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공백3]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읽기 :: 0224(금) +2
희음
/ 2017-02-20
/ 조회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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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공백3]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읽기 :: 0224(금)
일 시 : 2017-0224(금) pm2:00~5:00
일 정 :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당번_희음 : 詩소개-후기-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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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비 : 월 2만원 (세미나 첫날 반장에게 주면 됩니다)
월 2만원으로, 다른 세미나에 무제한 참가할 수 있습니다. (기획세미나 제외)
필 수 : 결석, 지각할 일이 생기면, 이 공지 아래 댓글로 알려주세요, 꼭요!^^
회 원 : 성혜, 오라클, 정아은, 자연, 토라진, 마도요, 희음
반 장 : 희 음 (문희정)
이번 발제는 제가 맡았습니다.
릴케의 방대한 저작들 중 <기도 시집>, <신 시집>, <두이노의 비가>에서 네 편을 골라 보았습니다.
고른 시 중 두 편의 길이가 상당하여, 네 편을 이야기 나누기에도 빠듯할지 모릅니다.
<두이노의 비가> '제10 비가'는 구두로만 낭송하고 감상할 계획입니다.
부지런히 달려봅시다,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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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들은 가난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가난하지 않습니다. 부자가 아닐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의지도 없고 세계도 없습니다.
마지막 불안의 표시를 지닌 채
그저 시들고 보기 흉할 따름입니다.
도시의 온갖 먼지가 밀려와
오물이란 오물은 다 몸에 붙습니다.
천연두 환자의 침대처럼 배척당하고
깨진 접시 조각처럼, 해골처럼,
낡은 달력처럼 버림을 받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대지가 고난을 당하는 때가 오면
대지로 하여금 그들을 실에 끼워 목주를 만들어
부적처럼 몸에 지니게 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순수한 보석보다 더 맑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움직이기 시작한, 눈 못 뜬 짐승과 같고,
한없이 소박하며 끝까지 당신에게 순종하는 종입니다.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필요한 건 오직 한 가지,
참으로 있는 그대로 가난하려는 것입니다.
가난은 내면에서 나오는 위대한 광채이기 때문입니다.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
거기 두 개의 눈망울이 무르익고 있던
아폴로의 엄청난 머리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토르소는 지금도 촛대처럼 불타고 있다,
거기에는 그의 사물을 보는 눈이 틀어박힌 채,
그대로 남아 빛나고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 가슴의 풍만함이
너를 눈부시게 하지는 못하리라, 그리고 허리를
조용히 돌리며 보내는 하나의 미소가
생명을 가져다주던 그 중심을 향해 흐르지도 않으리라.
그렇지 않다면 이 돌은, 두 어깨는 투명한 상인방 같지만
밑은 흉측하고 볼품없는 돌덩이에 지나지 않으리라,
그렇게 맹수의 모피처럼 반짝이는 일도 없고,
그 모든 가장자리에서마다 마치 별처럼
빛이 비치는 일도 없으리라. 이 토르소에는 너를 바라보지 않는
부분이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너는 너의 삶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오르페우스. 에우리디케. 헤르메스
그것은 영혼의 기묘한 광산이었다.
조용한 은광석처럼 그들은 광맥이 되어
암흑 속을 걸어갔다. 뿌리들 사이로
인간에게 이어지는 피가 솟구치고
어둠 속에서 반암처럼 무거워 보였다.
그 밖에 붉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암석과
공허한 숲이 있었다. 허공으로 수없는 다리가 걸쳐 있고
큰 회색빛 흐린 연못이
어느 풍경 위의 비 내리는 하늘처럼
아득히 먼 땅 위에 걸쳐 있었다.
그리고 평온하고 한없이 여유로운 초원 사이로
표백한 긴 천처럼 이어진
한 줄기 창백한 길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길을 따라 그들은 걸어왔다.
앞장선 푸른 외투의 후리후리한 사나이는
초조한 눈빛으로 물끄러미 앞만 보고 있었다.
씹지 않고 삼켜 버리듯, 그의 발걸음은 성큼성큼 길을 먹어 갔다, 주름진 소매 사이로
힘없이 무겁게 늘어진 손은,
올리브나무 가지로 뻗어 들어간 장미 덩굴처럼
왼쪽으로 불쑥 나와 있는
가벼운 칠현금도 완전히 잊고 있었다.
감각이 분열된 것 같았다.
그의 시선이 개처럼 앞질러 가서는,
돌아보고, 되돌아왔다는 다시 왔다가는 다시 또 앞서 가
다음 갈림길에서 기다리며 서 있고 하는 동안에도 -
그의 청각은 후각처럼 뒤에 머물고 있었다.
가끔은 이 언덕길을 줄곧 뒤따라와야 할
두 사람의 발걸음에까지
청각이 다가가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뒤에 있는 것은 다만
언덕을 오르는 자신의 발소리와 외투를 스치는 바람 소리뿐이었다.
틀림없이 오고 있어, 그는 중얼거렸다.
크게 내뱉은 말소리가 차츰 사라져 가는 것이 들렸다.
틀림없이 오고 있어, 그저 그들의
걸음걸이가 너무 조용한 것뿐일 거야.
그가 한 번 몸을 돌린다면(이 뒤돌아봄이
이제 막 성취되려는 모든 일을
무너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없이 뒤따르는
그 조용한 두 사람을 틀림없이 볼 수 있으리라.
형안 위에는 여행의 두건을 쓰고,
앞에는 가느다란 지팡이를 들고,
발목에는 날개가 퍼덕이는,
심부름의 신, 먼 전령의 신을,
그리고 그의 왼손에 몸을 맡기고 있는 그 여인을.
그처럼 사랑하는 여인. 하나의 칠현금에서
예전의 많은 통고그이 여인들보다도 더 큰 비탄을 자아내게 하고
비탄의 세계가 태어나, 그 속에서 숲과 계곡
길과 마을, 들과 강과 짐승이
다시 한 번 어울려 살게 만들고,
이 비탄의 세계를 에워싸고 마치
또 하나의 지구를 돌 듯이, 태양과
별이 있는 조용한 하늘,
일그러진 별들로 가득한 그 비탄의 하늘을 회전하게 한 -
참으로 사랑하는 그 여인.
그러나 그녀는 신의 손에 의지한 채
시신을 감쌌던 긴 끈에 방해를 받아 가면서
불안스레, 차분히, 초조한 기색 없이 걸어갔다.
큰 희망을 품은 여인처럼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있었다,
앞서 가는 사나이를 생각하지도 않았고,
삶의 세계로 올라가는 길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자신이 되어 있었다. 죽어 있음이
풍요처럼 그녀를 충만하게 하고 있었다.
감미로움과 어둠의 한 열매처럼,
새로워서 전혀 알 수 없는
위대한 죽음으로 넘쳐 있었다.
새로 찾은 그녀의 처녀성은
건드릴 수 없었다. 성(性)은
저녁녘의 어린 꽃봉오리 같고
혼례의 관습 같은 것을 전혀 모르는 손은
가벼운 신의 한없이 조용해 인도하는 손길마저도
지나친 친절처럼 그녀이 마음을 부담스럽게 했다.
그녀는 이미 시인의 노래에 나오는
금발의 여인이 아니었다.
넓은 침대의 향기도 아니고 섬도 아니고,
저 사나이의 소유물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그녀는 긴 머리카락처럼 풀리고
땅에 내린 비처럼 몸 바치고
끝없이 나눠 주는 넉넉함 같았다.
그녀는 이미 뿌리였다.
제9 비가
이 존재의 짧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초록빛보다 좀 더 짙게
잎새 가장자리마다 (바람의 미소 같은) 작은 물결이 이는 월계수처럼 될 수도 있으련만, 왜
인간의 삶을 어렵게 계속하여야만 하는가 – 그리고 운명을 피하면서
운명을 그리워하는가?······
오, 거기 행복이 있어서가 아니다.
행복이란 다가오는 손실에 성급하게 앞서 오는 이득일 뿐이다.
호기심에서도 아니다, 마음의 수련을 위해서도 아니다.
마음은 월계수 시간의 순수성에 대한 향수를 상장한다.
속에도 살아 ‘있으리라’······
아니, 그것은 이 지상에 살아 있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우리를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라지기 쉬운 것들이 이상스럽게도 우리와 관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사라지기 쉬운 이 우리들과,
모든 존재는 한 번뿐이다. 단 한 번, 한 번뿐, 더는 없다. 우리 또한
한 번뿐이다.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비록 한 번이지만, 이 한 번 존재했다는 것,
지상에 있었다는 사실, 그것은 철회할 길이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절박하게 그 존재를 성취하려 든다.
맨손으로 움켜잡으려 한다.
넘치는 시선 속에, 말 없는 심장 속에 간직하려 한다.
지상의 존재가 되고자 한다. - 누구에게 주기 위해서인가?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영원히 우리 것으로 보존하기 위해서······아, 그러나 저세상의 다른 관계 속으로
우리는 무엇을 들고 갈 것인가? 이승에서 더디게 배운 관조가 아니다,
여기서 생겼던 일도 아니다. 아무것도.
우리가 갖고 가는 것은 고통이다. 무엇보다도 삶의 무거움이다.
사랑의 긴 경험이다 – 그렇다,
순전히 말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훗날
별들의 세계에 이르면, 그런 것도 다 무엇이랴. ‘별이야 말로 더더욱’ 말로는 표현할 길 없는 것들이다.
방랑자도 산비탈에서 골짜기로 들고 오는 것은
정녕 말로 할 수 없는 한 줌의 흙이 아니다,
힘겹게 얻어 낸 낱말 하나, 순수한 말, 노랗고 파란 용담꽃이다.
아마도 우리가 지상에 존재하는 것은 말을 하기 위해서이리라. 집,
다리, 샘물, 문, 항아리, 과수, 창문,
혹은 기껏해야 원주니 탑이니 하고······ 그러나 이해하라, 말을 한다 함은,
사물들 스스로도 결코 자기들이 그런 존재라고는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것처럼,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이다. 사물의 본질을 드러나게 한다는 의미이다. ‘사물에 언어를 주어 사물 스스로 말하게 한다’는 그의 말과도 같다.
대지의 힘에 의하여
연인들의 정감 속에서 모든 것 하나하나가 황홀에 잠기게 되는 것은
말 없는 이 대지의 은밀한 계략이 아닐까?
가량 문턱은 어떤가. 두 연인은 옛부터 이어오는 그 문턱을,
앞서 간 많은 사람들 다음에, 그리고 뒤에 올 미래의 사람들에 앞서,
그들과 마찬가지로 조금은 닳게 하겠지만······ 가볍게 넘으리라.
‘이 지상은 말할 수 있는 존재’의 시간, ‘이 지상은’ 그 고향이다.
말하라, 그리고 고백하라. 그 어느 시대보다도
사물들이, 체험 가능한 사물들일 사라지고 있다.
그것들을 몰아내고 자리 잡은 것은 형상 없는 행위다.
껍데기뿐인 행위. 껍데기는 행위가 속에서 성장하여 한계가 드러나면 이내 부서지고 만다.
우리의 심정은 망치질 틈새에 끼어 살고 있다.
마치 우리의 혀가
치아 사이에 있으면서도
한사코 찬미를 멈추지 않는 혀로 남아 있듯이.
천사에게 찬미하라, 이 시계를, 그러나 말할 수 없는 세계는 안 된다. ‘천사에게는’
화려한 너의 감성도 자랑이 될 수는 없다, 우주 공간에서
보다 절실한 감성을 지니고 있는 천사에게 너는 풋내기일 뿐이다.
천사에게는 다만 소박한 것을 보여라.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며 형성되어
우리의 손 가까이, 그리고 눈에 보이게 살아 있는, 우리의 것을.
천사에게 사물들을 말하라. 그것이 그를 더욱 놀라게 하리라. 언젠가 네가 로마의 밧줄 제조공이나 혹은 나일 강가의 도공을 보고 놀랐듯이.
천사에게 보여라. 하나의 사물이 얼마나 행복하게, 얼마나 순수하게, 그리고 얼마나 우리의 소유가 될 수 있는가를,
비탄하는 고뇌조차도 그것이 얼마나 형상을 갖추기 위하여 순수한 결의를 하고,
하나의 사물로 봉사할 수 있는가, 혹은 죽어서 하나의 사물이 되는가를 – 그리고 그 죽음 속에서
얼마나 행복스런 선율로 바이올린으로부터 흘러나오는가를 – 사라짐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 사물은 이해하고 있다, 네가 그들을 찬미하고 있음을. 덧없이
사물들은 우리에게, 가장 덧없는 존재인 우리에게 사물과는 달리 인간에게는 소멸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 구원을 기대한다.
사물들은 원한다, 우리가 그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심정 속에서 변용시켜 주기를,
- 오, 우리들 내면으로의 무한한 변용을! 비록 우리가 하찮은 존재일지라도.
대지여, 이것이 네가 원하는 것 아닌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우리들 마음속에서 되살아나는 것,
- 그것이 너의 꿈이 아닌가?
언젠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되는 것? - 대지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
변용 아니면, 무엇이 너의 절박한 위탁이겠는가?
대지여, 사랑하는 대지여, 나는 너의 위탁을 해내리라. 오 믿어라. 나를 너에게 귀의하게 하기 위해서는
너의 많은 봄은 필요하지 않다 – 단 한 번의 봄,
아, 단 한 번의 봄으로도 나의 피에는 넘친다.
이름도 없이 나는 너와 하나 되기로 결의했다, 멀리서부터.
언제나 너의 뜻은 옳았다, 친숙한 죽음이야말로
너의 신성한 착상이다.
보라, 나는 살아 있다. 무엇으로? 유년도 미래도
줄지 않는다. ······ 넘치는 지금의 존재가
나의 마음속에서 용솟음친다.
댓글목록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이번 주 결석입니다. 가족 여행이 있어서요......
희음님의 댓글
희음좋은 시간 보내고 오세요, 토라진 님. 토라진 님 몫까지, 시 공백의 지구를 지키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