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공백2] 쉼보르스카의 시 읽기 :: 1230(금)
희음
/ 2016-12-26
/ 조회 1,646
첨부파일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hwp 다운 17
관련링크
본문
[詩의 공백2] 쉼보르스카의 시 읽기 :: 1230(금)
일 시 : 2016-1230(금) pm2:00~5:00
일 정 : 쉼보르스카의 시 (당번_토라진 : 詩소개-후기-간식)
쉼보르스카의 시 첨부파일을 다운받아 프린트 해주세요. ^_^
(첨부파일이 아닌 공지글에서는 연갈이가 뒤엉켜 버리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토라진 님께서 쉼보르스카의 시를 발췌해 주셨습니다. 감사를 전합니다.
회 비 : 월 2만원 (세미나 첫날 반장에게 주면 됩니다)
월 2만원으로, 다른 세미나에 무제한 참가할 수 있습니다. (기획세미나 제외)
필 수 : 결석, 지각할 일이 생기면, 이 공지 아래 댓글로 알려주세요, 꼭요!^^
회 원 : 두루한, 성혜, 소리, 소소, 오라클, 주호, 케테르, 침연, 토라진, 희음
반 장 : 희 음 (문희정, 010–8943–1856)
----------------------------------------------------------------------------------------------------------
단어를 찾아서
솟구치는 말들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었다.
있는 그대로의 생생함으로,
사전에서 훔쳐 일상적인 단어를 골랐다.
열심히 고민하고, 따져보고, 헤아려보지만
그 어느 것도 적절치 못하다.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가장 천박한 단어는 너무나 거룩하다.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퍽이나 온건하다.
그 단어는 화산 같아야 한다.
격렬하게 솟구쳐 힘차게 분출되어야 한다.
무서운 신의 분노처럼,
피 끓는 증오처럼.
나는 바란다. 그것이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기를.
피로 흥건하게 물든 고문실 벽처럼
내 무덤들이 똬리를 틀지언정,
나는 정확하게, 분명하게 기술하고 싶다.
그들이 누구였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 내가 듣고 쓰는 것, 그것으론 충분치 않다.
터무니없이 미약하다.
우리가 내뱉는 말에는 힘이 없다.
그 어떤 소리도 하찮은 신음에 불과하다.
온 힘을 다해 찾는다.
적절한 단어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다.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두 번은 없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작은 풍선이 있는 정물
죽음의 순간에 이르면
추억을 되돌리기보다는
잃어버린 물건들을 되찾고 싶다
창가와 문 앞에
우산과 여행 가방, 장갑, 외투가 수두룩.
내가 한번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아니, 도대체 이게 다 뭐죠?”
이것은 옷핀, 저것은 머리빗,
종이로 만든 장미와 노끈, 주머니칼 여기저기.
내가 한번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뭐, 아쉬운 게 하나도 없네요.”
열쇠여, 어디에 숨어 있건 간에
때맞춰 모습을 나타내주렴.
내가 한번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녹이 슬었네, 이것 좀 봐, 녹이 슬었어.”
증명서와 허가증, 설문지와 자격증이
구름처럼 하늘을 뒤덮었으면.
내가 한번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세상에, 태양이 저물고 있나 보군.”
시계여, 강물에서 얼른 헤엄쳐 나오렴.
너를 손목에 차도 괜찮겠지?
내가 한번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넌 마치 시간을 가리키는 척하지만, 실은 고장 났잖아.”
바람이 빼앗아 달아났던
작은 풍선을 다시 찾을 수 있었으면.
내가 한번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쯧쯧, 여기엔 이제 풍선을 가지고 놀 만한 어린애는 없단다.”
자, 열러진 창문으로 어서 날아가렴,
저 넓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렴.
누군가 제발 큰 소리로 “저런!” 하고 외쳐주세요!
바야흐로 내가 와락 울음을 터뜨릴 수 있도록.
선택의 가능성
영화를 더 좋아한다.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바르타 강가의 떨갈나무를 더 좋아한다.
도스토옙스키보다 디킨스를 더 좋아한다.
인간을 좋아하는 자신보다
인간다움 그 자체를 사랑하는 나 자신을 더 좋아한다.
실이 꿰어진 바늘을 갖는 것을 더 좋아한다.
초록색을 더 좋아한다.
모든 잘못은 이성이나 논리에 있다고
단언하지 않는 편을 더 좋아한다.
예외적인 것들을 더 좋아한다.
집을 일찍 나서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의사랃과 병이 아닌 다른 일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한다.
줄무늬의 오래된 도안을 더 좋아한다.
시를 써서 웃음거리가 되는 편을 더 좋아한다.
명확하지 않은 기념일에 집착하는 것보다
하루하루를 기념일처럼 소중히 챙기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나에게 아무것도 섣불리 약속하지 않는
도덕군자들을 더 좋아한다.
지나치게 쉽게 믿는 것보다 영리한 선량함을 더 좋아한다.
민중들의 영토를 더 좋아한다.
정복하는 나라보다 정복당한 나라를 더 좋아한다.
만일에 대비하여 뭔가를 비축해놓은 것을 더 좋아한다.
정리된 지옥보다 혼돈의 지옥을 더 좋아한다.
신문의 제 1면보다 그림 형제의 동화를 더 좋아한다.
잎이 없는 꽃보다 꽃이 없는 잎을 더 좋아한다.
품종이 우수한 개보다 길들지 않은 똥개를 더 좋아한다.
내 눈이 짙은 색이므로 밝은 색 눈동자를 더 좋아한다.
책상 서랍들을 더 좋아한다.
여기에 열거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마찬가지로 여기에 열거하지 않은 다른 많은 것들보다 더 좋아한다.
숫자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은
자유로운 제로(0)를 더 좋아한다.
기나긴 별들의 시간보다 하루살이 풀벌레의 시간을 더 좋아한다.
불운을 떨치기 위해 남를 두드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얼마나 남았는지, 언제인지 물어보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
존재, 그 자체가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끝과 시작
모든 전쟁이 끝날 때마다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만 하리.
그럭저럭 정돈된 꼴을 갖추려면
뭐든 저절로 되는 법은 없으니.
시체로 가득 찬 수레가
지나갈 수 있도록
누군가는 길가의 잔해들을
한옆으로 밀어내야 하리.
누군가는 허우적대며 걸어가야 하리.
소파의 스프링과
깨진 유리 조각,
피 묻은 넝마 조각이 가득한
진흙과 잿더미를 헤치고.
누군가는 벽을 지탱할
대들보를 운반하고,
창에 유리를 끼우고,
경첩에 문을 달아야 하리.
사진에 근사하게 나오려면
많은 세월이 요구되는 법.
모든 카메라는 이미
또 다른 전쟁터로 떠나버렸건만.
다리도 다시 놓고,
역도 새로 지어야 하리.
비록 닳아서 누더기가 될지언정
소매를 걷어붙이고.
빗자루를 손에 든 누군가가
과거를 회상하면,
가만히 듣고 있던 다른 누군가가
운 좋게도 멀쩡히 살아남은 머리를
열심히 끄덕인다.
어느 틈에 주변에는
그 얘기를 지루히 여길 이들이
하나둘씩 몰려들기 시작하고.
아직도 누군가는
가시덤불 아래를 파헤쳐서
해묵은 녹슨 논쟁거리를 끄집어내서는
쓰레기 더미를 가져간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 서서히 이 자리를 양보해야만 하리.
아주 조금밖에 알지 못하는,
결국엔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에게.
원인과 결과가 고루 덮인
이 풀밭 위에서
누군가는 자리 깔고 벌렁 드러누워
이삭을 입에 문 채
물끄러미 구름을 바라보아야만 하리.
ABC
이제 절대로 알 수 없으리라.
나에 대해서 A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B는 결국 나를 용서했는지.
어찌하여 C는 괜찮은 척, 잘 지내는 척했는지.
D의 침묵에 E가 어떤 방식으로 관여했는지.
F가 기대했던 건 무엇이었는지(혹시라도 기대를 했었다면)
모든 걸 알면서도 G는 왜 모들 척했는지.
H는 무엇을 숨기고 있었는지.
I가 덧붙이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는지.
내가 곁에 있었다는 사실이
그 어떤 의미라도 남겼는지
J와K, 그리고 나머지 알파벳에게.
지도
평평하다,
자신이 몸을 펴고, 누워 있는 탁자처럼.
그 밑에서 꿈틀대는 건 아무것도 없고,
배출구를 찾지도 않는다.
그 위에서 내가 내뿜는 인간의 숨결은
대기에 아무런 동요도 일으키지 않고
표면 전체를 평화롭게 놔둔다.
평원과 골짜기는 늘 초록색,
고지대와 산맥은 노란색과 갈색,
가장가리에 찢긴 해안과 맞닿아 있는
바다와 태양은 친근한 하늘색.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조그맣고, 닿을 수 있고, 가깝다.
손톱 끝으로 화산을 눌러버릴 수도 있고,
두꺼운 장갑 없이도 극점을 어루만질 수 있다.
한 번의 눈짓으로 사막 전체를 아우를 수 있다.
바로 옆에서 유유히 흐르는 강과 더불어.
밀림은 나무 몇 그루로 표시되어 있어
그 속에서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동쪽과 서쪽,
적도와 위와 아래 -
음식 위에 살며시 검은 깨를 뿌려놓은 듯 고요하고 잠잠하다.
그리고 그 검은 점 하나하나마다
사람들이 살고 있다.
수많은 무덤들, 느닷없는 폐허들은
도면 속에서 모두 배제되었다.
나라들 간의 국경선은 아주 희미하게 보인다.
마치 존재 여부 자체를 망설인 것처럼.
나는 지도가 좋다, 거짓을 말하니까.
잔인한 진실과 마주할 기회를 허용치 않으니까.
관대하고, 너그러우니까.
그리고 탁자 위에다 이 세상이 아닌
또 다른 세상을 내 눈앞에 펼쳐 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