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세미나] '합평' 안에 '후기' 있다~~~ +2
걷는이
/ 2016-03-28
/ 조회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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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2016. 03. 23 걷는이
내가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앉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난겨울, N은 밝은 주황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잘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면 늘 그렇듯이 그날도 난 잔뜩 긴장해 있었다. 사실 그를 처음
만나는 것은 아니었다. 전에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스치듯 눈인사를 나눈 적도 있었고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그의 소식을 전해 듣기도 했으니 마냥 낯설다고만 할 수는 없겠다. N에 대한 소문은 많았다.
건강이 좋지 않았다느니, 연애가 잘 안 풀려 심하게 상처를 받았다느니, 말투도 특이하고 뭔가 좀
알아듣기 어렵다고도 했다.
어찌 생각해보면 그냥 모른척하고 지나쳐 버리는 것이 더 현명했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날, 그와의
만남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언젠가 꼭 한 번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사람이기에 난 작정하고 지나가는
그를 불러 세웠다. 어려운 숙제를 해내는 기분으로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N이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쏟아낸다. 나는 그저 듣기만 한다. 그는 잠깐의 만남에서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때로는 시인인 듯, 어느 순간에는 선동가인 듯, 어이없게도 가끔은 허세 충만한 청년의 모습이기도 했다.
N은 말이 빨랐다. 그런데 오히려 듣고 있는 내가 숨이 찼다. 그의 이야기는 골목길 같았다. 여기저기
패이고 울퉁불퉁한 길을 가다 보면 순식간에 길이 꺾어지고 갑자기 가파른 계단이 앞을 막아선다.
나는 어지러웠다. 성큼성큼 앞서가는 그의 등만 바라보며 놓칠세라 뛰듯이 걷는다. 그러다가 길을
잃고 헤맨다. 지쳐서 주저앉고 싶었다. 차라리 몸을 돌려 그에게서 도망쳐 버릴까 생각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N은 휘청거리며 정신없이 따라가는 내게 손을 내밀어 주어야 옳았다. 아니면 적어도
내가 너무 뒤처지지 않도록 잠깐이라도 멈춰 서 기다려주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불친절했다.
결국, 그와는 친해질 수 없는 것일까?
그렇게 몇 번 더 그를 만났다. 일방통행과도 같은 N의 이야기는 여전했고 그를 따라잡으려는 나의
노력 또한 필사적이었다. 이런저런 주제들을 넘나드는 그의 이야기는 정말이지 다양했다. 어느 날엔
짧은 시를 여러 편 읊어주기도 했는데 그중 몇은 나를 미소 짓게 만들기도 했다. 한동안 입에 침이
마르도록 추켜세우던 W나 S 같은 사람들에게서 냉정하게 등을 돌리는 그의 모습을 본다. 그가
'좋고 싫음' 혹은 '그렇다 와 아니다'를 판단하는 잣대가 무엇인지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N은 자세하게 설명하는 법이 없다. 저 할 말만 다하면 듣는 사람은 알아듣든 말든 알 바
아니라는 기색이다. N의 목소리에 이끌려 한참을 가다 보면 그가 심술궂게 심어놓은 돌부리에 채여
넘어져 무릎이 까진다. 화가 치민다. 욕이 절로 나온다. 어디 한번 해봅시다 하는 괜한 오기가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도 있었다. 그는 말끝마다 '우리들' 이란 말을 덧붙이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이라도 내가 그의 ‘우리’, 그의 ‘친구’인 적이 있기나 했던 걸까?
사람들마다 서로 묻는다. “N을 만나보니 어때요?” 그를 만나본 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누군가는 전에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 한다. 또 다른 이들은 N이 하는 말들이 너무 멋있지 않냐며 환호한다. 그럼 난?
과연 그의 이야기를 얼마나 내 머릿속에 주워 담았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와 함께하는 시간 내내
바보가 된 듯 막막하다가도 가끔은 그가 던지는 몇 마디에 용기를 얻기도 했다. ‘그렇구나, 무슨
소리인지 알겠어’하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인 적도 그런대로 여러 번 있긴 했다.
그래도 그가 다가서기 힘든 상대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제 충분하다고, 더 이상의 만남은 내 능력 밖의 일이라며 난 그에게 이별을 말한다.
처음 만날 때와 마찬가지로 헤어질 때도 N은 덤덤하게 인사도 없이, 한번 돌아보는
법도 없이 간다. 그랬다. 그에게는 나 말고도 그와의 만남을 고대하는 이들이 많으니
아쉬울 게 뭐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그와 마주 앉아 혼란스러워할,
아니면 열광하고 있을 누군가가 있을 테니 말이다.
그를 떠나보내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 16번 자리에 앉는다. 나는 피곤했고 머리도 아팠다.
그동안 N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들을 되감아 본다. 나의 기억력은 허술하고 빈약하다.
거침없이 폭포처럼 흘러나오던 그의 목소리가 희미하다. 옮겨 적으면 공책 한 페이지 채우기도
어렵겠다. 그나마도 빈칸 투성이, 물음표 천지이다. 그런데 그 빈틈을 채워 나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다음번엔 그에게 몇 걸음 정도는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성급한
희망도 품어본다. 언젠가는 온전한 ‘나만의 N’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그와의 만남이 이게 끝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나에게 해주지 않은 N의 다음 이야기들을
궁금해하며, 나는 그의 집 앞을 서성이다가 결국 문을 두드릴 게 분명하다. 그러니 내가 다시
그대의 이름을 부르거든, 응답하시오. 니체!
* * * * * * * * * *
작년 늦여름부터 세르반테스--- 루쉰--- 니체의 글들을 부지런히 읽고, 얘기 나누고, 글을 쓰며 이어온
문학세미나가 잠시 방학을 갖기로 했습니다.
짧게나마 숨을 돌릴 여유가 생겨 홀가분하면서도 뭔가 허전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군요.
조금만 쉬고 우리 '멜빌의 모비딕'으로 다시 만납시다요~~~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니체라는 사람을 이렇게 온기있기 묘사해 주시다니..
제가 니체를 참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니체를 만난 시절이 고된 암흑의 시기였는지라...
늘 그 앞에서 두려움이나 압도당하는 기분을 떨치기 힘듭니다.
그래도 지난 1, 2월에 문학세미나에서 니체를 함께 읽은 것은 제게
말로 설명하기 힘든 선물이고 위로였습니다.
얼마 후에는 이 허전함을 동력 삼아 우리 다시 뛰어놀 수 있겠지요?
재미있고, 애잔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되짚어 읽으며 곱씹게 되는, 그런 후기
잘 읽었습니다.
자연님의 댓글
자연
걷는 이님 글솜씨에
다시 만나고 싶은 N씨입니다.
얼음과 눈을 녹이는 봄바람의 언어로
언제가 다시 우리에게 오지 않을까요?
그때는 더 가볍고 즐겁게 N씨 만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