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영화비평]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2019-04-13 02:4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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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

  소제목을 가진 막이 영화의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는 형식은 몰입해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것이 영화라는 것을, 극이라는 것을 계속 인지하게 한다. 하지만 인위적인 흐름의 끊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막과 막을 이어서 하나의 영화를 관람하게 된다. 화면에 비춰지는 등장인물들은 각각의 막에서 권력을 향한 욕망, 누군가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 성적인 욕망 등 다양한 욕망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사라의 행동들은 우리가 흔히 아는 사랑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것이 결여된 그저 도구로 상대를 이용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사라가 다양한 상황을 만나 다양한 욕망을 가지고 다양한 선택을 한 결과일 뿐, 모두 사라의 모습이다. 다양한 막으로 이루어진 짧은 사건들이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하는 모습은 이 영화가 보여주는 등장인물들의 다층적인 모습과도 닮아 있다.

  남성 중심 서사가 대부분인 영화계에서 여성은 종종 줌아웃되고 남성의 조력자 혹은 도구로서 그려진다. 더 페이버릿이 주는 통쾌함은, 그러한 종종의 줌아웃이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향해 있다는 점이다. 아비게일의 고민 속에서 남성은 매우 부차적이고 쓸모없이 소모되고, 영화는 스토리에서 남성이 가질 수 있는 영향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의 존재를 지워낸다. 그러한 장면들마다 관객은 신선함을 느끼고 웃게 되는데 이는 결국에 통쾌하면서도 씁쓸한 웃음이다. 남성이 부차적으로 소모되고 여성이 모든 영향력을 쥐고 있는 서사에 익숙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동시에, 얼마나 많은 영화들이 여성을 부차적으로 소모했는지를 다시한번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관계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여러가지 욕망들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진정한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다시한번 고찰하게 한다. 사랑에도 한계가 있다며 토끼를 만지길 거부하는 사라의 모습과, 사라와 달리 토끼에 관심을 가지는 아비게일에게 호감을 느끼는 앤의 모습, 대체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아비게일로 대체된 사라의 위치와, 언제든지 아비게일을 무릎 꿇릴 수 있는 앤의 공허함과 상처. 계속해서 변하며 변하는 순간마다 다양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우리가 함부로 정의하고 테두리 짓는 사랑의 범주가 과연 진정한 사랑이 맞는지, 그러한 사랑이 존재하는지에 관해 고민하게 한다. 결국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도 영화 속 등장인물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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