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마오] 혁명을 원하는 이는 누구인가: 마오쩌둥 2권 15장 문화대혁명 발제2019-06-05 08: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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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마오쩌둥 2권 15부 문화혁명 발제.hwp (29KB)

스탈린이 죽은 후에 부정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오는 다짐했다. 죽기 전에 동료들을 시험해 보고, 자신을 배신할 기미가 보이는 동료들을 먼저 제거하기로. 마오의 의견에 어떤 식으로든 반대를 표하는 이들은 모두 마오가 놓은 덫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65년 당시 류사오치는 마오의 공식 후계자였다. 누구도 마오가 류사오치를 숙청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덩샤오핑 역시 마오가 제거하려는 대상이었다. 대약진운동 때 쫓겨난 펑더화이는 대격변의 소용돌이로 소환되어 다시 봉변을 당했다.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었다. 필립 쇼트는 이 거대한 소용돌이의 시작을 제법 단순하게 설명한다. 자신이 남긴 혁명과업을 2인자 류사오치가 해내지 못할 것이라 염려한 마오가 중국 민중을 끌어들여 일으킨 대혼란이다. 도화선은 장칭이 놓았다. 자신을 마오의 ‘개’라고 설명했던 장칭은 마오가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 하려 했다. 장칭이 섭외한 언론인 야오원위안의 글을 마오가 직접 고쳐가며 사건에 불을 붙였다. 동료들은 마오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해 혼란스러웠지만, 하나씩 숙청해나가다 보니 화살은 류사오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왜 이렇게 복잡하게 일을 처리해야 했을까? 강압적으로 후계자를 교체하는 일이 불가능하지도 않았을 텐데. 마오는 좀처럼 제 손으로 궂은일을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완전무결한 주석의 이미지에 생기는 흠결도 두려워했다. 조금이라도 잘못을 지적당하거나, 동료들의 질책을 받는 일은 견디지 못했다. 오랫동안 마오는 ‘대외적으로’ 옳은 길만 선택했고, 옳은 말만 했다. 대장정 이후로 마오와 싸워서 이긴 동료는 없었다. 류사오치를 비롯해 린뱌오와 저우언라이와 같은 공산당의 최고위급 간부들도 마오의 눈치를 보기에 바빴다. 누구도 감히 마오가 ‘부분적으로라도’ 틀렸다거나, 실수했다고 말하지 못했다.

 

단지 누군가 자기 대신 비난을 해 주고, 손에 피를 묻혀주기를 바라고 마오가 이런 큰 판을 벌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애초에 그 많은 군중을 마오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였다고 보는 관점 자체가 무리다. 심지어 장칭마저도 마오의 ‘개’ 노릇에 충실했다기보다는 이 사태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 했음이 분명하다. 2년 동안 각종 소요와 폭력사태를 일으키고 중국 각지를 떠돌았던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반란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가 한 가지도 아니고, 한 사람에게서 비롯되었을 리도 없다.

 

국가가 건국되고 안정을 찾아가면서 중단된 혁명이 다시 불붙기를 바라는 이들은 누구인가. 넓게 보면 현재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이들이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물론 각자가 처해있는 상황은 다르다. 권위적인 교사들에게 시달리던 학생들이나 장교들에게 불만을 품은 군인들은 혁명을 통해 억눌려있던 반감을 해소했을 것이다. 관료들은 이 상황을 정적에 대한 숙청의 기회로 삼았을 것이다. 마오는 혁명을 부추기면서, 자신의 적들을 ‘주자파 走資派’라고 비난했다. ‘자본주의의 길을 가는 권력자 무리’라는 뜻이다.

 

어느새 마오가 없애려고 하는 적들은 ‘당에 숨어 들어온 자산계급 대표자들’이 되어 있었다. 마오의 적들이 자산계급을 위해 일한다면, 자연스럽게 마오는 무산계급을 대변한다. 마오는 군중이 당을 공격하도록 만들면서도, 당 내부 권력의 정점에 있는 자신은 공격당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자신이 공격당할 성싶은 아주 작은 기미만 보여도 언제든 반격할 수 있게 준비가 되어 있다. 군중들은 혁명을 외치면서도 그 혁명이 향해야 할 최종지점을 알지 못한다. 반면 마오는 혁명의 불을 지피면서도 자신이 절대 혁명의 대상이 아니며, 되어서도 안 된다고 확신한다.

 

스탈린 사후에 소련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며 마오는 자신도 그렇게 동료들로부터 부정당할 거라 의심했다. 마오가 진정 두려워한 것은 그것일지 모른다. 혁명가에서 독재자로 기억된다는 사실 말이다. 끝까지 혁명가로 남고 싶었던 마오는 류사오치에게 독재의 죄를 씌웠다. 혁명가 마오의 교리만을 남기기 위해 중국을 ‘한 장의 흰 종이’ 상태로 만들었다. 그런 혁명을 몇 번이고 반복해 자신을 신과 같은 위치로 만들려고 했다. 문화대혁명이 ‘문화 없는 혁명’인지 아닌지를 말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그러면 혁명은 무엇인가? 혁명은 무엇을 부수려고 하며, 혁명을 원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문화대혁명’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의아한 지점은 이 대격변의 원인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평가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혁명을 단순하게 사유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혁명이 사회의 부조리를 없애줄 거라는 단순한 사고, 사회의 약자들은 무조건 선함을 추구할 것이라는 낭만적 무지, 아니면 인간은 본디부터 잔혹한 존재라 언제든 폭력에 휩쓸릴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 혁명에 대한 평가들은 대체로 이 틀 안에서 작동한다. ‘문화대혁명’에 대해서는 한 가지가 더 추가된다. 혁명을 뒤에서 조종하는 늙고 추악한 독재자 마오.

 

혁명에서 태어난 국가는 혁명이 가져다준 놀라운 가능성에 계속해서 집착했다. 모든 낡은 것을 단시간에 제거해 버리는 힘, 그 뒤에는 전혀 새로운 무엇이 자리를 잡으리라는 기대감, 기존에 주목받지 못했던 집단·능력·가치가 새로이 인정받게 되는 상황. 모두들 혁명의 주체가 되고 싶고, 혁명의 수혜자가 되고 싶었으리라. 혁명이 끝나고 질서가 찾아왔을 때 그들은 은밀하게 다시 혁명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또 한 번 혁명의 수혜자가 되어 역사의 전면에 나서고 싶어서. 중국의 인민들이 그러했고, 마오 역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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