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06030 세미나 발제문
소리
/ 2018-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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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화장실의 정치학 – 여성 공간을 ‘성 주립화’시키는 운동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대응
한국에서도 성 중립 화장실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제2차 인권정책 기본계획’ 초안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로, 장애인과 활동 보조인, 아이를 동반한 가족, 성소수자 등이 성별과 관계없이 쓸 수 있는 ‘성중립 화장실’ 설치를 계획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계획을 환영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움직임은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을 지지하는 퀴어와 진보이론가들은 화장실 성별 구분은 보수적이며 19세기 도덕주의의 산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한 제프리스의 의견을 알아보자.
젠더 정체성은 일반적으로 태어날 때 부여받은 성별과 별개로 신체에 대한 개인의 감각이나 경험, 복장이나 화법, 태도 등이 성에 관한 표현을 반영한다고 한다. 이러한 정의는 트랜스젠더와 종속적인 여성 성 계급과 연관되는 복장을 입으면서 성적으로 흥분하는 남성들과 여성호르몬을 맞지만 수술은 하지 않고 남성 성기를 가진 남성들을 포함한다. 트랜스젠더들 중 단 15%만이 수술을 통한 성기 제거를 원했다. 제프리스는 MTF나 FTM이라는 용어를 지양하는데 이유는 이 단어들이 성별을 전환했다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젠더는 성별을 지운다. 퀴어와 트랜스젠더 활동가들이 이 단어를 사용하는 방식은 생물학적 여성인 사람들의 존재와 그들이 경험하는 문제들을 흐려버린다. 트랜스젠더들이 사용하는 젠더는 지금까지 페미니스트들이 성차 혹은 성별 전형이라 부르던 것인데, 이는 여성과 남성이 태생적으로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을 반영한다.
여성은 생물학적인 성으로 인해 억압당하지만, 젠더 관점에서 생물학적 성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며, 시즈(CIs)젠더라는 용어를 만들어내어 여성들을 분류한다. 래디컬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용어를 반대한다. 먼저 남성 신체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분류되는 것을 원치 않아하고, 이러한 여성들이 여성의 한 종류일 뿐이며 다른 종류의 여성인 남성 신체의 트랜스젠더나 ‘트랜스 여성,에 비해 특권을 가진 것으로 이야기 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여성화장실에 대한 출입의 권리를 말한다.
그러나 여성들이 여성용화장실이 필요한 이유는 그들이 젠더,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성역할의 결과물이다. 급진적 페미니즘 이론에서 젠더는 남성 지배사회의 성별 계급제도 안에서 살아가는 남성과 여성에게 그들의 외관과 행동을 결정해주는 일종의 명령제도이다. 트랜스젠더들은 자신의 몸에 맞는 화장실에 가면 폭력을 겪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여성들은 실질적으로 강간과 폭력의 위험을 가지고 있고, 이에 대한 불안감이 있지만 이에 대한 여성들의 불안감은 남성이 위협적이라는 편견을 가진 성차별적인 생각이며, 트랜스젠더의 불안감보다 중요하지 않게 다뤄진다.
화장실의 성별구분을 없애기 위한 캠페인을 하는 활동가들은 여자 화장실이 여성의 평등권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으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여성이 성별로 인해 받는 차별은 역사적으로 여성을 사적 존재로 한정시키고 공공장소에서 배제함으로써 이뤄졌다. 여성들은 여성에게 적합한 화장실이 부족했기 때문에 공적 영역에 진출하기 어려웠다. 여자도 공평하게 그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생각은 서구에서 꽤 근래에서야 인정되었고, 인도 아시아 대륙 등 세계 곳곳에서 여자 화장실 설치를 위한 캠페인이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국회의사당도 처음 설계할 때 여자화장실이 없었다. 첫 여성의원이자 4선 국회의원인 박순천 씨는 오랫동안 방광염에 염에 시달려야 했었다.
성별 분리 화장실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이론가들은 여자 화장실이 만들어진 이유가 여성들의 불안과 도덕주의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바바라 페너라는 20세기 초반의 런던의 여자화장실을 만들기 위한 캠페인을 한 운동가도 있었다. 이러한 여성용 화장실 캠페인은 19세기 서구에 있었던 캠페인과 비슷하게 인도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이는 고상한 척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평등을 위한 것이다. 많은 여아들이 안전하지 않은 화장실에서 납치와 강간을 당하고,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는다.
여성들은 생물학적인 이유와 옷차림 등등이 이유로 화장실에서 시간이 남성에 비해 두 배로 걸린다. 따라서 2배로 많은 화장실이 필요하며, 그렇지 못한 현실은 성차별의 결과라고 영국의 도시 설계 교수 클라라 그리드는 말한다.
9장 ‘바디 아트’와 사회적 지위
1990년대 절단과 피어싱, 문신 등을 위주로 한 산업이 생겼다. 자해 산업은 이 현상을 치장, 신체 예술 혹은 신체 변형이라고 말한다. 자해 산업 종사자들은 신체 손상에 대해 신체를 ‘재구성’하고 신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행위라 칭하기 위한 근거로 포스트 모던 이론을 이용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것을 정치적 저항이라는 단어로 현혹하여 이익을 취한다. 제프리스는 바디 아트가 결코 정치적 저항이 아닌 남성의 지배 아래 억압받는 사회적 약자의 지위에서 온 결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남성의 지배 아래 놓인 사회적 약자 집단인 여성과 소녀들, 레즈비언과 게이, 남성에게 폭행당했던 모든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스스로의 선택, 패션, 아름다움이라는 이름 하에서 용인되고 있는 유해한 서구문화에 자해를 포함시켜야 한다.
정신건강 문헌에서 자해란 사적인 공간에서 정신적 고통 완화를 위해 눈, 생식기 같은 신체 기관이나 피부를 자극하는 행위이다.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아르만도 파바자에 따르면 자해를 ‘자살충동과는 다른 고의적이고 직접적인 신체조직의 파괴, 또는 개조’라고 정의한다. 자해는 3가지로 분류가능한데, 첫 번째는 적출과 거세, 팔다리 절단이고 두 번째는 단순 반복적이고 어쩔 때는 리드미컬하기까지 한 행동으로 벽에 머리박기, 때리기, 스스로 물어뜯는 행동이다. 세 번째는 가장 흔한데 표면적 온건한 유형이라고 부른다.
파바자는 거부하지만 많은 자해의 유형들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여성들과 소녀들이다. 남성우월주의 문화 속에서 여성들은 본인의 몸과 적대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꾸밈 노동은 자해의 연장성이지만, 살을 칼로 저미는 것은 더한 압박감이 필요하다. 자해의 많은 이유는 아동기의 성학대 경험으로부터 온다. 전문병원에서 여성환자 대상으로 자해와 전반적인 아동 학대 사이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음을 연구결과로 제시한다. 1위가 성학대, 2위가 가족문제 혹은 거절, 비난당한 경험, 3위가 신체적, 정서적, 심리적 학대, 4위가 가족이나 친구의 병환, 5위가 학교 폭력, 따돌림, 자퇴 등이다.
이러한 자해산업은 자본주의의 영향과 트랜스젠더리즘의 영향으로 서로 상호적으로 발전해왔다. 이러한 산업을 사상적으로 뒷받침 해주는 것이 몸에 관한 탈근대적인 사상 전환이 있다. 지난 10여년간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들은 신체를 텍스트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해왔다. 여기서의 텍스트는 트랜스섹슈얼리즘이나 성형수술, 바디 아트 및 성매매라는 과정을 통해 강력하고 혁명적으로까지 쓰여질 수 있는 대상이다. 주디스 버틀러는 굉장히 난해하게 글을 쓰기 때문에 순수 이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만 칼로 팔을 긁는 친구를 돕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몸에 대한 포스트 모던적 접근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권력관계로 인해 여성이 자신의 몸에 느끼는 감정과 행동을 사소한 문제로 취급하거나 무시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비판받는다. 클라인에 따르면 몸에 관한 포스트모더니즘 글에는 실제 살과 피로 이루어진 몸이 부재하며, 몸이 조각할 수 있는 외부 표면이라는 하나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고 지적한다.
“내가 포스트 모던 페미니스트들의 글에서 읽은 신체는 숨을 쉬지 않고 소리 내 웃지도 않으며 심장이 없다. 몸에 관해서는 항상 3인칭으로 쓰여지며 구성되고 재구성될 뿐이다.” 포스트 모던 사상에 기반한 글들은 신체의 유연성에만 집중하다가 사회적 약자의 신체가 가지는 정치적 관계 및 열등한 신분에 부과되는 제약으로 인한 유연성 부족을 무시해 버렸다. 몸에 대한 탈근대적 접근은 대중이 자해와 중증 장애를 예술로 소비하는 것을 정당화 하는데 이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