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와 근대 철학]6장 7장
아침
/ 2018-06-21
/ 조회 1,361
관련링크
본문
경험주의와주체성 아침
6.인간본성의 원리
1.흄은 주체에 물음을 던지고 그것을 다음과 같은 말로 설정한다. 주체는 주어진 것 안에서 구성된다. 즉 관계는 관념들의 외재적이다. 관계가 관념에 외재적인 한에서 원자론은 관념의 이론이며 연합론은 관계의 이론이다. 원자론과 연합론은 이 물음에서 전개된 내포일 뿐이다. 칸트적 전통에서 제시된 경험주의의 고전적 정의는 ‘경험주의는 인식이 오로지 경험에서 시작할 뿐 아니라 경험으로부터 유래하는 내용의 이론’이다. 그러나 경험주의를 단순히 인식이 경험에서 시작하는 이론이라고 설명하면 모든 철학자는 경험주의자 일 것이다. 인식은 경험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실천적 활동의 수단이다. 경험은 흄에 의해 정의된 두 가지 의미중 첫 번째 정의를 따를 경우, 우리가 구별되는 지각의 다발을 경험이라고 부른다면 관계가 경험에서 유래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 관계는 경험 속에서 그 경험을 넘어설 수 있는 주체를 구성하는 인간 본성의 원리의 결과이다. 과거 대상들의 다양한 연접을 지칭하기 위해 경험을 두 번째 의미로 쓸 경우 경험이 하나의 원리로 이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 원리가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관계는 발생의 산물이 아니라 원리의 결과이다. 그것은 어떤 원리의 특수한 성격일 뿐이다. 요컨대 경험주의를 인식이 경험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는 어떤 이론으로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주어진’이란 말이 더 적절하다. 주어진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관념의 다발과 경험이 주어지기도 하지만 또한 이 다발 안에서 경험을 넘어서는 주체와 관념들에 의존하지 않는 관계가 주어진다. 관계와 항, 주체와 주어진 것, 인간본성의 원리와 자연의 힘 사이에서 경험적 이원성이 다양한 형식으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관계가 어떤 식으로든 사물의 본성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이론을 비경험주의적이라고 부를 것이다. 경험주의는 의미의 철학이 아니라 상상력의 철학이다.“주체는 어떻게 주어진 것 안에서 구성되는가?”는“상상력은 어떻게 하나의 인식능력이되는가? 라는 의미이다. 흄에 의하면 상상력은 표상들의 재생산 법칙 또는 재생산의 종합이 원히의 결과 아래 구성되는 한에서 하나의 인식능력이 된다. 사유속의 어떤 것은 상상력 없이는 불가능함에도 상상력을 넘어설 것이다. 흄으로 하여금 인간본성과 자연의 일치를 다른 것으로 제시할 수 있게 해주는 한 가지 방책은 바로 합목적성이다.
2.주체성의 다양한 계기의 끈이라는 실천적 문제가 합목적성에 대한 주장에 선행해야 하는 것은 실천적 문제가 합목적성을 조건 짓기 때문이다. 정신 안에서의 원리의 결과인 주체인데 그것은 능동화된 정신이다. 즉 주체는 원리에 의해 능동화된 정신이며 그것은 처음에는 수동적이었다가 끝에 가서 능동적이 된다. 원리의 결과는 언제나 반성인상이다. 따라서 흄은 주체성은 반성인상이 특정한 감각 인상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발속에서 감각 인상이 다른 것들을 제치고 선별되는 이유조차 설명할 수 없다. 반성 인상이 특정한 감각 인상에서 위해서는 정신이 적절한 방식으로 형성된 인식능력을 가지고 있고, 정신과 본성으로부터 얻은 것이 아닌 어떤 구성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정의하는 두 가지 방식은 선별하는 역할과 구성하는 역할이다. 첫 번째 역할에 따라서 정념의 원리는 쾌락과 고통의 인상을 선택하는 것이다. 연합의 원리는 복합체 안에 통합되어야 하는 지각을 선택한다. 감각 인상은 어떤 잠재성도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반성 인상을 산출하고 만드는 것은 원리 자체이다. 다만 원리가 반성 인상을 만드는 것은 그 인상이 특정한 감각 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 그런 것이다. 연합의 원리는 인접성, 유사성, 인과성이다. 그리고 연합은 우선 세 가지 결과를 가진다. 그것은 일반 관념, 실체, 자연적관계이다. 일반 관념에서 유사성의 원리는 특정한 유사 관념들을 지시하고 하나의 동일한 이름 아래 그것들을 한 무리로 모으는 것이 가능하다. 실체의 경우 인접성의 원리와 인과성의 원리는 다시 특정한 관념들을 모은다. 그 새로운 관념을 그 무리 안에서 이해하려고 할 것이다. 자연적 관계의 경우에는 하나의 관념에서 다른 관념으로의 쉬운 이행을 산출한다. 그러한 앞선 세 가지 결과를 배가시키는 다른 결과를 가진다. 그것은 추상 관념, 철학적 양태와 관계이다. 일반 관념과 추상 관념의 유일한 차이는 후자의 경우 두 가지 유사성이 개입하고 그 둘이 구별되어 파악된다는 데 있다. 철학적 관계와 자연적 관계의 관계는 양태와 실체의 관계에 상응한다. 감응성과 정황이 선별의 역할을 맡아 감각 인상을 지시하고 선택한다. 정황 또는 감응성이 첫 번째 역할을 할 때 연합의 원리가 그 두 번째 역할인 구성한 역할로 환원된다. 어쨌든 연합의 원리의 의미는 지시된 감각 인상에서 반성인상을 구성하는 것이다. 정념의 원리의 의미도 이와 같다.흄은 정념의 두 종류를 구별한다. 직적접 정념을 선과 악, 고통과 쾌락에서 직적 태어나고 간접적 정념은 동일한 원리에서 발생하지만 다른 성질들과의 연접을 통해 발생한다. 흄의 정념 이론의 독창성은 그 자체로 단순한 운동으로 제시한다는 데 있다. 관계는 정념에서 그 방향과 의미를 발견하며 연합은 실천적 삶의 전체, 감응성 전체를 전제한다.
7.결론:합목적성
관계는 관념들 사이에 운동을 수립한다. 이것은 왕복운동이라서 하나의 관념이 다른 관념으로 이어지려면 그 다른 관념은 처음 관념으로 이어져야 한다. 관계는 그 자체로써 행위를 영원히 가능하게 만드는 데 충분하지만 오직 의미나 방향에 의한 행위만 있을 뿐이다. 정신 자체 안에는 우리가 쾌락과 고통이라 부르는 인상이 있다. 그러나 쾌락이 선이고 고통이 악이라는 것, 이것은 고통이나 쾌락 자체 안에 포함된 것이 아니며, 여기에 원리의 작용이 있는 것이다. 정념의 원리는 쾌락을 하나의 목적으로 만듦으로써 행위에 자신의 원리를 부여하며, 쾌락의 관점에서 행위의 동기를 만든다. 행위의 본질은 수단-목적의 관계비 안에 있다. 행위한다는 것은 하나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수단들을 배치하는 것이다. 수단과 목적의 관계는 유용성이다. 이 유용성은 그것의 전유에 의해, 또는 그것의 배치에 의해 정의되고 선을 촉진 한다.유용성은 수단과 목적의 관계를 지시하면서 개별성과 역사적 상황의 관계 또한 지시한다. 유용하다고 부르는 것에는 단지 사물만이 아니라 정념 감정 성격도 포함된다. 우리의 도덕적 판단은 특정한 방식의 유용성에, 성격의 유용성에 달려 있다. 주체는 정신 안에서 원리의 결과이지만, 주체가 되는 것은 정신이고, 결국 스스로를 넘어서는 것이 정신이다. 요컨대 주체가 원리에 구성되는 동시에 환상에 근거하고 있다. 주체가 된 정신은 무엇을 하는가? 그것은 여러 관념 가운데 특정한 관념을 알려준다. 넘어선다는 것이 이러한 의미이다. 넘어섬은 언제나 인식된 것에서 인식되지 않는 것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정념의 원리는 정신 안에서 정념이 울려퍼질 때, 확정될 때, 반성될 때 비로소 고정된다. 정황 전체에 대한 정신의 반응은 정신 안에서 정념의 이런 반성과 더불어서만 이뤄진다. 즉 그런 반응은 생산적이고 그런 반성은 발명이라 불린다. 인간본성의 원리가 정신 안에서 각각 별도로 작용한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의 덩어리로 기능하는 주체를 구성한다. 전체로서 기능하는 주체의 이런 통일을 우리는 지향적 합목적성이라고 부른다. 결국 연합론이란 실천적인 모든 것, 행위, 도덕, 권리의 이론일 뿐이다. 원리는 주어진 것 안에서 발명하고 믿는 주체를 구성한다. 이런 의미에서 원리는 인간본성의 원리이다. 믿는다는 것은 기대한다는 것이다. 어떤 관념이 그와 연관된 인상의 생생함과 소통하는 것이 기대하는 것이고 기억과 감관을 넘어서는 것이다. 주어진 것에서 우리는 관계를 수립하고 총체를 형성한다. 총체는 우리가 아는 원리에 의존하며 기능적이다. 우리는 의도적 목적성과 자연의 이런 일치를 합목적성이라고 부른다. 이런 일치는 오직 사유될 수 있을 뿐이다. 철학은 행위하는 것에 대한 이론으로서 구성되어야 한다. 행위하는 것은 그 원리를 갖는다. 그리고 존재는 오직 행위하는 것의 원리 자체와의 종합적 관계의 대상으로서만 포착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