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문학] 신곡 지옥편 (24곡~끝)2022-06-23 16: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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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

 

연민으로 그리는 인간의 지옥도

 

 

 

 

일곱째 구렁부터 지옥은 더욱 처참하고 참혹해진다. 일곱째 구렁에서는 도둑들이 뱀들에게 고통을 당하며 여덟째 구렁에서는 사기와 기만을 교사한 죄인들이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고통받는다. 아홉째 구렁에서는 종교나 정치에서 불화의 씨앗을 뿌린 자들이 신체가 갈라지는 형벌을 받는다. 열 번째 구렁에서는 사람들을 속이고 화폐를 위조하거나 연술금을 썼던 자들이 끔찍한 질병에 시달린다.

8원을 떠난 단테는 제우스에게 대항하여 싸웠던 거인들이 코키토스 호수에 잠겨 있는 것을 본다. 지옥의 마지막 원에서는 온갖 배신자들이 코키토스 호수 속에 얼어붙어 있다. 첫째 구역 카이나에는 가족과 친척을 배신한 영혼들이 있고, 둘째 구역 안테노리에는 조국과 동료들을 배신한 영혼들이 벌을 받고 있다. 가장 밑바닥 주네카에서는 은혜를 배신한 영혼들이 처참하게 고통 받고 있다.

지옥을 모두 둘러본 단테는 루키페르(루시퍼)의 몸에 매달려 지구의 중심을 지나고, 좁은 동굴을 통해 남반구를 향해 기어오른다. 그리고 빠져나온 지옥의 동굴 입구에 이르러 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잉과응보의 처단

 

여덟 번째 구렁에서 단테는 화염에 휩싸여 있는 오디세우스를 만난다. [일리아스]에서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이곳에서는 전쟁에 참여하도록 사람들을 꾀어 죽게 만든 사기꾼으로 나타난다.

태양의 뒤를 따라 사람 없는 세상을 경험하고 싶은 욕망을 거부하지 마라.

그대들의 타고난 천성을 생각해보라,

짐승처럼 살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덕성과 지식을 따르기 위함이었으니. (26)

 

오디세우스는 이렇게 말하며 사람들을 이끌고 인간이 더 이상 넘어가지 못하도록 헤라클레스가 표시를 세워둔 해협을 건너간다. 그들은 결국 배가 난파되어 죽는다. 오랜 방랑 끝에 고향 이타케로 돌아갔던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이런 방식으로 비튼 것은 인간의 지적 허영심과 헛된 욕망을 경계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는 턱부터 항문까지 갈라지는 형벌을 받고 피렌체 정쟁의 원인이 된 모스카(부온델몬티 가문의 부온델몬테가 아미데이 가문의 처녀와 약혼하였으나 파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였다. 모욕을 당한 부온델몬테 가문의 회의에서 모스카는 부온델몬케를 죽이도록 부추겨 정쟁이 시작되었다.)는 양손이 잘리는 형벌을 받는다.

머리가 없는 몸통으로 자신의 머리채를 등불처럼 쳐들고 가는 보늘의 베르크랑(헨리2세가 아들 헨리3세에게 아버지를 모반하도록 교사했다.)에 대한 묘사에 이르면 그 처절함이 극에 달한다.

 

, 불쌍하구나! 몸통의 근원에서 떨어진 이 내 머리를 들고 다니노라.

나에게는 잉과응보가 이렇게 나타난다. (26)

 

단테는 현세에서 분쟁과 분열이 일어난 원인이 되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신체를 가르는 형벌로 그들을 단죄한다. 잉과응보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뛰어넘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연민과 비탄의 목소리

 

지옥의 끝으로 다가갈수록 지옥은 더욱 가혹하고 끔찍하다. 그곳의 사람들은 극한의 고통 속에 시달린다. 그곳에서 단테는 그들을 안쓰럽게 여기고 연민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그들은 수많은 통곡의 화살들을 나에게 쏘아 그 상처가 연민으로 물들었고,

나는 손으로 양쪽 귀를 틀어막았다. (29)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테는 그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 베르길리우스는 화폐 위조범 아다모와 시논의 싸움에 완전히 빠져 있던 단테를 꾸짖는다. 단테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은 그들이 싸우는 소리를 듣고 싶어 했던 것을 부끄러워한다. 자기 성찰이 타자를 관찰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이 지점은 단테가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탐구가 개인에게서 어떤 방식으로 체득되는지 잘 보여준다. 어쩌면 자신이 억울하게 피렌체에서 쫓겨났던 울분을 지옥편을 쓰면서 풀어내는 과정을 통해 자기정화가 일어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연민과 관음, 비탄과 호기심, 슬픔과 즐거움 등 작가의 복잡한 내면의식이 드러난 이 장면은 개인 주체로서의 화자의 등장일 뿐 아니라 이야기에 동참하는 작가의 자의식이 드러나는 장면일 것이다.

단테는 제33곡의 대부분을 할애해 피사 출신의 우골리노 백작의 비참한 최후를 풀어놓는다. 지옥의 끝에서 가장 가혹한 형벌을 받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처지는 눈물겹고 안쓰럽게 묘사된다.

 

<아버지, 저희를 잡수시는 것이 우리에게 덜 고통스럽습니다.

이 비참한 육신을 입혀 주셨으니, 이제는 벗겨 주십시오.>(33)

 

단테는 크게 탄식한다. 특히 아무 죄도 없는 그들의 아들과 손자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죄에 대해 불가피한 형벌을 가할 수밖에 없는 지옥의 세계에서 그가 바라보았던 것은 인간의 나약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깊은 지옥의 끝에서 목격자로서 단테가 느꼈던 것은 인간에 대한 한없는 연민과 애정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신과 배반, 분열과 속임수 등은 단테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신의와 믿음, 의리와 사랑이라는 숭고한 가치와 상반되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 지옥을 바라보는 단테의 시선은 인간이 가진 숭고한 가치에서 기인한 연민과 애정에서 나온 것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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