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공백2] 황지우의 시 읽기 :: 1216(금) +1
희음
/ 2016-12-12
/ 조회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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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공백2] 황지우의 시 읽기 :: 1216(금)
일 시 : 2016-1216(금) pm2:00~5:00
일 정 : 황지우의 시 (당번_침연 : 詩소개-후기-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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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이 아닌 공지글에서는 연갈이가 뒤엉켜 버리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침연 님께서 황지우의 시를 발췌해 주셨고, 아래와 같은 취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1. 시들 중 몇편은 함께 감상하자는 뜻에서, 몇편은 세미나 목적으로 발췌했습니다.
2. 세미나 목적으로 발췌한 시들 중 몇편은, 초본과 퇴고본을 함께 실었습니다.
회 비 : 월 2만원 (세미나 첫날 반장에게 주면 됩니다)
월 2만원으로, 다른 세미나에 무제한 참가할 수 있습니다. (기획세미나 제외)
필 수 : 결석, 지각할 일이 생기면, 이 공지 아래 댓글로 알려주세요, 꼭요!^^
회 원 : 두루한, 소리, 소소, 오라클, 주호, 케테르, 침연, 토라진, 희음
반 장 : 희 음 (문희정, 010–8943–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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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아픈 후회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高熱)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 주는 바람뿐
『소월시문학상수상작품집』, 문학사상사, 1994
뼈 아픈 후회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게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神像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1998년
물 빠진 연못
다섯 그루의 노송(老松)과 스물여덟 그루의 자미(紫薇) 나무가
나의 화엄(華嚴) 연못, 물들였네
이제는 아름다운 것, 보는 것에도 질렸지만
도취하지 않고 이 생(生)을 견딜 수 있으랴
햇빛 받는 상여처럼 자미꽃 만발할 제
공중에 뜬 나의 화엄 연못,
그 따갑게 환한 그 곳;
나는 세상으로부터 잊혀지고
돌아와야 편한 정신병원 같은 나의 연못,
나는 어지러워서
연못가에 진로(眞露) 들고 쓰러져 버렸네
다섯 그루의 노송과 스물여덟 그루의 자미나무가
나의 연못을 떠나 버렸네
한때는 하늘을 종횡무진 갈고 다녔던 물고기들의
사라진 수면(水面);
물 바진 연못, 내 비참한 바닥,
금이 쩍쩍 난 진흙 우에
소주병 놓여 있네
- 제 8회 『소월시문학상수상작품집』, 문학사상사, 1994
물빠진 연못
다섯 그루의 노송과 스물여덟 그루의 자미紫薇나무가
나의 화엄연못, 지상에 붙들었네
이제는 아름다운 것, 보는 것도 지겹지만
화산재처럼 떨어지는 자미꽃들, 내 발등에 남기고
공중에 뜬 나의 화엄연못, 이륙하려 하네
가장자리를 밝혀 중심을 비추던
그 따갑게 환한 그곳, 세상으로부터 잊혀진
중심수中心樹, 폭발을 마치고
난분분한 붉은 재들 흩뿌리는데
나는 이 우주 잔치가 어지러워서
연못가에 진로眞露들고 쓰러져버렸네
하, 이럴 때 그것이 찾아왔다면
하하하 웃으면서 죽어줄 수 있었을 텐데
깨어나 보니 진물 난 눈에
다섯 그루의 노송과 스물여덟 그루의 자미나무가
나의 연못을 떠나버렸네
한때는 하늘을 종회무진 갈고 다니며
구름 뜯어먹던 물고기들의
사라진 수면水面
물 빠진 연못, 내 비참한 바닥,
금이 쩍쩍 난 진흙 우에
소주병 놓여 있네
-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성(聖)찰리 채플린
영화 <모던 타임즈> 끝장면에서 우리의 ‘무죄한 희생자’,
찰리 채플린이 길가에서 신발끈을 다시 묶으면서, 그리고
특유의 슬픈 얼굴로 씩 웃으면서 애인에게
「그렇지만 죽는다고는 말하지 마!」하고 말할 때
나는 또 소갈머리 없이 울었지
내 거지 근성 때문인지도 몰라 ; 나는 너의 그 말 한마디에
굶주려 있었단 말야:
「너, 요즘 뭐 먹고 사냐?」고 물어 주는 거
- 제 8회 소월시문학상작품집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94'소월시문학상작품집 | 게눈 속의 연꽃
나무는 여러 번 살아서 좋겠다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生)이 마구 가렵다
어언 내가 마흔이라는 사실에 당황하고 잇을 때,
하늘은 컴퓨터 화면처럼 푸르고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왜정 시대의 로마네스크식 관공서 건물 그림자를
가로수가 있는 보도에까지 늘어뜨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내가 어떻게 마흔인가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病名)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나는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며
11월의 나무는
아직도 살려고 발버둥치는 환자처럼, 추하다
11월의 나무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이 마구 가렵다
주민등록번호 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측광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11월의 나무는그
렇게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등 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初經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줄 수도 없고
생이 끔찍해졌다
딸의 일기를 이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가족의 성금란을
표시해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버리고 싶은 생각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 눈으로 술잔의 水位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廢人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출처]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비 그친 새벽 산에서
비 그친 새벽 산에서
나는 아직도 그리운 사람이 있고
산은 또 저만치서 등성이를 웅크린 채
槍 꽂힌 짐승처럼 더운 김을 뿜는다
이제는 그대를 잊으려 하지도 않으리
산을 내려오면
산은 하늘에 두고 온 섬이었다
날기 위해 절벽으로 달려가는 새처럼
내 希望의 한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다
- 『소월시문학상수상작품집』, 문학사상사, 1994
늙어가는 아내에게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 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켯던 뜨거운 말: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알한알
들어내고 적갈색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 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 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묻힌 손으로 짚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게 눈 속의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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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님의 댓글
주호
아쉽게도 이번주 금요일은 결석... (털석) 오래전부터 예정된 송년회 때문에 ㅜㅜ
침연님 발제 순서에 못 간다니 다소 아쉽네요. 저를 위해 발제문 하나 정도 빼놓으실 분? 안계신가요?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