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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공백3] 김헤순의 시 읽기 :: 0421(금)
희음 / 2017-04-17 / 조회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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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공백3] 김헤순의 시 읽기 :: 0421(금)

일 시 : 2017-0421(금) pm2:00~5:00

일 정 : 김혜순의 시 (당번_희음 : 소개-후기-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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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부파일이 아닌 공지글에서는 연갈이가 뒤엉켜 버리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회 비 : 월 2만원 (세미나 첫날 반장에게 주면 됩니다)

           월 2만원으로, 다른 세미나에 무제한 참가할 수 있습니다. (기획세미나 제외)

필 수 : 결석, 지각할 일이 생기면, 이 공지 아래 댓글로 알려주세요, 꼭요!^^

회 원 : 마도요, 성혜, 세로토닌, 소소, 자연, 최원, 토라진, 희음

반 장 : 희 음 (문희정) 

 

이번 세미나의 주인공은 김혜순 시인입니다. 이 시인이 화두로 삼고 있는 것 또한 '죽음'입니다.

죽음의 전문적, 창조적 독자인 우리에게 적격인 시인이죠. 금요일에 우리 다시 어둡고 뜨겁게 만나요.^^

 

 

[詩의 공백 속으로] 시즌3 :: 세미나일정  

02-10(금) ::  1주 요즘시 :: 김행숙 ...... 당번_희음    

02-17(금) ​::  2주 요즘시​ :: 김경주 ...... 당번_정아은    

02-24(금) ​::  3주 외국시 :: 릴케   ...... 당번_희음   

03-03(금) ​::  4주  요즘시 :: 최승자 ......​ 당번_오라클    

03-10(금) ​::  5주  이전시 :: 김영랑 ......​​ 당번_마도요    

03-17(금) ​:: 휴셈 쉬어가기                                     

03-24(금)​ ::  6주  외국시 :: 실비아 플라스 ...... 당번_​​토라진

03-31(금) ​::  7주 요즘시 :: 신동엽 ......​​ 당번_성혜

04-07(금) ​::  8주 이전시 :: 파블로 네루다 ......​​ 당번_자연

04-14(금) ​::  9주 우리실험자들 봄소풍 합류 ​          

04-21(금) ​:: 10주 요즘시 :: 김혜순 ......​​ 당번_희음

04-28(금) :: 11주 이전시 :: 고은 ......​​ 당번_세로토닌     

05-05(금) ​:: 휴셈 공휴일_어린이 날  ​​   

05-12(금) ​:: 12주 외국시 :: T. S. 엘리엇 ...... 당번_소소, 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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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 김혜순

 

 

당신이 들여다보는 흑백 사진 속에 내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다른 세상에서 마주 보았다

당신의 사진 속은 늘 추웠다

기침나무들이 강을 따라 콜록거리며 서 있었다

눈을 뜨면 언제나 설산 오르는 길이었다

간신히 모퉁이를 돌아서도 희디흰 눈밭

날카로운 절벽 아래로 툭 떨어지는 가없는 벼랑이었다

얼어붙은 하늘처럼 크게 뜬 당신의 눈을 내다보는 저녁

동네에 열병을 옮기는 귀신이 들어온다는 소문이 퍼지고

굴뚝마다 연기들이 우왕좌왕 몸을 떨었다

당신은 내 몸에 없는 거야 내가 다 내쫓았거든

내 가슴에 눈사태가 나서 한 시간 이상 떨었다

기침나무들이 몸을 부르르 떨며 눈 뭉치를 떨구자

벌어진 계곡에서 날 선 얼음들이 튕겨져 나왔다

맨얼굴로 바람을 맞으며, 입술을 떨며

나는 얼어붙은 벤치에 앉아 있었다

당신이 들여다보는 여기에서 나가고 싶었다

 

당신의 첫, 김혜순, 문학과지성사, 2009

 

 

타이핑과 뜨개질

 

당신이 타이핑을 하는 동안

나는 비를 멈출 수가 없었어

톡 톡 톡 톡 하루 종일 내렸어

당신이 매일 잠언을 지어내는 동안

내리는 빗줄기 감아 뜨개질을 했어

타자기 따위 사주는 게 아니었어

당신은 그냥 그 구석에 처박혀서

노름이나 하고 말이나 타야 했어

내 얽힌 두 손은 마치 새 둥우리 같았어

불쌍한 아가들아 새 아가 다음에

또 새 아가 짜줄게 금세 짜줄게

노래를 부르며 대바늘에 빗줄기 감아올릴 때

타이핑 소리 멈추지 않아 뜨개질도 멈추지 않았어

빗물 머금은 처마처럼 앞섶이 흥건했어

등 돌리고 앉아 톡 톡 톡 톡 떨어지는 당신의 망치질

관 뚜껑 덮을 일은 그리도 많은지

나라의 목숨은 날마다 경각인지

나는 방문턱을 넘어 멀리멀리 가버렸어 심지어 범람했어

물결에 쓸려 가면서도 뜨개질을 했어

나는 당신 얼굴을 몰라 당신 등밖에 몰라

집이 무한정 늘어났어 천장과 방바닥이 만나

수평선처럼 멀어졌어 멀리서 불어온

검은 하늘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왔지만

내 갈비뼈 속에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불을 끈

인명 구출용 헬리콥터가 착륙했다 다시 이륙했지만

모두 모두 흘러가버렸어

물속에 잠긴 대바늘 두 개처럼

내가 짜는 옷감 속에 우리는 보이지도 않았지만

톡 톡 톡 못 구멍들 방 안에 가득 찼어

당신이 타이핑을 하는 동안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었어

멀리멀리 흘러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어

 

    

슬픔치약 거울크림, 김혜순, 문학과지성사, 2011

 

 

배꼽을 잡고 반가사유

 

 

안에서 밖으로 부는 풍선입니다

그 이상은 없습니다

 

숨 쉬는 소리는 왜 그리 창피한지

배꼽 속에 나를 안치한 척

옷자락 끌어내리면서 동시에 눈도 내리깔아요

 

당신의 입술이 닿은 자리라고 하면 좋겠지만

도망은 절대 금지라는 검은 지장 같기도 하고

풍선 꼭지 잘근잘근 씹어놓은 이빨 자국 같기도 합니다

 

여보세요. 계세요! 엄마가 잠자는 아기집의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화들짝 잠 깬 조그만 풍선이 앙 터지면서 엄마 뺨을 갈깁니다

 

저마다 독립 만세의 그날을 꿈꾸지만

밤이면 숟가락을 지참하고 모여드는 곳

내가 숟가락을 들고 식구들에게 근엄하게 물었죠

우리는 배꼽에서 벗어나려고 안달 난 배달민족일까

우리는 배꼽으로 들어가려고 안달 난 배달민족일까

 

사과도 고양이도 냄비 뚜껑도 양배추도

죽음이 꼬물꼬물 시작한 이곳부터 썩어요

 

나는 씨 같은 거 없어요

씨앗은 틔워서 내가 다 먹어버렸어요

 

신기하게 생긴 냄비뚜껑의 배꼽을 들어 올렸더니

거대한 알루미늄 절 한 채가 딸려 올라옵니다

잠의 경전을 헤매던 노승들이 알머리 바람으로 허둥지둥 흩어집니다

절 뚜껑을 열고 내려다보는 내 얼굴을 보더니 혼비! 혼비!

끓는 냄비 속의 까만 수제비

올챙이들 같습니다

 

나는 안에서 밖으로 불어대는 풍선입니다

그 이상은 없습니다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비행기 타고

다하도록 다하도록 이 구멍을 불어대고 있습니다

나는 얘하고 재미있게 혼자 삽니다

 

  

슬픔치약 거울크림, 김혜순, 문학과지성사, 2011

 

 

창문 열린 그 시집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 대학 앞에는 체셔인이라는

백 년 이상 묵은 호텔이 있는데

그곳엔 동화 속에서처럼 체셔가 산다

업 인 디 에어라는 영화를 보다가 내가 투숙했던 방에

조지 클루니가 들어서서

깜깜한 극장 안에서 체셔처럼 튀어올랐다

 

여기서부터 머나먼 곳

업 인 디 에어

 

연필은 그림자로 시를 쓰고

양초는 빛으로 시를 쓰죠

 

나는 신성하게도 방사능이 타고 있는 벽난로 속에

숯처럼 까만 영혼을 던지고 쉬기로 했다

먼 나라에 왔으니 기억을 씻어야지 생각했다

조금 쉬다가 슬픔치약을 발라 이를 닦았다

 

벙어리유령이 돋아나와 돌아다니는 호텔

투수객의 그림자들이 첩첩 쌓인 침대 p.45에 누워 있자니

영원히 계속되는 동화에서 흘러나온

고양이가 살며시 지나가고

비품들이 하나하나 지워졌다

무쇠난로엔 지우개 가루들이 쌓여갔다

하나님이 굴뚝 위로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빗이 거울을 부르고 거울이 빛을 부르고 빛이 나를 부르고

나는 방에 갇혀 있는 거울에 갇혀 있는 나의 슬픈 눈동자에 갇혀 있는

나에게 거울크림을 바르고 천천히 지워져갔다

 

벽난로의 시린 불꽃 속에서

거울에 희미하게 떠오른 얼굴을 향해 저 유리에 그려진 얼굴로는

뭘 할 수 있죠? 지나가는 고양이에게 물었다

 

촘촘히 빈틈으로 그물이 짜인 방

그리하여 입구도 출구도 없는 방

거울 속에서 유령이 시간 맞춰 나타나는 방

(나는 시방 상실의 방에 투숙 중

그러니 복무해라 기억해라 나와라

그런 말 좀 하지 마라

내게서 상실 좀 뺏어 가지 마라

나는 편지를 부쳤다)

 

복도에는 목숨 붙은 그림들이

액자 속 나무뿌리들을 살랑거리고

발밑의 마룻장들이 전기 롤러가 깔린 것처럼 스르르 미끄러졌다

어둠이 환한 등처럼 매달려 복도를 지우고 방을 지우지만

한 발자국만 내디디면 다시 떠나온 곳을 향해 이륙하고야 마는 호텔

 

(나는 길을 걸어가다 말고 차를 타고 가다 말고

그곳에 투숙했다 혹은 잠을 자다가도 숙박계를 적었다

그리고 하우스키퍼에게 물었다

오늘 밤 저 외로운 달은 뭘 하죠?

그는 대답했다 지워진 얼굴에 크림 발라주죠)

 

   

슬픔치약 거울크림, 김혜순, 문학과지성사, 2011

 

 

일인용 감옥

 

 

나는 물속에 들어가 혼자 있는 사람 같아요

입을 벌린 목구멍에서 물방울 보글보글 올라가요

 

옷을 벗지도 않고 물속에 서면

옷에 핀 꽃에서 붉은 물감이 연기처럼 올라가요

 

헬리콥터에서 촬영한 구명조끼를 입고 대양에서 떠오른 한 사람

두꺼운 사전 속에서 멸종하는 한 음절의 단어처럼

 

눈감으면 나타나는 검은 바탕에 한 점 환한 벌레 한 마리

청진기로 듣는 구멍 막힌 갱도에서 마지막 남은 단 한 청년광부의 숨소리

 

누가 바다 가득 젤리를 쏟아 부어 굳힌 다음

몸을 하나 똑 떠내어 이 사거리 한복판에 세워두었나요?

 

나는 내 몸에 꼭 맞는 일인용 감옥에 살아요

나를 피해 내 몸속으로 도망간 소금기둥 같아요

 

    

피어라 돼지, 김혜순, 문학과지성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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