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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오이디푸스] 당신한테 악취가 나요(3월 11일 후기) +5
선우 / 2016-03-12 / 조회 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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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두 번을 남겨놓고 있는데요, 어찌된 일인지 읽어도 읽어도 쉬워지지 않아요.^^

어제 정말 들뢰즈의 센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리비도로서 욕망의 주체적 내지 생명의 본질을 발견한 정신분석은(처음에는 그랬잖아요.) 삶의 노래였어야 하지 않았는가? 삶을 노래하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하지 않는가? 왜 다시 이원론으로(에로스와 죽음 본능), 금욕적 이상으로 되돌아갔는가? 삶을 노래하기는커녕 삶을 심판하고, 삶을 폄하하고, 죽음을 척도로 삶을 측정하고, 죽음의 죽음이 우리에게 허락하고자 하는 것인 숭고한 체념만을 삶에서 보존할 뿐인데 말이다.

죽음이 모델도 경험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죽음 본능이 있다고? 어림없는 소리!

무의식에는 죽음의 모델과 경험이 있기 때문에 죽음 본능은 없다. 죽음은 욕망 기계의 한 부품으로, 이 부품 자체는 기계의 기능과 그 에너지 변환 체계 속에서 판단되고 평가되어야지, 추상적 원리로 그래서는 안된다. 기관 없는 몸이 바로 죽음의 모델이다. 죽음은 욕망되지 않는다. 기관 없는 몸이나 부동의 모터의 자격을 지닌 욕망하는 죽음이 있을 뿐이다. 죽음의 경험은 무의식의 가장 일상적 일이다. 그 까닭은, 죽음의 경험이 삶 속에서, 삶을 위해, 모든 이행 내지 모든 생성 속에서, 이행과 생성으로서의 모든 내공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왜 초월적 죽음 본능을 원리로 세운 걸까? 중요한 것은, 원리가 사실과 아무 관계가 없을지라도, 사람들이 실천에 대해 품는 착상, 그리고 사람들이 강요하려 하는 착상과는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욕망의 추상적, 주체적 본질인 리비도에 대해 가장 깊이 있는 발견을 해냈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이 본질을 자아의 재현이라는 주관적 재현 속에서 다시 소외했고 다시 투자했기 때문에, 이 본질을 오이디푸스라는 잔여적 영토성 위에서, 거세라는 전제군주 기표 아래서 재코드화했기 때문에, 삶의 본질을 자아에 맞서는 반전된 형식으로, 죽음 자체의 형식으로밖에는 착상할 수 없었다.

 

분열-분석이 행하는 모든 파괴는 정신분석 소파보다 훨씬 더 나은 가치가 있다. 헨리 밀러의 얘기를 들어보자.  <이제 분석가가 당신에게 제공하는 부드러운 소파 위에 누워, 다른 뭔가를 생각해 내세요. 분석가는 신이 아니라 당신과 같은 인간 존재이며, 근심들, 결함들, 야심들, 약점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그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지혜의 보고가 아니라, 길을 따라가는 방랑자라는 것을 당신이 깨닫는다면, 아마 당신은 당신 귀에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처럼 들린다 해도 하수도처럼 그걸 쏟아 내길 그칠 것이며, 당신의 두 발로 일어서서 신이 준 당신 목소리로 노래하게 될 것이오. 고백하고 흐느끼고 불평하고 애처로워하는 일은 언제나 돈이 들지요. 노래하는 것은 한 푼도 들지 않을뿐더러, 실체로 남들을 풍요롭게 해 주지요. 허깨비 세계는 결코 충분히 정복된 적 없는 세계지요. 그것은 과거의 세계이지, 미래의 세계가 아니에요. 과거에 집착하면서 전진한다는 것은 쇠사슬에 금속 구(球)를 부착한 족쇄를 질질 끌고 가는 것과 같아요. 우리는 모두 죄가 있어요, 삶을 충만하게 살지 않는다는 큰 죄 말이에요.>

 

정신분석은 우리를 공허와 결핍으로 인도한다. 우리를 과거로 인도한다.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한다. 그러나 분열-분석은 우리를 생산과 풍요로움으로 인도한다. 우리를 미래로 데리고 간다. 우리의 생명을 되찾게 한다. 당신은 오이디푸스로 태어나지 않았다. 당신은 오이디푸스를 당신 속에 밀어넣었다. 또 당신은 환상에 의해, 거세에 의해 오이디푸스에서 빠져나오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거세는 당신이 오이디푸스 속에, 즉 당신 자신 속에 밀어 넣은 그것이다. 섬뜩한 순환이다. 그 극장이 상상적이건 상징적이건, 당신의 모든 죽음 극장은 똥이나 먹어라. 분열-분석은 무엇을 요구할까? 바깥과의 약간의 참된 관계, 약간의 진짜 현실 말고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가벼움의 권리와 근본적 무자격의 권리를, 즉 분석가의 진료실에 들어가, 당신한테 악취가 난다고 말할 권리를 요구한다. 거기서는 큰 죽음과 작은 자아의 냄새가 난다.“

 

오늘은 바깥과의 약간의 참된 관계를 위해^^ 산책을 해야겠어요. 렌츠를 만나겠지요? (분열자의 산책. 이것은 소파에 누운 신경증자보다 나은 모델이다. 약간의 외기, 바깥과의 관계. p.24)

댓글목록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이건 들뢰즈의 목소리가 아니라, 선우의 것이군! 후기를 읽는 동안 그렇게 들렸어요.
여전히 모호하고 낯선 들뢰즈의 목소리를, 간명하고 힘있게 번역하는 선우의 목소리!

역시, 선우는 안티오이디푸스 세미나의 최대의 수혜자군요^^*
여러가지 바쁜 중에도 후기를 남겨주어 고마워요! 내가 선우 좋아하는 거 알죠?

선우님의 댓글

선우 댓글의 댓글

ㅎㅎㅎ 이렇게 마구마구 애정 표현을 해놓으시다니. . .
그러고보면 지난 1년 제가 어떤 글에 매료될 때마다 그 옆에 오라클님이 계셨네요^^

희음님의 댓글

희음

아, 두 분 너무 따끈해서 못 끼어들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뢰즈의 목소리를 가장 뼈대 있고 선연하게 번역해내는 목소리가 있다면 단연 선우 님이라는 데 한 표!!!

희음님의 댓글

희음

강좌 공지가 없어 여기에 올려요. 범위의 후반부를 읽던 중이었는데 급히 갈 데가 있어 일어납니다. 오늘 세미나는 가기 어렵겠어요. 아쉽고 죄송합니다.ㅠㅠ

선우님의 댓글

선우

아,  그러시구나. 일 잘 보시고요.  담주 마지막인데, 꼭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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