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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후기] 삶을 위한 철학수업 2부 만남과 자유 +7
연두 / 2018-07-01 / 조회 2,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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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7월 1일입니다. 올해도 6개월이 훌쩍 지났네요. 지난 월요일은 무척 더웠습니다. 그날 저와 모로님은 세미나 전에 잠시 남산산책을 했습니다. 간식당번이었던 저는 돌아와서 모로님의 도움을 받으며 냉동피자를 굽고, 모로님의 어머님이 텃밭에서 기르신 감자를 압력솥에 올리고, 토마토와 파프리카를 씻어내었습니다. 맛이 좀 아쉬웠던 숙성오미자차도 얼음을 띄워서 시원하게 내고요. 게으르게 냉동피자를 준비한 대신, 토마토와 파프리카, 찐감자와 냉오미자차를 곁들여 좀 더 건강한 간식차림을 선물로 준비했음을 알려드립니다. ㅎㅎ (내가 이것을 너한테 선물했어~~feat.오라클님) 

 

가처분시간과 가처분능력에 대해서 얘기하던 도중, 니체의 텍스트를 읽어가며 함께 세미나를 하는 동안 감사하게도 제게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이 떠올랐노라고 세미나벗들에게 얘기했었습니다. 또 요즘엔 시간을 관리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고도 얘기했습니다. 한정된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시간을 잘 관리하는 것이 잘 사는 기술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오래도록 그 능력을 연마하며 살아왔습니다. 목표를 설정하고, 평가의 기준을 정하고, 주기적으로 진행도를 파악하면서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것이 오랫동안 제가 일해 왔던 방식인데다 언제나 효율성에 대한 질문을 받았고, 대답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프로젝트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능력이 연마되어감에 따라 그 능력을 개인의 삶을 살 때에도, 여가시간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했었지요. 

 

그런데 작년에 고병권샘과 자본론을 읽으면서 이렇게 시간의 효율성을 따지는 태도가 매우 자본주의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계의 정교함에 기대어 표준시를 제정해서 사회의 시간을 같은 시각으로 맞추고, 광장에 시계탑을 설치한 것은 노동시간을 엄격하게 관리하고자 하는 자본가들이었다고 하니까요. 시간에 대한 이런 시각을 가지고는 물음에 답하고, 시도와 모험을 감행할 용기를 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짬낼 시간 없이 바쁜 사람이 성공한 사람,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받는 세상이기 때문에 누구도 '난 시간이 많아'라고 말하고 싶어하지 않아 합니다. 대신 바쁘게 자기를 몰아대고, '시간이 없다'라고 늘 하소연합니다. 

 

오라클님은 시간이 없다는 자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하셨죠. 돈과 멀어져 볼 것. 잠자는 시간 이외에 돈을 '벌기 위해서 혹은 쓰기 위해서'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 보라고. 돈과 거리를 둔 시간. 그러고 보니 회사를 다니며 매우 분주하고 밀도높은 업무 일정을 소화하는 중에도 종종 하던 산책, 열광했던 주말 아침 테니스 모임, 직접 만든 점심 도시락, 제주에 살던 친구네에 머무르는 여행, 임신한 동생과 조카를 함께 돌보던 그 체험들이 시간의 틈새를 벌리며 내게 다른 리듬 혹은 감각을 계속 일깨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년 퇴사 이후에 보내는 나의 안식년,  시간은 물론이고요. 

 

엇결과 순결님은 '가처분'시간이라는 것은 자기가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결정할 수 있는 시간임을 강조했습니다. 저는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하는 질문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바꿔 써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맑스의 자본론 이후에도 들뢰즈, 니체의 시간에 대한 해석과 시각을 접하면서 나의 시간에 대한 관념이 등간격으로 12개의 숫자가 새겨진 시계의 이미지, 시간표와 일정표에 단단하게 속박되어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일정표를 촘촘하게 채우고 잘 실행하면 잘 사는 것일까. 가득찬 일정표와 좋은 삶 사이엔 연관성이 별로 없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시간을 관리하지 않으며 나를 느슨하게 놓아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야말로 니체가 그토록 주의하라고 한 변증법적 접근이겠죠. 거부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저는 효율성에 대한 강박에 기인한 시간 관리'로부터의 자유'를 이제 얻은 겁니다. 삶의 기예를 동원하며 나를 연마할 때입니다.  훈련에 강밀도가 필요한 것은 물론입니다. 아직은 강밀도를 만들어내는  종종 실패합니다. 나의 삶을 생산하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거죠. 저는 일단 좋은 일상을 구성하는 것으로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저의 일상의 기본 활동은 수영, 치료, 산책, 요리와 장보기입니다. 매일 날씨를 충분히 즐기고 있습니다. 날씨에, 자연에 매혹되는 거죠. 폭우가 쏟아졌던 지난 화요일에도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고, 베란다에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습니다. 더 바랄 것 없이 꽉 찬 느낌이었어요. 이제 접영도 꽤 능숙하게 합니다. 접영을 배우면서  물에서의 움직임이 놀랍게 자유로워졌습니다. 곧 물에서 자유롭게 노닐 수 있을 것 같아요. 작은 훈련으로 시작합니다. 체력이 점차 좋아지는 것도 느껴지구요. 몸이 더 회복되면, 다른 시도들을 통해서 더 연마해 보려 합니다. 

 

시간에 대한 시각은 사랑의 수동성을 거부하는 태도와도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면 우연성을 걷어내며 설정한 목표와 성과를 위해서 매진해야 하는데, 상대에게 매혹되어 버리면 내 시간이 비효율적으로 흘러가 버리니까요. 나를 강하게, 혹은 은근하고 향기롭게 매혹했던 존재들이 떠오릅니다.  존재들 몇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그들이 나를 놀랍게 변모시켰습니다. 잠재성을 현실화하는 자극으로서의 매혹적 존재들. 저는 그런 마주침을 기다립니다.  매혹적 존재라는 선물을 받을 저의 능력 또한 계속해서 연마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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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부 텍스트도 읽으며  답답했습니다. 온건한 강요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느낌. 니체의 텍스트가 주어진 정답을 모두 지우고, 경계석을 넘어서도록 하는 것이었다면, 이 책은 새로운 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월요일밤부터 뒤이어 3부를 읽기 시작했는데, 그곳엔 제게 닿는 이야기텍스트들이 많았습니다. 내일 세미나에서 얘기 나눠요. 후기가 늦어 죄송합니다. 

 

** 다나까 체를 거의 쓰지 않는데, 이상하게 이번 후기는 다나까로 써졌어요. 

 

 

 

 

댓글목록

모로님의 댓글

모로

요즘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 했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라는군요. 이미 1883년에 라파르그가 '게으를 수 있는 권리'라는 책을 냈는데 말이죠. 그런의미에서 오늘은 게을러야겠네요. 사실은 체력방전이지만 ㅋ

연두님의 댓글

연두 댓글의 댓글

그의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모르긴 하지만,
게으름에 대한 욕구도 자본주의의 노동에 대한 어떤 반작용이라고 고병권샘은 쓰셨어요. 자본론 공부할 때도 나왔던 이야기.
.
"노동에 대한 습관이 강할수록, 더 나아가서 욕망으로 고통을 더 강력하게 받을수록 권태 역시 강력해졌을 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노동이 자기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자유 활동이 아니므로 사람들은 자유에 대한 별도의 욕구, 심지어 게으름에 대한 욕구까지 갖는 것이다.
- 고병권, [니체의 위험한 책..] 중, 2부 6. 노동이 아니라 전쟁을 권한다.
.
여가 시간마저도 대부분 노동의 재생산을 위한 시간(수면과 휴식, 식사, 체력관리를 위한 운동, 생존을 위한 각종 소비 활동 등, 노동자는 다음날 어제와 같은 상태로 출근해야 하므로)으로 포섭되어 버리는 현실에서는 게으름이야 말로 노동자의 현실을 초월하는 어떤 이상으로 꿈꿔지곤 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과연 노동하는 시간 + 노동을 재생산하는 시간의 짝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면, 과연 사람들이 게으를까.
존재가 과연 열심이지 않을 수 있을까 싶어요.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자기 놀이에 열심일 수 없잖아요.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뇌세포를 10프로도 못 쓰는 건 과학적 근거가 없는 그저 소문일 뿐이고,
실은 대부분 다 쓰고 죽는 것처럼요.

빠른거북이님의 댓글

빠른거북이

회사 점심시간에 연두님의 후기를 읽었어요. 이 일을 당장 때려치우고 가처분시간을 늘리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듭니다. 수영은 아주 조금 하는데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드네요. 물에서 천천히 시간이 흐르는 걸 느끼고 싶어요.

바르사님의 댓글

바르사

후기의 내용이 와닿네요. 여유있게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엇결과 순결님의 댓글

엇결과 순결

삶의  후기이군요.^^
효율성에 대한 각성. 저역시 다른 삶을 모색하게 만든 사건이었죠.
이제 효율성의 거부에서 나의 가치를 만들기 위한 자유로운 기예로 나아가야한다는
숙제가 번개가 되어 꽂히는군요.^^
뭔가요? '삶의 철학'에 투덜거리시면서 저 멀리 앞서나가시는 모습이란?
따라와봐! 라는 손짓인가? ㅎㅎ

에피파니님의 댓글

에피파니

이제서야 연두님의 후기를 읽었네요...
가처분시간과 그 시간을 잘 처분해내는 능력...
아직까지 저에게는 이 두 가지가 멀기만하니 부럽기도 하면서 새로운 의무감으로 다가오기도 하네요.
그러다보니 새로운 지향점이 되기도 하는 요즘 입니다.
저는 생각과 몸을 보다 가볍고 즐겁게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그리고 좀 더 자신을 표현해 보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하나 계획하고 있는 것이 '춤'을 배워보면 어떨까 하는 것인데... 매혹의 자유에 저를 아직 내맡기지 못하고 있네요 ㅎㅎ
용기를 내어 새로운 세계로 한번 들어가 보도록 해보겠습니다~
좀 더 많은 가처분 시간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요^^

연두님의 댓글

연두 댓글의 댓글

와우~ 춤추는 자가 되는 건가요?
시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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