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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6/8 세미나 발제문 일부
삼월 / 2016-06-10 / 조회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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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세미나에서는 발제를 모든 세미나원들이 조금씩 나누어 맡았습니다.

공부하는 재미도 있고, 분량에 대한 부담도 적어서 좋았습니다.

알찬 후기를 적고 싶은 욕심이 가득하지만 혹시 너무 늦어질까 싶어 발제문을 먼저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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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제2장 영화의 시대

 


자본주의의 위기


우리가 아는 20세기는 제1차 세계대전(1914 ~1918) 이후에 시작된다. 제1차 세계대전은 당시 있었던 모든 가능성들을 압도하는 계기였다. 20세기 예술의 주류적 경향들 - 입체파,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 은 모두 19세기와 연속성을 가지고 있고, 이는 당시의 경제와 사회가 일관된 발전을 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1914년 이전에는 사회주의자들 이외에는 자본주의의 붕괴를 의식하는 이가 없었다. 본격적인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는 1929년 미국의 대공황에서 감지되었다. 이제 전후의 경기회복도 도움이 되지 못했고, 생산과 분배의 무계획이 문제로 지적되었으며, 파국과 혁명의 위험이 현실화되었다.


1930년대의 역사는 사회비판, 사실주의와 행동주의의 시대이며, 모든 정치적 입장이 극단화된 시대였다. 파시즘과 볼셰비즘은 자유주의와 대의정치를 거부하였으며, 지식인들은 질서와 규율과 독재를 원했다. 파시즘은 무기력한 문인들로 하여금 합리주의와 개인주의에 항상 뒤따르는 책임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또 지식인들은 공산주의에서 인민들과의 직접접촉과 함께 사회에서의 고립상태에서도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하였다.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들의 대변인들은 이에 맞서 파시즘과 볼셰비즘이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며 깎아내렸다.


좌우익으로 나뉜 극단주의자들은 현대문명의 타락과 소외에 대한 책임을 ‘대중의 봉기’탓으로 돌리거나 정신과 영혼을 대안으로 삼았다. ‘새로운 중세’, ‘새로운 유럽’, ‘새로운 기독교 사회’를 지향한 이들의 사상은 낭만주의적 반혁명의 신화였고, 파시즘의 도래에 기여하였다. 대중민주주의는 사람들의 주장과 요구를 큰 집단의 이름으로 묶으려하였고, 히틀러는 국민을 귀족화한다는 명분으로 신비주의적 요소를 통해 민주주의를 이용했다. 이를 겪고 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유럽은 자신들이 구제될 가능성을 믿지 못하게 되었고, ‘서구의 몰락’을 긍정하기에 이르렀다.

 


반인상주의


20세기 예술의 반동적 흐름은 인상주의를 부정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자 하는 자연주의적 욕구는 억제되고, 이제 대상을 고의로 왜곡하여 표현하려는 움직임이 등장했다. 입체파·구성주의·미래파·표현주의·다다이즘·초현실주의 등은 이렇게 자연을 따르고 현실을 긍정하는 인상주의로부터 등을 돌리게 되었다. 이때부터 예술은 자연과 폭력적 관계를 맺게 되고, 현실과 공존하지만 현실을 대체할 의사는 없는 대상을 만들어내는 마술적 자연주의가 나타난다. 이로 인해 브라끄, 샤갈, 루오, 피카소, 앙리 루소, 살바도르 달리 등 이 시대 작가의 작품들에서는 어떤 또 다른 세계, 말하자면 초현실세계에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현대예술은 보기 좋지 않다는 점에서도 반인상주의적이다. 회화에서 회화적 가치를 부인하고, 시에서 조화와 구성을 배격하며, 음악에서 멜로디와 음조를 파괴하는 등 현대예술은 장식과 쾌락의 요소를 기피한다. 이제 예술을 지배하는 것은 감성과 감정이 아니라 지성이다. 문학에서도 그로테스크하고 허위에 찬 면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이 시대 예술가들은 종래 예술의 감각주의를 혐오하고 그 예술의 세계를 해체하려고 기존 예술의 기호체계도 단호히 거부하며, 자신들만의 기법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테레리스트와 수사가


인습적 표현방식에 대한 체계적 투쟁과 19세기 예술전통의 해체는 1916년 다다이즘과 함께 시작된다. 다다이즘은 제1차 세계대전 중이라는 전시현상 내에 있었으며, 사람들을 전쟁으로 이끈 문화에 대한 항의와 패배주의의 기운을 띠고 있었다. 다다이즘의 의의는 기존의 모든 형식과 상투적 표현의 유혹에 저항했다는 데 있다. 초현실주의는 여기서 더 나아간 표현의 직접성을 위한 투쟁이다. 초현실주의는 형식적 허위성에 대한 투쟁으로 낭만주의 혁명의 결정적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곧 다다이스트와 초현실주의자들은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모든 의사소통의 수단을 부인하고 파괴하면 어떻게 대중들에게 자신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프랑스 비평가 장 폴랑은 언어에 대한 관계를 기준으로 작가들을 두 부류로 구분했다. 먼저 인습과 상투적 표현을 언어에서 완전히 제거하고 함정을 피해 영감에 호소하는 언어파괴자들을 ‘테러리스트’들이라 부른다. 이들은 문화 전체를 배격하려고 한다. 다른 부류는 범속함과 상투성이 어쩔 수 없는 의사소통의 대가라고 보고 문학의 소통가능성이 상투성에 있음을 인정하는 ‘수사가’들이다. 문학에 있어 ‘테러리스트’들의 실천은 침묵으로 귀결되며 이는 지적 자살을 의미하는데, 이를 피하려면 자기기만의 방법 밖에는 없다. 그 때문에 초현실주의자들의 ‘자동기술법’은 신축성도 없고, 빈약하며 단조롭다.


상징주의 운동의 말기에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는 문학이 갈 데까지 갔음을, 현실과 절연된 문학형식의 불모성을 지적했다. 말라르메와 상징주의자들은 ‘언어의 마술’이라는 비의식적 언어에 대한 신비주의적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의식적 언어가 어떻게 인간을 표현할 수 있는지를 의심하다가 심미주의적 문화의 허무주의를 넘어 결국에는 모든 인간상황의 가치를 의심하는 허무주의에 이르렀다. 모든 인간행위가 쓸데없는 짓이라 여기기에 이른 것이다.


 

현대예술의 양분상태


앙드레 지드, 폴 발레리, T.S.엘리어트, 릴케 등의 ‘수사가’들이 말라르메의 상징적 경향을 지속시켰다. 이들은 언어와 문학에서 전통의 정신에 투철한 동시에 ‘언어의 마술’을 믿고 있었다. 두 개의 굵직한 방향을 보면 조이스의 소설은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의 방향으로, T.S.엘리어트의 시는 상징주의와 형식주의 쪽으로 움직였다. 모두 주지주의적 태도로 볼 수 있지만 조이스의 소설이 ‘원초체험’을 핵심에 놓는 데 비해 T.S.엘리어트의 시는 ‘교양경험’을 핵심에 놓는다. 이 두 경향이 이 시대의 전형적 사고유형을 보여준다. ‘교양경험’은 역사와 문화, 전통, 문학의 유산들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으며, ‘원초체험’은 생활형식과 존재의 문제를 원천으로 삼는다. 두 경향은 다시 현대예술의 전영역에 걸친 양분상태를 드러낸다.


형식주의와 형식파괴 경향이 공존하는 이 두 경향들은 서로 경쟁한다기보다 일종의 의식분열로 나타난다. 피카소는 여러 가지 다른 경향의 스타일을 소화하며 절충주의를 보여준다. 피카소는 인격의 통일성에 대한 의식적 파괴를 보여주며, 독창성의 숭배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모방을 한다. 그러면서도 항상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며 형식의 자의성을 보여주려고 한다. 이를 통해 피카소는 ‘자연과 예술은 완연히 다른 현상’임을 확인하려하며, 예술적 자만심에 가득 찬 낭만주의자들에 대항하기 위해 요술쟁이, 패러디스트가 된다.


피카소는 이런 방식으로 낭만주의를 부정하고 낭만주의를 낳은 르네상스도 부정한다. 그는 개인주의 및 주관주의와도 결별하려하고, 어떤 독특한 개성의 표현으로서의 예술도 거부한다. 피카소에게 작품은 현실에 덧붙이는 논평이나 주석일 뿐 세계의 이미지거나 존재의 종합 또는 요약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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