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좀비] 호기심이 인간을 좀비로 만든다2021-01-20 20:3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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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으로 가는 길, 좀비를 만나다<연구소B의 침묵>

 

인간은 어떻게 좀비가 될까? 영화나 소설에서는 인간을 좀비로 만드는 바이러스, 혹은 식물이나 약품이 등장한다. 그 바이러스나 약품을 없애버리면 좀비가 될 위험도 사라질 텐데, 굳이 바이러스나 약품을 개발하거나 남몰래 보관하는 이들이 있다. 좀비는 두렵지만, 좀비가 가진 힘을 활용하겠다는 욕심이다. 죽어도 죽지 않는 존재는 그렇게 인간들의 욕심 속에서 탄생한다. 인간이 아닌, 어쩌면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가 되거나 그 존재의 힘을 빌려보겠다는 욕심이 인간을 좀비로 만든다. 좀비를 통제하려는 그들의 실험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좀비를 두려워하는 존재

이 소설에는 괴사병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여성이 등장한다. 괴사병은 몸 안의 장기와 근육이 괴사하여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고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죽는 병이다. 발병하지 않았거나 치료로 호전되었을 때 여성은 젊고 건강하며 매력적인 존재였다. 여성의 건강에 문제가 있으리라고 사람들이 짐작하는 때는 여성의 몸이 지나치게 말라버렸을 때이다. 여성의 젊고 매력적인 신체는 활력을 잃고 죽음의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한다. 이 여성의 신체에 대한 사람들의 호감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여성의 외양에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죽기 직전 여성의 신체는 좀비에 비유된다. 아직 살아있으나 더는 인간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 살아있으나, 그의 신체는 죽은 사람처럼 썩어가는 중이다. 사람들은 여성을 이제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여성의 신체가 과거에 가졌던 형태와 기능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형된 신체와 사라진 생명력, 이제 인간에 속하지 않게 된 여성의 곁에는 한 사람만이 남았다.

 

좀비에 매혹당한 존재

여성의 곁에 남은 박군은 죽음의 이미지에서 쾌감과 기쁨을 느낀다. 피부가 찢겨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대상, 이미 죽은 시체를 훼손하는 행위, 누군가를 죽여서 박제하는 일은 박군을 즐겁게 한다. 박군처럼 죽음에 매혹당한 이가 죽어가는 여성을 만나 사랑하게 된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여성을 죽인 이는 결국 박군이다. 박군은 여성을 죽인 이유를 묻자, ‘좀비 같아서라고 답한다. 죽음에 매혹당한 존재인 박군에게 좀비는 두렵고 혐오스러운 존재이기만 할까? ‘좀비 같아서라는 박군의 표현에는 혐오나 두려움이 담겨있지 않다. 박군은 좀비에게서 무엇을 느꼈을까? 죽음과 유사하지만, 무언가 다른 좀비의 이미지에 매혹되지는 않았을까?

박군은 여성이 죽은 이후 화자에게 찾아와 괴사병 연구에 매달리겠다는 말을 전한다. 그로부터 15년이 흘러 다시 박군이 소식을 전해온다. 애초에 하려던 연구는 실패했으나, 다른 연구에 성공했다고. 그 성공한 연구의 답은 어느 순간부터 완성되어 있었다고. 답은 좀비다. 박군은 괴사병 연구에는 실패했지만, 누군가를 좀비로 만드는 연구에 성공했다. 만약 여성이 살아있다면, 좀비로 만들어 죽지 않게 했으리라고 박군은 말한다. 좀비로 만들어서라도 살려두고 싶었던 이를 박군이 죽인 이유는 무엇일까?

 

실험은 언제나 의도를 벗어난다

박군은 좀비바이러스와 치료약을 자기 자신에게 실험하고자 한다. 그에게 좀비가 되는 일은 두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는 멋진 실험의 순간이다. 자신의 연구가 성공했음을 확인하며 성취감을 맛볼 기회이기도 하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 박군은 어쩌면 죽음에 매혹된 존재인 동시에 좀비에 매혹된 존재이다. 신체가 변형되어도 죽지 않는 존재, 박제할 필요 없이 썩어가면서도 보존되는 신체는 박군이 쾌감과 기쁨을 느끼게 하는 새로운 대상이다. 박군은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좀비로 만들거나, 혹은 자신이 스스로 좀비가 되고자 한다.

박군이 제안하는 실험은 위험하다. 실제로 예상치 못했던 위험한 상황이 실험 도중 발생한다. 극적으로 상황을 수습하면서 실험은 겨우 성공을 거둔다. 박군이 만든 좀비바이러스와 치료제는 효과를 발휘했다. 물론 이 성공과는 무관하게 좀비바이러스는 다른 경로로 확산된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경로를 통해. 실험에서 모든 변수를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실험은 언제나 실험자의 의도를 벗어나며, 호기심은 종종 인간을 좀비로 만든다. 좀비에 매혹되었든, 그렇지 않든 관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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