음의 뿌리로 나아간 인류의 방향이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않은 것 같으니.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의 모델을 수정하여 천체들이 원형 궤도가 아니라 태양을 초점으로 하여 타원궤도를 돌고 있음을 밝혀냈다. 갈릴레이는 새로운 망원경을 통해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의 이론을 강력하게 뒷받침할 수 있었다. 뉴턴은 천문학과 역학 모두에서 이들의 이론을 강화하였다. 뉴턴과 더불어 물리학은 전통과 편견에 대한 과학의 승리를 상징하는 모범이 되었다. 신학이 아니라 과학이 진리 문제에 대한 정당한 권위로 부상하였고 자연의 과정을 통제하는 인간의 수단이 되었다. 철학과 종교는 새로운 과학과의 관계 속에서 제 위치를 찾아야 했다. 이것이 수학적이고 실험적인 자연과학의 출현이 갖는 사회적 의미이자 지성적 의미이다. 


저자의 논지처럼 르네상스는 확실히 역사의 전환점이었다. 전통으로부터의 재탄생일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의 탄생이었다. 산업혁명과 초고도 기술발전의 시대를 거쳐 온 지금의 인류에게도 변화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르네상스는 도처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과학 내에서의 패러다임 전환과 연관되어 인간이 주체로, 자연이 객체(대상)로 배치되는 양상은 심화되었다. 인간을 주체로, 자연(과 인간)을 객체로 만드는 과정은 동시에 대상에 대한 주체의 이용 관계, 대상에 대한 주체의 지배 관계를 함축한다. 이 또한 이제는 수명을 다한 세계관이다. 합리적이라지만 위계적 세계관을 벗어나려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또  한번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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