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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문학] 보르헤스 읽기 :: <불한당들의 세계사> 전반부 후기 2019-02-07 08:4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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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 탈주해온 오늘의 불한당 

  


불온한 세계로의 위험한 탈주

 

[불한당들의 세계사]는 원제를 직역하면 [불온한 세계사] 였다고 합니다. 불한당들이 나오는, 삐딱할 뿐 아니라 온전하지 못하여 어딘가 미진한 구석이 있는 이야기들이었다는 말인데요. 실제로 책을 읽어보니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세미나원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이유는 우선 인물의 불건전성과 삶의 아이러니 사이에 불온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불한당들은 사기꾼이거나 도적, 또는 살인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한 가지 정체성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노예를 속여 돈을 벌었지만 나중에는 노예해방을 위해 그들을 돕기도 했던 라자루스 모렐, 자신이 티치본이라며 속여 티치본가의 재산을 가로챘지만 티치본 부인에겐 더없는 안도와 행복을 주었던 카스트로 등, 모든 인물들은 자신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다양한 방식으로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냅니다. 그들은 스스로 확신했던 자신의 정체성에서 자꾸만 미끄러져 현실이라는 환상 속으로 스스로가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드러난 것들이 모두 진실이 아닐 뿐더러 허위는 어느새 현실이 됩니다.

 

왜 불한당인가?

 

그렇다면 보르헤스가 역사 속에서 불러온 인물들은 왜 하필 불한당인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는 불한당들이 균열을 일으켰던 파장과 그 파장의 기하학적이고 불규칙한 무늬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불한당들은 온건한 사회에서 권력자들이 통제할 수 없는 야만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법이나 규칙 따위에 포섭되지 않는 바깥의 힘들입니다. 불한당들에게 권력의 힘을 뻗치면 그들은 사회 안으로 파고들어 질서를 무너뜨립니다. 반면 포섭해 끌어들이려고 하면 외부로 미끄러져나갑니다. 권력자들이 가장 다루기 힘든 인물들이죠. 보르헤스가 이런 반사회적이며 반동적인 인물들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문학이란 그런 인물들을 통해 일말의 보이지 않는 진실들을 드러내는 작업이기 때문이죠.

 

불한당은 영웅인가, 치욕의 패배자인가?

 

각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은 역사 속에서 악명을 떨쳤던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매력적인 악인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세속적이거나 나약합니다. 예를 들어 여해적 과부 칭은 해적들의 우두머리로 악명을 떨쳤지만 왕의 명령에 굴복했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진정한 가르침의 빛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남편과 결혼하는 비주체적인 삶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사기꾼 톰 카스트로는 흑인 노예인 보글이 죽자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이 밖에도 각각의 인물들은 영웅적인 비극적 서사로서의 최후가 아니라 보잘 것 없고 비참하기만 한 죽음으로 삶을 마감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불한당의 야만성이 각각의 인물들로 녹아들었을 때는 또 다른 변주와 반역이 일어나는 것이죠. 현실에서 비틀리고 일그러졌던 이러한 인물을 통해 삶의 진실들은 만화경처럼 복잡하고 다양하게 펼쳐집니다.  루쉰이 [고사신편]을 통해 옛 설화나 신화들을 다시 썼던 것처럼 보르헤스도 옛 인물들을 현재에 불러놓고 과거의 미래와의 맞짱을 뜨는 실험을 했던 것이죠. 패러디 수법의 묘미는 이런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틈 사이에 진실과 거짓을 섞고 흔들어 새로운 이야기를 독자가 맛보게 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패러디는 보르헤스에게는 가장 문학적인 실험이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 말고 옆에 너! (주변의 확장과 변주)

 

그렇다면 각 제목에서 제시된 인물들이 각 편의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과연 보르헤스는 그들을 서사에 중심에 두었던 걸까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사기꾼 카스트로 곁에는 그를 조종하는 위대한 전략가 보글이 있었으며 여해적 칭보다는 훨씬 영웅적인 삶을 살았던 메리 리드와 앤 보니가 있었으니까요. 이야기는 주인공 악당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그들 곁에 있던 인물들은 보이지 않는 주인공으로 숨어있습니다. 심지어 마치 주인공을 이야기의 맥거핀(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관객을 의문에 빠트리거나 긴장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사건, 상황, 인물, 소품을 지칭함)으로 쓰고 있는 듯 보이죠.

야만인으로서의 불한당, 평범하고 나약한 인물로서의 불한당, 불한당 곁의 인물을 위한 보조 출연자로서의 불한당 등으로 인물은 어딘가로 자꾸만 미끄러져갑니다. 고정화되지 못할뿐더러 역사 속 실재 인물들과도 멀어집니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고 인물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거나 사라집니다. 모든 좋은 문학이 그런 것처럼.

결국 보르헤스는 자신의 방식으로 새로운 문학적 실험들을 이제 막 첫 단편집에서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물들을 규정하지 않고 흩뿌리는 방식으로, 영웅과 불한당과 개인을 뒤섞는 방식으로, 현실과 허구 사이의 틈에 조명을 켜는 방식으로, 불연속적이고 불균형한 시간들을 맞붙이는 방식으로...... 등등.

보르헤스 문학의 시원을 들여다보는 여러 방식들로 이야기는 부피를 키우며 풍성해진 것 같았습니다. 혼자 읽었을 때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덧붙여지고 확장되면서 새로운 이약야기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마치 보르헤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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