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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리딩R&D] 마음의 미래 - 뭐가 문제지? 그냥 로봇이 되면 되잖아!2021-04-07 17: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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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R&D [마음의 미래] 10. 인공지능과 실리콘 의식 11.두뇌 역설계




뭐가 문제지? 그냥 로봇이 되면 되잖아!



1950년대 체스를 두고 대수학 문제를 푸는 기계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로봇하인이나 로봇집사를 두는 날이 곧 오리라고 생각했다. 1968년의 영화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는 로봇이 우주선을 조정하여 목성까지 날아간다. 모두 이제 곧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을 기계가 하게 될 것이라 예측하고 장담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르러 예상이 빗나가기 시작한다. 체스를 두는 기계는 오직 체스만 둘 뿐, 그 외의 일은 전혀 할 수 없었다. 당시 가장 진보한 로봇이라 여겨졌던 샤키도 낯선 환경에서는 길을 잃었다. 기계적 기능만 강조하고 ‘의식’을 등한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와중에도 컴퓨터의 계산능력은 꾸준히 향상됐고, 80년대를 거쳐 90년대에 인공지능은 다시 중흥기를 맞는다. 우리 생전에 <터미네이터>처럼 ‘마음’을 가진 인공지능을 만날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실현될 것”이지만 그 구체적 시기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인공지능은 적어도 두 가지 문제에 직면에 있다. 형태인식과 상식의 문제이다. 사람은 오만가지 물체를 아무런 노력없이도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지만 로봇은 온갖 데이터를 입력해 주어야 비슷한 걸 찾아낸다. 사람의 뇌는 물체의 방향이나 거리가 달라져도 인식하는데 문제가 없지만, 로봇은 수조 회의 연산을 거쳐야 같은 물체라고 인식한다. 로봇에게는 ‘상식’이라는 것이 없어서 인간의 세계에서는 당연한 것도 당연하게 인식하지 못한다. “날씨가 눅눅하면 불쾌하다”라든지, “어머니는 딸보다 나이가 많다”라는 상식에 대한 방정식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상식을 따라잡을 수 없다. 


인간의 뇌가 컴퓨터와 비슷하다는 가정은 틀렸을지도 모른다. 두뇌는 컴퓨터가 아니라 고도로 복잡한 신경망 네트워크다. 디지털 컴퓨터는 구조가 고정되어 있지만 신경망은 새로운 일을 습득할 때마다 뉴런의 연결상태가 개선되고 강화된다. 사람의 뇌에는 프로그램이나 운영체제가 없고, 중앙처리장치도 없다. 대신 뇌의 신경망은 하나의 목적(학습)을 이루기 위해 수백만 개의 뉴런이 동시에 활성화된다. MIT 인공지능연구소 로드니 브룩스는 “시행착오를 통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지능형 로봇”을 제작하고 있다. 인섹토이드와 버그봇은 물체에 수시로 부딪히면서 비행기술을 익혀나간다. 화성탐사로봇 큐리오시티와 오퍼튜니티는 지금도 화성표면을 돌아다니며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지만 분명 딥러닝 기술이 장착된 컴퓨터들이다. 


로봇을 설계하는 엔지니어들은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로봇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기계가 인간을 흉내낸다는 것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호감 계곡 uncanny valley’이라는 용어로 이런 경향을 표현한다. 비호감 계곡 효과는 인공지능 학자들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제작자와 광고제작자 등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마사히로 모리 박사에 의하면 로봇이 사람과 비슷할수록 감정이입이 잘 되면서 친근감을 느끼지만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거부감이 생긴다고 한다. 얼굴은 사람과 똑같으면서 동작이 어색한 로봇은 기괴한 분위기만 연출할 뿐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똑같아지면 친근감이 다시 회복된다. 일상 속의 비정상을 더 두려워하는 심리가 드러난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의식의 핵심이 감정이라고 말한다. 감정중추가 손상된 환자들을 보면 아주 단순한 선택을 해야 할 때조차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감정이 없다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사소한지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감정은 인공지능 분야에서 부차적인 문제였지만 지금은 가장 중요한 테마가 되었다. 그러나 로봇에게 감정을 부여하기란 쉽지 않다. 감정은 종종 비논리적인데 반해, 로봇은 논리의 최상급인 수학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로봇에 감정이 추가되면 곧바로 윤리적 문제가 발생한다.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로봇의 권리에 대해서도 기준이 정해져야 한다. 논쟁이 심화되면 로봇의 다른 권리에 대해서도 논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윤리적 로봇’이라는 개념에는 인간의 윤리 개념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만약 로봇의 주인이 사회적 통념에 벗어난 도덕관을 지녔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결국 이 문제도 법정으로 갈 수밖에 없다. 


로봇은 언제든지 인간에게 해로운 존재로 돌변할 수 있다. 종종 로봇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어 결국 인간을 노예로 삼고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스토리를 만난다. 로봇이 사람을 능가할 것이라 전제하고, 두려움을 투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로봇의 부작용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로봇은 인간이 만들었으므로 우리 아이가 같은 존재”라며 “부모는 아이들이 크게 부모를 능가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지 않던가”라고 말하는 더글러스 호프스태너 박사같은 사람이 있다. 


로드니 브룩스의 이야기는 더 흥미롭다. 그는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 날이 올 거라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그 점을 생각하기 전에 우리 자신도 기계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할 것”이라 경고하는 것이다. 브룩스는 미래에는 인간 존재가 하드웨어 대신 생체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 기계와 다를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브룩스는 “몇 가지 이유로 로봇이 인간을 능가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아직 모든 가능한 패를 인간이 쥐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인간은 엄청나게 똑똑한 로봇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그냥 로봇과 하나가 되면 된다”고 답한다. 로봇공학과 신경 보철기술이 충분히 발달하면, 우리 몸속에 인공지능을 직접 이식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이미 시작되었다. 똑똑한 로봇을 두려워할 필요없이 우리도 그들처럼 변하면 된다. 


인간과 같은 두뇌를 가진 기계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두뇌 역설계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뇌의 신경망 네트워크를 트랜시스터와 철로 만드는 작업은 실제로 도전 중이다. 그러나 아무리 괴물같은 컴퓨터로 뇌를 만든다 해도 엄청난 면적과 전기에너지가 필요하다. 가장 적은 수의 뉴런을 가진 초파리나 선충의 뇌를 완벽하게 설계하려고 해도 거의 한 도시의 면적과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인간의 뇌는 순전히 기계같으면서도 인간의 기계적 기술로 따라잡기에는 여전히 머나먼 신비의 세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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