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발제] 삶을 위한 철학수업 2부: 만남과 자유 (0625.월)
에피파니
/ 2018-07-03
/ 조회 1,275
첨부파일
관련링크
본문
이 진경 『삶을 위한 철학수업』 발제
2018년 6월 25일 에피파니
2부. 만남과 자유
§. 매혹과 자유
▶ 술병속의 여인들
- 블랑쇼: 매혹이란 즉각적인 인접한 거리에서 그것이 직접 나에게 손을 대는 것. 내가 그것과 굉장히 먼 걸에 있다고 하여도 그것이 나를 붙들고 독점하는 것
⇒ 이는 매혹이란 어떤 우연한 만남으로 내가 그것에 사로잡히는 것이고 그것에 이끌려 뜻하지 않은 곳으로 끌려가는 것을 의미. 그 말려들어감 속에서 이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보고, 알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되는 ‘사건’ 그것이 바로 매혹인 것. (이는 사람의 손길만이 아님!)
▶ 감각적 각성
- 매혹에 이끌려 술을 맛보는 다른 감각을, 사물을 보고 사물을 대하는 다른 감각을 벤야민이라면 ‘감각적 각성’이라 불렀을 것이다. 이는 약물을 통해 이루어지는 감각적 각성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스타일을 구현한 시인들에게는 모두 신비스러운 연인들이 있었다.”의 문장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고 할 것이다.
- 이백이나 소동파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신게 아니었을 것이다. 반대로 술을 마시기 위해 홀로 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술 속에 숨은 여인과 만나기 위해 홀로된 것이었을 게다. 항상 그 어떤 여인을 통해 다른 세상을 만나고 있었을 것이다.
- 부재하는 여인들이 ‘없는’현실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과, 부재하는 여인과 ‘만나’다른 감각을 만들어 가는 것을 구별되어야 함. ∵ 후자는 그것을 통해 다른 세계를 적극적으로 발견하는 행위이기 때문. (에른스트 블로흐 역시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부재하는 세계를 그리워하는 유토피아와, 다른 세계를 꿈꾸며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려는 유토피아를 구별한 바 있다.)
- 술을 통해 쉽게 누구나 얻을 수 있는 취함과 달리, 술이라고 불리던 어떤 사물의 손길에 매혹된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사물에서 흔히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며 그에 매혹되는 시인들처럼...
▶ 사물과의 우정
- 돈으로 표시되는 사물의 ‘가치’에 눈이 가는 한, 사물은 보이지 않는다. 사물의 용도나 사용가치도 매혹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을 것이다.
- 사물이 손을 내미는 것은 사물이 알지 못하던 어떤 것으로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닌 어떤 것으로서, 내게 다가오는 사건이다. 내가 아는 가치나 용도를 벗어나, 나의 시선 바깥에서 생각지 못했던 어떤 것으로서 사물이 다가오는 사건이다. ⇒ 이 때 사물 속에 ‘숨어 있는’ 어떤 것과 만나고, 그것과 만나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된다. 사물과 우정을 나누는 것이다. ⇒ 블랑쇼는 이를 ‘사물의 구원’이라고 말한다.
- 매혹에서 시작된 사물과의 우정은 우리와 사물을 다른 세계로 인도함으로써 사물을 구원하고 나아가 우리를 구원한다. ⇒ ‘사물’은 구원의 목적어가 아니라 주어인 것이다.
- 사물이 인간의 목적성에 봉사하는 단순한 도구라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며,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강력한 힘과 생명력을 갖고 있음을 믿는다. (“인간은 언제나 목적으로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칸트의 정언명령에 나타나는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에 씁쓸함이 느껴지는 이유인 것)
- 사물을 인간의 목적성 안에서 본다는 것은 결국 다가온 이의 매력을 알아보지 못하는 안목 없는 이의 무능력을 보게 됨을 의미함.
▶매혹과 넘어섬
- 자유란 자신의 뜻대로 하는 것이라는 관념은 안목 없는 이의 무지와 무능력이 ‘자기의지’와 ‘선택’이라는 말을 ‘능동성’을 뜻하는 것으로 오인함으로써 나타나는 관념인 것.
- 오히려 사물의 매혹에 사로잡혀 뜻하지 않는 세계 속으로 말려들어가는 ‘수동성’이 사실 더 자유에 가까이 있다고 해야 할 것임. ⇒ 매혹을 따라갈 줄 아는 용기야말로 자유를 행해 가는 힘인 것!
- ‘수동성’: 내게 다가온 것을 통해 나의 벽, 나의 관념이나 감각을 ‘넘어 섬’을 의미.
- 자유: 바로 이러한 넘어섬을 통해 다가오는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뜻하는 것임.
§. 사랑과 자유 : 미친 사랑의 노래와 냉혹한 연애의 법칙
▶매혹과 휘말림
- 매혹은 휘말림으로 이어짐. 이 둘은 모두 강력한 수동성을 특징으로 함. ∵ 사랑하면서 우리는 어찌할 수 없는 부자유의 영역, 노예의 영역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 이러한 노예적 수동성이 매혹의 힘을 표현하는 것인 한 이것에 이끌려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곳 뜻하지 않은 곳으로 가게 한다. ⇒ 사랑의 힘, 매혹의 힘이 중요한 이유!
- 사랑하면서 우리는 ‘그’가 선 자리에 끌려들어간다. 그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눈으로 보려고 하고, 그의 시점에 다가가려 애쓴다. 그러나 타자성에 다가가려 함에도 완벽히 그 지점에 가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 도전은 끊임없이 실패하나 어느 새 그와 나 사이 어딘가 새로운 지점으로 인도한다.
- 사랑은 다른 감각을 갖게 만들고, 다른 세계에 눈을 뜨게 하는 사건. 그것을 통해 나를 넘어서는 사건이다.
▶능동적 사랑과 연애의 게임
- 정신 있는 사랑, 능동적 사랑: 자신의 감각과 취향을 투영하며 기뻐하는 사랑. 자아를 맴돌던 궤도를 이탈하는 게 아니라 타인마저 그 자아의 궤도 속으로 끌어들여 하나의 위성으로 만드는 사랑. 나의이니셔티브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 뜻대로 하기 위하여, 자아 안에 사랑이란 관계를 포섭하기 위해 자신의 수동성을 약화시키고 상대의 수동성을 강화하려는 이른바 ‘밀땅’이라고 불리는 냉혹한 게임을 반복하여 시도함.
- ‘밀땅’이라는 연애게임에서 승리하는 사랑: 사랑의 열정은 약화되고 그 종착점은 상대를 전적으로 장악한 대신. 사랑의 마음이 전적으로 소멸하는 것임.
- 반면 노예처럼 끌려가면서 다른 감각, 다른 삶을 얻을 수 있다면 차라리 패배자야말로 진정 승리자 인 것. 연애의 게임에서는 언제나 좀 더 사랑하는 이가 지는 것이 게임의 법칙 이지만 연애의 역설은 연애의 게임에서 이기는 자는 사랑의 사건에서 이기지 못한다는 것!
- 지지 않는 사랑이란 매혹 없는 사랑인 것.
-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가 내게 어떻게 하는가와 무관하게 그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의미에서 ‘능동적 사랑’인 것.
- 그러나 사랑은 본질적으로 수동적이기에 그 수동성과 자아 사이에서, 장악당한 노예적 상태와 장악한 주인의 상태 사이에서 끝없는 번뇌와 갈등이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 찾아온다.
▶사랑의 두 극
- 현실성의 사랑: 두 개의 극 사이에 존재
· 타자성에 휘말려 자아를 벗어나버리는 미친 매혹의 사랑
· 자아의 궤도를 확장하면서 그 안으로 끌어들이는 사랑
⇒ 그러나 양자가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