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자유서 (싸움구경~ 문학의 에누리) 루쉰 세미나 2018.07.11 손미경
손미경
/ 2018-07-10
/ 조회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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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자유서 』 루쉰 세미나 2018.7.11. 손미경
불통하는 사회 (싸움구경~ 문학의 에누리)
『거짓자유서』는 루쉰이 1993년 1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선바오』의 부간 『자유담』에 何家幹, 幹, 丁멍 등의 필명으로 발표한 잡문을 모운 문집이다.
...『자유담』은 실은 자유롭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자유담』이라고 부르고 있으므로 간신히 우리는 이런 자유로운 모습으로 이 지면에서 말하고 있다 (사실 숭상)라고 했다. 이런 까닭으로 『자유담』에 기고한 글을 모아 『거짓자유서』라는 이름으로 묶어 내었다.
루쉰은 중국인들의 가장 큰 특징으로 싸움구경, 그것도 무척 좋아할뿐더러 심지어 타인의 불행을 자양분 삼아 살아가는 것이라 했다. 이런 태도에서 중국을 침략한 외적에 대하여 취하는 태도는 두 가지, 가까이 있으면 ‘무저항’이고 멀리 있으면 ‘쇠뇌를 짊어지고 선구가 된다’ 라고 운운.
만주사변(1931년) 후 전국의 학생들이 장제스의 무저항 정책에 항의 하자 철저히 탄압했던 국민당 정부는 일본의 위관 함락으로 베이핑이 위험해지자 지난번처럼 당하지 않겠다고 학생들이 흩어져 버리자 이번에는 ...그들이 남긴 역겨운 냄새는 만년동안 계속될 것이다.(도망에 대한 변론) 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을 사실로 믿고 숭상하면 결과적으로 남는 것은 텅 빈 베이핑과 힘없는 대학생 뿐 일 것이다.
당시 중국은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기 보다는 ‘무저항’에서 ‘장기저항’으로 다시 ‘심리저항’으로 들어가는 시기에 놓이게 되었다. (항공 구국의 세 가지 소원) 그런 전략관계로 인해 죽어나는 것은 인민들일 터. 도대체 유혈이라도 불사하고 무력으로 반대운동을 제지해야 한다고 하는 그런 전략관계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아마도 국민당은 ‘공산당 포위토벌’이 외적의 침입보다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게 南遷한 ‘고궁의 고대유물’이 쟝제스와 함께 타이완으로 옮겨져, 그들의 정치생명력을 연장하는데 일조 한 것을 보면 나름 고대 유물의 가치를 제대로 본 것일지도.
무저항이 가져온 폐해는 결국 패배주의. 절대로 이길 수 없고 싸우다 죽는 것도 좋지 않으므로 어지간하게 적절한 방법은 패배! 루쉰은 혁명이 아니면 모든 전쟁은 운명적으로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임을 우리에게 경고 (전쟁에 대한 기도) 한다.
이른바 교육받은 지식인 사회를 풍자하는 풍자가는 위험하다. 그들은 하나하나 암암리에 자신들의 풍자로 풍자가를 찔러 죽이고 싶어 할 것이다. 이들이 통치자의 졸개를 자처하는 시대라면 더욱 그렇다. 그야말로 暗箭이 난무 할 것이다. 사회에 유머가 유행하게 된 것은 죽어 없어지지 않고서는 뱃속이 늘 답답해서 웃음이라는 장막을 빌려 허허거리며 그것을 토해내는 것. 그러나 이 또한 오래가지 못하고 종국에는 ‘엄숙’으로 대체 되었다. 즉 엄숙한 얼굴로 ‘무저항주의’의 부족분을 보충하라는 것. 이것이 바로 ‘악독’이다.
중국 문학에서 문장 속 과장, 허세, 거짓말은 한도 없이 지속...따라서 모름지기 취소하거나 에누리 해야지만 비로소 몇 푼의 진실이라도 드러나게 된다. 중략. ‘문학가’들이 과장, 허세, 거짓말 따위의 자신들의 고질병을 이미 고쳤다는 것을 구체적인 사실로 증명하지 않는다면 헛 수고이다.(문학의 에누리)
사람들은 문장을 비평할 때면 대개는 通인가 不通인가에 착안한다. 불통에는 두 가지 원인. 하나는 통하게 못쓴 경우, 또 하나는 ‘감희 통하게 쓰지 못하’는 까닭(‘기꺼이 통하게 않게 쓰’는 부류)인데 ‘예술을 위한 예술’가, 온갖 방법으로 불통을 미화하는 ‘민족주의 문학’가가 그들이다. 두 가지 불통에 대한 루쉰의 글을 반박한 왕핑링의 글 속 ‘듣자하니’와 ‘만약’은 모두 과녁 없이 화살을 쏘거나 피를 머금고 남에게 뿜어내는 격으로 그들이 말한 通에 대한 에누리가 필요하다.
영국인 버나드 쇼는 1933년 배를 타고 세계를 주유하던 주 2월 홍콩과 상하이에 들렀다. 보수진영은 그로 인해 일본의 군사행동이 잠시 멈추기를 희망하면서 평화의 노옹이라고 하고서는 홍콩청년들과의 대화는 ‘공산주의 선전’이라고 하면서 힐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루쉰은 ...하지만, 프티부르주아 지식계층의 분화로 낙오하지 않으려는 몇 몇 사람들이 나타났고, 부르주아의 ‘반역자’로 변신. 그런데 반역자는 언제나 적보다 훨씬 가증스러운 법. 백만의 재산과 세계적인 명성을 주었는데도 불만을 품고 있으므로 ‘가증스러움의 극치에 속한다’고 (쇼에 대한 송가). 그는 이름을 드러내며 중국에 오지 말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