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세미나] '합평' 안에 '후기' 또 있다~~~ +1
자연
/ 2016-03-30
/ 조회 1,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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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별건가!
2016. 3. 23 자연
농장에 다녀왔다. 올해 들어 처음이다. 바람은 아직 쌀쌀하고 쌓인 눈은 남아 있는데 햇볕은 봄이다. 퇴비냄새 스멀스멀한 시골의 봄이 시작되었다. 흙을 만지는 기분도 좋고, 씨 뿌리고 싹이 날 때까지 기다리는 즐거움도 좋다. 내가 생각한 대로 만들고, 심고, 돌보면서 산다는 것은 삶의 희열이다. 도시에서 부대끼며 돈을 벌어도 모자랄 판에 시골을 오가며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냥 농사일이 좋아 몸과 마음이 앞서니 이것이야말로 니체 선생이 말한 삶의 의지가 아니겠는가.
올해로 농사일은 삼년 째, 사도삼촌이다. 사일은 도시에서 삼일은 농촌에서 지낸다는 말이다. 나는 그도 아니고 주말 이틀만 시골살이를 하고 있다. 사주에 토(土)가 많아 땅과 인연이 깊다더니 봄만 되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따사로운 봄볕이 창문으로 들어오면 마음이 들썩이며 당장에라도 갈 것처럼 농장에 가져갈 도구와 옷가지를 챙기면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몸에서 나오는 욕망과 충동에 이끌리어 마음은 이미 들판에 가 있다. 능동적인 몸의 움직임이 능동적인 정신을 만들어 낸다는 니체의 말은 일상에서 이렇게 불현 듯 찾아온다.
여자는 집에 있는 컴퓨터가 고장이 나서 노트북을 사려고 매장을 둘러본 적이 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직원의 설명도 듣고 맘에 드는 제품도 골랐지만 결국 사지 않았다. 물건을 팔려고 애쓰는 남자와 물건을 욕망하는 여자,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여자의 남자, 그때의 풍경이 사라지지 않고 잔상으로 남아있다. 세 사람 모두 돈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무기력한 느낌이랄까. 살면서 이런 일이 한 두번도 아닐텐데 여자는 그날따라 묘한 슬픔이 있었다. 아이가 셋이라며 가족사진까지 보여주며 열심인 남자직원 때문이었을까. 여자는 우울했다. 어떤 위로가 필요했다. 이럴 때 니체의 말은 자신을 극한으로 밀어 올려 긍정하도록 용기를 북돋워준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는 어떠한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이러한 주장만큼 효과적인 위로 수단은 없다는 것, 그들은 탁월한 존재이기 때문에 다시 머리를 쳐들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고정관념을 단번에 깨주는 강렬한 말이다. 오히려 정신을 명랑하고 쾌활하게 만들어 삶의 의지를 끌어올려 주는 힘이 있다. 니체의 말은 여자처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철학 의사다. 사람들은 자신의 결핍에서 철학을 하게 된다고 한다. 자신의 삶을 사유하는 것, 그것이 철학이다.
삼월이가 선물해준 텃밭일지를 바닥에 펼쳐놓고 상추며 토마토, 가지, 피망 등 텃밭에 심을 목록을 작성했다. 이참에 농장일지라도 써보라는 삼월이의 무언의 애정인가 압력인가!
봄볕이 마루에 깊숙이 들어앉았다. 걷기에 좋은 계절이 오고 있다.
니체의 '즐거운 지식'을 끝내고.....멜빌의 '모비딕'을 기다립니다~~~~~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오늘 세미나 끝나고 수다 중에...
'요즘 애들은 고생을 몰라. 우리 때는 어쩌고저쩌고' 하는 할아버지들 험담을 좀 했는데.
가끔은 그런 것 같아요.
'나는 당신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아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요. 미안합니다.'라는 말이
멋있고, 배려 넘치고, 위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니체의 멋진 말을 여러 번 짚어주고, 들려주어서 감사해요.
'봄볕이 마루에 깊숙이 들어앉았다. 걷기에 좋은 계절이 오고 있다.'는 문장이 예뻐서 몇 번을 다시 읽었는지 모르겠어요.
조만간 남산길도 함께 걸어요.
'모비딕'도 같이 읽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