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공백3] 파블로 네루다의 시 읽기 :: 0407(금)
희음
/ 2017-04-03
/ 조회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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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시 : 2017-0407(금) pm2:00~5:00
일 정 : 파블로 네루다의 시 (당번_자연 : 詩소개-후기-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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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비 : 월 2만원 (세미나 첫날 반장에게 주면 됩니다)
월 2만원으로, 다른 세미나에 무제한 참가할 수 있습니다. (기획세미나 제외)
필 수 : 결석, 지각할 일이 생기면, 이 공지 아래 댓글로 알려주세요, 꼭요!^^
회 원 : 성혜, 세로토닌, 자연, 토라진, 마도요, 희음
반 장 : 희 음 (문희정)
이번에 다룰 시인은 파블로 네루다입니다. 그 뜨거움에 깊이 데는 하루가 될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 금요일 봄소풍 일정으로 인해, 시 읽기 순서가 아래와 같이 조정되었습니다.
이상화 시인이 목록에서 탈락하여, 세미나 3기 종료일은 변동 없습니다.
[詩의 공백 속으로] 시즌3 :: 세미나일정
02-10(금) :: 1주 요즘시 :: 김행숙 ...... 당번_희음
02-17(금) :: 2주 요즘시 :: 김경주 ...... 당번_정아은
02-24(금) :: 3주 외국시 :: 릴케 ...... 당번_희음
03-03(금) :: 4주 요즘시 :: 최승자 ...... 당번_오라클
03-10(금) :: 5주 이전시 :: 김영랑 ...... 당번_마도요
03-17(금) :: 휴셈 쉬어가기
03-24(금) :: 6주 외국시 :: 실비아 플라스 ...... 당번_토라진
03-31(금) :: 7주 요즘시 :: 신동엽 ...... 당번_성혜
04-07(금) :: 8주 이전시 :: 파블로 네루다 ...... 당번_자연
04-14(금) :: 9주 우리실험자들 봄소풍 합류
04-21(금) :: 10주 요즘시 :: 김혜순 ...... 당번_희음
04-28(금) :: 11주 이전시 :: 고은 ...... 당번_세로토닌
05-05(금) :: 휴셈 공휴일_어린이 날
05-12(금) :: 12주 외국시 :: T. S. 엘리엇 ...... 당번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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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만한 힘
만조 때, 내가 노래할 수 있는 곳에서;
제멋대로인 밤만이 나를 억누르지만,
허나 그것의 방해로 나는 공간을 되찾고,
오래가는 그늘들을 모은다
밤의 검은 작물은 자란다
내 눈이 평야를 측량하는 동안.
그리하여, 태양으로만, 나는 열쇠들을 벼린다.
불충분한 빛 속에서는 자물쇠를 찾으며
바다로 가는 부서진 문들을 열어놓는다
찬장을 거품으로 채울 때까지.
나는 가고 돌아오는 데 지치는 법이 없고,
돌 모양의 죽음은 나를 막지 못하며,
존재에도 비존재에도 싫증나지 않는다.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내 모든 광물성의 의무를 어디에서 물려받았을까ㅡ
아버지나 어머니일가 아니면 산들일까,
생명줄들이 불타는 바다로부터 펼쳐진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내가 계속 가니까 나는 가고 또 간다는 것
도 내가 노래를 하고 도 하니까 나는 노래한다는 걸.
두 개의 수로 사이에서 그러듯
내가 눈을 감고 비틀거릴 때
일어난 일을 설명할 길이 없다ㅡ
한쪽은 죽음으로 향하는 그 지맥 속에서 나를 들어올리고
다른 쪽은 내가 노래하게 하기 위해 노래한다.
그리하여 나는 비존재로부터 만들어지고,
바다가 짜고 흰 물마루의 파도로
암초를 연타하고
썰물 때 돌들을 다시 끌고 가듯이
나를 둘러싼 죽음으로 된 것이
내 속에서 삶을 향한 창을 열며,
그리고, 존재의 경련 속에서, 나는 잠든다.
낮의 환한 빛 속에서, 나는 그늘 속을 걷는다.
(정현종 역)
사랑의 시 1
여자의 육체, 하얀 구릉, 눈부신 허벅지,
몸을 내맡기는 그대의 자태는 세상을 닮았구나.
내 우악스런 농부의 몸뚱이가 그대를 파헤쳐
땅 속 깊은 곳에서 아이 하나 튀어나오게 한다.
터널처럼 나는 홀로였다. 새들이 내게서 달아났고
밤은 내 가슴으로 거세게 파고들었다.
난 살아남기 위해 그대를 벼렸다, 무기처럼,
내 활의 화살처럼, 내 투석기의 돌멩이처럼.
그러나 이제 복수의 시간은 오고, 난 그대를 사랑한다.
가죽과, 이끼와, 단단하고 목마른 젖의 몸뚱이여.
아 젖가슴의 잔이여! 아 넋 잃은 눈망울이여!
아 불두덩의 장미여! 아 슬프고 느릿한 그대의 목소리여!
내 여인의 육체여, 나 언제까지나 그대의 아름다움 속에 머물러 있으리.
나의 목마름, 끝없는 갈망, 막연한 나의 길이여!
영원한 갈증이 흐르고, 피로가 뒤따르고,
고통이 한없이 계속되는 어두운 강 바닥이여.
(김현균 역)
100편의 사랑 소네트 033
사랑이여, 우리는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격자 위로 포도넝쿨이 기어오르는 곳:
당신보다도 앞서 여름이 그
인동넝쿨을 타고 당신 침실에 도착할 것이다.
우리 방랑생활의 키스들은 온 세상을 떠돌았다:
아르메니아, 파낸 꿀 덩어리—:
실론, 초록 비둘기—: 그리고 오랜 참을성으로
낮과 밤을 분리해온 양자강.
그리고 이제 우리는 돌아간다, 내 사랑, 찰싹이는 바다를 건너
담벽을 향해 가는 두 마리 눈먼 새,
머나먼 봄의 둥지로 가는 그 새들처럼:
사랑은 쉼없이 항상 날 수 없으므로
우리의 삶은 담벽으로, 바다의 바위로 돌아간다:
우리의 키스들도 그들의 집으로 돌아간다.
(정현종 역)
배회
때로는 사람으로 사는 게 지긋지긋할 때가 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멍하게, 양복점이나 영화관에
들어갈 때가 있다, 시원(始原)과 재의 물 위를
떠다니는 펠트 백조처럼.
이발소 냄새는 나를 소리쳐 울게 한다.
난 오직 돌이나 양털의 휴식을 원할 뿐,
다만 건물도, 정원도, 상품도, 안경도,
엘리베이터도 눈에 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발이 내 손톱이 내 머리칼이
내 그림자가 꼴 보기 싫을 때가 있다.
때로는 사람으로 사는 게 지긋지긋할 때가 있다.
그러나 붓꽃 한 송이를 꺾어 공증인을 깜짝 놀라게 한다거나
수녀의 귀싸대기를 후려갈겨 저세상으로 보내 버린다면
얼마나 통쾌할까.
꽥꽥 소리를 질러 대며 시퍼런 칼을 품고
거리를 활보하다 얼어 죽는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나는 더 이상 어둠 속 뿌리이고 싶지 않다.
떨며, 꿈결인 듯 몸서리치며, 아래로,
대지의 축축한 내장 속으로 길게 뻗은 채,
매일매일 빨아들이고 생각하고 먹어 치우는.
내게 닥칠 그 숱한 불행이 싫다.
더 이상 뿌리와 무덤이고 싶지 않다.
쓸쓸한 지하실이고 싶지 않다, 시체 그득한 창고이고 싶지 않다.
뻣뻣하게 얼어붙은 채, 신음하며 죽어 가고 싶지 않다.
내가 죄수의 얼굴로 도착하는 걸 보면
월요일은 석유처럼 불탄다.
하루가 흐르는 동안 월요일은 찌그러진 바퀴처럼 울부짖다가
밤을 향해 핏빛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나를 밀어붙인다, 구석으로, 축축한 집으로,
창문으로 뼈다귀가 튀어나오는 병원으로,
식초 냄새 풍기는 구둣방으로,
갈라진 틈처럼 무시무시한 거리로.
내가 증오하는 집들의 문에 걸린 소름 끼치는
창자들과 유황색 새들이 있다.
커피 주전자에 잊고 처박아 둔 틀니가.
수치와 공포로 울어야 했을
거울들이 있다.
도처에 우산이, 그리고 독약이, 배꼽이 있다.
나는 태연하게 거닌다, 눈을 부릅뜨고, 구두를 신은 채,
분노하며, 망각을 벗 삼아,
걷는다, 사무실과 정형외과용 의료용품점들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철사 줄에 옷이 널려 있는 마당을 지나친다.
팬티와 타월과 셔츠가 더러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김현균 역)
그 이유를 말해 주지
너희들은 물을 것이다. 라일락은 어디에 있냐고.
양귀비로 뒤덮인 형이상학은?
또 종종 낱말들을
두들기며 구멍과 새들을
한가득 만들어 놓던 빗줄기는?
내게 일어난 일을 너희들에게 낱낱이 말해 주마.
나는 종(鐘)과
시계와 나무들이 있는,
마드리드의 한 구역에 살았다.
그곳에선 가죽의
대양(大洋) 같은 카스티야의
메마른 얼굴이 바라보였다.
제라늄이 사방에서
꽃망울을 터뜨렸기 때문에 나의 집은
꽃들의 집이라고 불렸다. 개와
아이들이 뛰노는
아름다운 집이었지.
라울, 기억하는가?
라파엘, 그대도 기억하지?
페데리코, 땅속에서,
그대도 기억하는가,
유월의 햇살이 그대 입속의 꽃들을 질식시키던
발코니가 있는 나의 집을?
형제여, 형제여!
큰 목소리로 외치는
모든 것들, 상품들의 소금,
고동치는 빵 덩이들,
메를루사 사이에 조각상이 창백한 잉크병처럼
서 있던 아르구에예스 우리 동네의 시장들.
숟가락에 올리브유가 넘쳐흘렀고,
거리엔 손발의 깊은 맥박
가득했다.
미터, 리터, 삶의
예리한 본질,
켜켜이 쌓인 생선,
풍향계도 지치는
차가운 태양이 걸린 지붕들의 짜임새,
흥분한 감자들의 섬세한 상아(象牙),
굽이치며 바다로 굴러가는 토마토의 물결.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그 모든 것이 불타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땅에서
화톳불이 치솟아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그때부터 불길이,
그때부터 화약이,
그때부터 피가.
무어인들과 비행기를 탄 불한당들이,
공작부인들과 반지 낀 불한당들이,
축복의 말을 퍼붓는 검은 수도사들과 불한당들이
하늘을 통해 아이들을 죽이러 왔다.
그리고 거리마다 아이들의 피가
넘쳐흘렀다, 아이들의 피처럼, 단순하게.
자칼들도 멸시할 자칼들아,
메마른 엉겅퀴도 물었다가 뱉어 버릴 돌멩이들아,
독사조차 증오할 독사들아!
나는 스페인의 피가
너희들에 맞서 솟구쳐
긍지와 칼의 도도한 물결 이루며
너희들을 익사시키는 것을 보았다!
반역자
장군들아.
폐허가 된 나의 집을 보라.
박살 난 스페인을 보라.
그러나 무너진 집마다 꽃 대신
불타는 쇳덩이가 나온다.
그러나 스페인의 틈새마다
스페인이 생겨난다.
그러나 죽은 아이마다 눈 달린 총이 나온다.
그러나 죄악마다 언젠가 너희들의
심장을 정확히 꿰뚫을
총탄이 태어난다.
너희들은 물을 것이다. 왜 당신의 시는
꿈과 나뭇잎과 조국의 거대한
화산들에 대해 노래하지 않느냐고.
와서 거리의 피를 보라.
와서 보라,
거리의 피를.
와서 보라, 피를,
거리에 뿌려진!
(김현균 역)
시(詩)
그래 그 무렵이었다… 시가
날 찾아왔다. 난 모른다.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겨울에선지 강에선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목소리는 아니었다. 말도,
침묵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거리에선가 날 부르고 있었다.
밤의 가지들로부터
느닷없이 타인들 틈에서
격렬한 불길 속에서
혹은 내가 홀로 돌아올 때
얼굴도 없이 저만치 지키고 섰다가
나를 건드리곤 했다.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입술은
얼어붙었고
눈먼 사람처럼 앞이 캄캄했다.
그때 무언가가 내 영혼 속에서 꿈틀거렸다,
열병 혹은 잃어버린 날개들.
그 불탄 상처를
해독하며
난 고독해져 갔다.
그리고 막연히 첫 행을 썼다.
형체도 없는, 어렴풋한, 순전한
헛소리,
쥐뿔도 모르는 자의
알량한 지혜.
그때 나는 갑자기 보았다.
하늘이
흩어지고
열리는 것을
행성들을
고동치는 농장들을
화살과 불과 꽃에
들쑤셔진
그림자를
소용돌이치는 밤을, 우주를 보았다.
그리고 나, 티끌만 한 존재는
신비를 닮은, 신비의
형상을 한,
별이 가득 뿌려진
거대한 허공에 취해
스스로 순수한
심연의 일부가 된 것만 같았다.
나는 별들과 함께 떠돌았고
내 가슴은 바람 속에 풀려났다.
(김현균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