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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9세기 예술과 문학에서 ‘시간’의 문제 (후기) +6
삼월 / 2016-06-06 / 조회 9,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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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큰 재난들이 아니라 작은 재난들이다”

 

 플로베르의 소설에서 주인공은 ‘시간’이다. 시간은 등장인물들을 규정하고, 그들에게 생명을 주며, 결국에는 피폐하게 만들고 파괴시킨다. 플로베르는 우리가 거창하고 충격적인 좌절들로 인해 파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희망과 야심이 시들면서 함께 시들어간다는 서글픈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제 시간은 고대 비극에서 ‘운명’이 가졌던 자리를 대체한다. 시간은 우리 삶을 파괴할 정도로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시간의 힘은 우리의 삶이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도 알게 해 주었다. 시간에 따라 사물은 우리에게 그 의미가 달라진다. 플로베르의 낭만주의 속에서 시간은 과거에 대한 향수를 드러낸다. 그에게 과거는 아름답게 회상할 수 있는 것이었으나, 현재는 과거와 달리 늘 메마르고 무의미했다. 이런 감정의 지속 속에서 결국은 아름답게 회상된 과거조차 보잘 것 없는 것이었음이 드러나고, 시간은 다시 우리 삶의 공허함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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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과 존속에 대한 순간의 우위

 

 인상주의 그림들은 어떤 면에서 새로운 감정과 심리, 의지의 표현들이다. 그 이전의 시대에서 볼 수 없었던 유례없이 빠른 기술의 발전과 유행의 교체는 예술가들을 자극했다. 특히 19세기의 인상주의 화가들은 새로운 표현을 통해 ‘시간’이라는 이 변화에 적응해갔다. 인상주의가 주목한 것은 지속과 존속에 대한 순간의 우위였으며, 이것은 모든 현상이 일시적이라 한번 사라지고 나면 재생할 수 없다는 깨달음에서 왔다. 인상주의자들의 시선은 자연의 모습을 생성과 소멸의 한 과정으로 보았다. ‘기억된 색채’를 거부하고 직접 지각으로 얻은 인상을 표현하려는 이런 시도는 결코 자연스러운 행위가 아니었으며, 인류에게 있어 극도로 복잡한 심리학적 과정을 통한 변혁이자 새로운 의지의 표현이었다. ‘시간’을 의식하면서 인간의 정신은 더욱 역동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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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

 

 프루스트는 플로베르와 달리 인생을 갉아먹는 파괴요인으로 시간을 보지 않는다. 프루스트에게 지나간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이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무엇으로 다가온다. 프루스트에게 진정한 낙원은 이미 잃어버린 낙원이다.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삶의 문제를 시간을 통해 제기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해 삶의 은밀한 기쁨을 찾는 과정은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에서도 볼 수 있다. 프루스트는 과거의 시간을 찾음으로써만 진짜 삶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고 여겼고, 현재를 살아가는 동안에는 그 기쁨을 만끽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예술활동이나 관조, 회상은 프루스트에게 우리가 인생을 진정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형식으로 인식되며, 그 매개는 시간이다.

 

 

 이렇게 19세기 예술과 문학에서 ‘시간’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플로베르에게 시간은 인간을 파괴하는 폭군이었고, 인상주의자들에게는 정신의 역동성을 촉진하는 자극제였으며, 프루스트에게는 병든 삶을 위로할 도구가 되어주었다. 결국 이 시대에 이르러 인간은 시간과 더불어, 시간에 적응하면서, 시간을 이용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댓글목록

자연님의 댓글

자연

후기, 못 올려서 마음만 쪼금 동동거렸어요.
다시 읽으니 재미있네요. 프루스트 책 읽어보고 싶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빌렸는데, 표지가 예쁘서 맘에 들더라구요.
하지만 혼자 읽기는 어렵겠다는...ㅠ
대신에 영화 봤어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회화와 문학처럼 영화도 예술의 대상이다, 생각하면서
코믹한 예술 작품 본 느낌이었어요.
이번 '영화의 시대' 공부 다 한 셈이죠!!!

삼월님의 댓글

삼월 댓글의 댓글

저는 오히려 이 책 읽으면서는 프루스트가 그렇게 땡기진 않았어요.
역사적 맥락을 훑어본다는 작업이 개별 작가나 텍스트를 돋보이게 하거나, 신비화하게 만들지는 않는 것 같아 좋았어요.

그리고 지난 시간에도 이야기했지만
영화 마담 프루스트는 프루스트를 철저히 오독한 영화죠. ㅎㅎ
하우저가 우려한 영화예술의 어떤 면들이 그 영화에서 많이 보일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영화의 시대' 공부는 이제 시작~
끝났어도 끝난 게 아닌 공부. ㅠㅠ
이야기거리가 많은 마지막 시간이 되겠어요~

걷는이님의 댓글

걷는이

어느새 후기 하나를 올리셨군요.
그림에 있는 푸르스트랑 눈 마주치고 있다가 드는 생각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다시 제대로 읽어야겠구나.
옆에 마들렌과 홍차 보니까 저번 세미나 시간에 우린 그런거  모르고 누룽지가 그 대신이다 했던
얘기가 생각나 혼자 웃습니다. ㅎ
하우저 땜에 할 일이, 하고 싶은 일이 자꾸 늘어나네요.
조이스의 율리시즈도 읽어야겠고.
러시아 영화도 봐야겠고.
오늘 오전 내내 사회사 마지막장까지 다 읽었는데 삼월님 말마따나 하우저는
정말 끝까지 쉽지 않은 사람이 분명합니다.
다 읽고 책 맨 뒤에 오늘 날짜를 적는데 뿌듯하더구만요.
열심히 읽은 우리 모두에게 박수!!!

삼월님의 댓글

삼월 댓글의 댓글

프루스트의 마들렌과 홍차가 우리에겐 누룽지가 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중요한 건 마들렌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이지요.
우리가 함께 마신 커피, 맥주, 칵테일. 그리고 수많은 안주들....

아, 하우저는 왜 마지막 부분을 이런 얘기들로 마무리해서
난데없이 우리를 촉촉하게 하는지요?
그러나 진짜 마지막은 '싸워야 한다!'로 끝내는 그 뚝심.
이러니 손에서 놓기가 아쉬운 책이긴 분명합니다. ㅎㅎ

에스텔님의 댓글

에스텔

저는 우리의 정치적 수동성이 현 권력을 튼튼하게 한다는 말이 오래도록 남아 찔렸습니다. 그리고 실천에 대해 다른 때보다 더 고민하게 되었어요. 모두 수고하셨어요~~

삼월님의 댓글

삼월 댓글의 댓글

1권 어디쯤 나왔던 말인듯 한데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다가 되새겨주어 감사합니다.
맞아요. 그런 말이 있었지요.
마지막 부분은 이런 이야기도 있었어요.
우리가 대중적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적어도 집권자가 그들을 기만하려고 애쓰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다수 대중은 정치생활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요.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어야겠어요. ㅎㅎ

에스텔님과도 마지막 4권, 함께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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