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시사] <무명의 말들> 첫 시간 발제2019-07-04 13:5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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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명사(이름)를 넘어 새로운 ‘나’로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저자의 고유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한 텍스트와 그 텍스트를 생산한 저자의 긴밀한 관계보다는, 텍스트가 생산된 배경과 담론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결국 저자 아무개가 쓰지 않더라도, 또 다른 아무개가 비슷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쓸 거라는 말이다. 또 아무개의 어떤 글이 나오는 배경과 담론 자체는 아무개의 생산물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어떤 텍스트도 자신이 고유하게 생산하였다 말할 수 없다. 한편 아무개로서 우리가 생산한 텍스트는 다시 담론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어 누군가의 텍스트 생산을 돕고, 담론의 역동성과 변화를 촉진한다.

 

《무명의 말들》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푸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의 저자 후지이 다케시는 살아있지만, 이 땅을 떠나며 절필을 선언하고 이 책을 유고집이라 칭했다. 더불어 버젓이 존재하는 저자의 이름을 두고 제목에 ‘무명’이라는 단어를 넣었다. 후지이 다케시는 저자의 고유성 부정을 넘어 고유명사의 위험성까지 주장한다. 어떤 사건을 고유명사로 부르는 일은 우리를 사건에서 배제시키는, 기억보다는 망각을 위한 준비단계로 보아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억은 ‘고유명사화’에 저항하면서 가능해진다. 우리는 후지이 다케시의 글을 ‘무명’의 말들로 읽어냄으로써, 글 속에 적힌 사건들을 우리 모두의 사건으로 읽어내고 기억할 수 있게 된다.

 

‘고유명사화’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기억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능하게 할까. 후지이 다케시는 기억을 통한 ‘나-사건-시간’의 관계성에 주목한다. 내가 어떤 사건을 만나게 되는 것은 현재라는 시간을 매개로 가능해진다. 사건과 나를 매개하는 시간이 우리를 어떤 사건에서 배제하지 않고, 언제든 나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준다. 시간을 통해 사건의 ‘당사자/제3자’의 이분법 구도는 해체된다. 이것이 우리가 ‘시사세미나’라는 이름으로 이 모임을 하는 이유이다. 지금 우리가 이 시간을 통해 주목하는 사건들이 나를 비로소 어떤 주체로 만들어주며, 그런 주목 없이 ‘나’라는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이후에 중요해지는 문제는 시간을 초월한 '나‘가 아니라 시간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나’이다. ‘나’는 결국 내가 시간을 통해 사건과 맺은 결과에 불과하다. 그 ‘나’는 바로 당사자, 피해자이며 가해자인 당사자이다. 그러니 우리는 후지이 다케시가 인용한 브레히트의 시 <나, 살아남은 자>를 읽으며 아득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살아남은 자신을 미워하며 깊은 우울에 빠지거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죽은 이들을 비난하거나 하면서. 우리 모두는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자들이며, 정치인과 재벌의 무능과 적폐를 방관하거나 도왔던 이들이다.

 

사회 변화에 대한 요구를 다시 정치인들의 손에 맡기며, 스스로를 피해자이며 약자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킨 광장의 촛불은 그 시절의 모든 문제를 박근혜 개인에게 돌리며, 우리의 모든 문제를 대리할 다른 누군가를 찾았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름으로 소수자를 대변할 강력한 규범을 소환하기도 했다. ‘시간과 관계 맺지 않는 나, 사건의 당사자로 나서지 않는 나’로 자신을 바라볼 때만 나타날 수 있는 비겁한 태도이다. 후지이 다케시의 지적대로 ‘착한 방관자’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정치는 생존의 문제이다. 생존 혹은 정치는 대립 속에서 우리의 차이를 어떻게 다루는지 배우는 일이며, 그 차이를 힘으로 바꾸는 일이다. 우리가 공부 혹은 배움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바로 갈등 속에서 ‘나’를 새롭게 구성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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