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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발제문] 비극의 탄생 14-15 발제 +2
이응 / 2016-06-15 / 조회 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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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하면서 끙끙댔던 물음들이 몇가지 있었는데

세미나 하면서 조금 맥락을 잡을 수 있게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 

 

- 오늘 세미나에 나왔던 이야기중 인상적인 것만 아주아주 간단히 정리 - 

이솝우화(선/악, 옳고 그름이 이미 정해져있는 도덕적 교훈

이론적 낙천주의(진리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다고 낙관하는 태도) 

근원적 일자(우리 안에서 느껴지는 합일감) ​ 이데아(바깥에 있는 초월적 존재) 

초기 그리스비극의 기능(1_염세주의 극복 2_잔혹함의 순화) 

기계장치의 신(개연성을 따지기 힘들 때 편법으로/작위적으로 합리화하는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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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소크라테스에게 비극 예술은 한번도 ‘진실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 적이 없었다.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게 이러한 비철학적 자극을 멀리 하도록 요구했다. 소크라테스의 원칙이 지닌 힘은 여전히 컸으며, 새로운 지위로 높이기에 충분했다. 그 예가 플라톤이다. 그는 하나의 예술 형식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플라톤은 후세에 새로운 예술 형식의 모범을 제공해 주었다. 바로 소설이라는 모범이다. 이것은 무한히 높아진 이솝우화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철학적 사상이 예술을 덮어서 무성하게 자라며, 예술은 변증법의 줄기에 꽉 매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아폴론적 경향은 번데기처럼 논리적 형식주의 속에 들어앉게 된다. 나아가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자연주의적 격정으로 옮겨지는 것도 볼 수 있다. 변증법의 본질에 낙천주의적 요소가 깃들어 있다. 이 낙천주의적 요소가 일단 비극에 침입하면, 필연적으로 비극을 자멸시킨다. “덕은 지식이다. 무지에서만 죄를 범하게 된다. 덕이 있는 자는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제는 어떠한 귀결을 갖는가. (낙천주의적 변증법) 이것은 이미 그가 디오니소스적 기반을 무너뜨리기 시작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징후이다. 낙천주의적 변증법은 그 삼단논법의 채찍을 가지고 음악을 비극에서 내쫓는다. 즉, 비극의 본질을 파괴한다. 과연 소크라테스주의와 예술 사이에 필연적으로 대립적 관계밖에 없는가, ‘예술가적 소크라테스’의 탄생은 그 자신에게 모순된 일인가를 다시 물어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감옥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자주 그의 꿈에 환영이 나타나서 “소크라테스여, 음악을 하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꿈속에 나타난 말은, 논리적 천성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나타내는 유일한 표지이다. 자기가 모른다고 해서, 그것이 곧 비합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쩌면 예술과 학문은 필연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이것을 보충하는 것이 아닌가?

 

15

소크라테스가 이전에 전례가 없었던 존재 형식, 즉 ‘이론적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이 이론적 인간의 의의와 목표를 통찰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예술가’는 진리의 여신이 걸치고 있는 베일을 한 장 한 장 벗기면서 아무리 벗겨도 베일에 싸여 있는 여신의 모습을 황홀한 눈으로 보지만, ‘이론적 인간’은 내동댕이친 베일에서 즐거움을 느껴 만족하며, 그의 최고 목표는 자기 힘으로 베일을 벗기는 과정 자체에 있다. 오로지 벌거숭이가 된 진리의 여신만이 학문의 목표이며 그 이외에는 아무 상관없다. 학문의 사도들은 지구를 꿰뚫고 곧장 하나의 구멍을 파려고 하는 사람과 같은 기분이 될 것이 틀림없다.

소크라테스에게는 하나의 망상적 관념이 있다. 사유는 존재의 가장 깊은 심연까지 다다를 수 있고, 존재를 인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바로잡을 수도 있다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다. 이 숭고한 형이상학적 망상. 이론적 낙천주의자란 사물의 본성을 깊이 연구하여 밝힐 수 있다는 신념에서 지식과 인식을 만병통치약으로 인정하고, 오류야말로 악 자체라고 해석하는 인간을 말한다. 사물의 밑바탕으로 파고 들어가 가상과 오류로부터 참된 인식을 구별하는 것이, 소크라테스적 인간에게는 가장 고귀한 사명으로 여겨진다. 소크라테스야말로 전혀 새로운 형식의 ‘그리스적 명랑성’과 생존의 기쁨을 가르치는 교사로 나타난다. 그러나 학문은 강력한 망상의 자극을 받아서 제지하기 어려운 자기의 한계를 향해 서둘러 나아간다. 거기에서 학문의 낙천주의는 좌절된다. 왜냐하면 학문의 둘레에는 무한히 많은 점이 있고, 이 측정이 언제 끝날지 전혀 예견할 수도 없으며, 고귀하고 재능있는 인간은 그 생애의 반에도 도달하기 전에 원주의 한계점에 부딪혀, 거기에서 해명할 수 없는 것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마침내 논리가 자기의 꼬리를 무는 것을 보고 몸서리칠 때 비극의 인식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무서움을 참아내기 위한 보호와 약으로서의 예술을 필요로하는 인식이다. 그때 우리는 소크라테스에게서 모범적으로 나타나는 만족할 줄 모르는 낙천주의적 인식의 욕망이, 비극적 체념과 예술의 욕구로 전환하고 있는 것을 본다.

 

댓글목록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좋은 발제 덕분에, 세미나가 풍성해 졌어요. 이응~~응응응~~~
사람들이 좋은 발제에 접근하기 쉽게, 텍스트로 올려놓았어요!!
그리고 간단 후기도 아주 좋은데요! 세미나를 복습하는 기분이예요^_^

golflab님의 댓글

golflab

어제 일정을 약간 변경하였다가 세미나만 놓쳤습니다.
발제와 후기로 미루어보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좋을 기회를 놓친 듯 합니다.
수고들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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