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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와 근대철학] 경험주의와 주체성 3-4장 발제문(2) 계속
케테르 / 2018-06-13 / 조회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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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 글 분량이 제한 되어 이어서 올립니다.

 

 

(앞선 3장 말미에서 계속)

 

오성의 한계 안에서 믿음을 유지하는 것, 습관과 경험이 일치를 확고히 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적 개연성의 대상, 또는 개연성들의 계산의 대상이고, 그 허구와 편견을 해소하는 수단이다(131). 습관과 경험의 적합화는 얻어내어야 할 과학적 결과이며 완수해야 할 과업이다(133). 이 과업은 믿음의 작용이 배타적으로 겨냥한 것이 오성의 본성에 비추어, 경험 안에서 관찰된 반복에 비추어 결정된 대상인 한에서 완수된다.

 

 

4. 신과 세계

 

1. 종교는 확장적 규칙의 허구적 체계

앞서 일반규칙에 부여해온 모든 의미작용이 결합되는 하나의 사례는 종교이다, 네 종류의 규칙(취미의 규칙, 자유의 규칙, 이해관계의 규칙, 의무의 규칙?)은 각각 1) 정념의 확장적이고 2) 교정적인 규칙, 3) 인식의 확장적이고 교정적인 규칙으로 구별된다. 그런데 종교는 인식의 성격과 정념의 성격을 모두 띤다.

종교적 감정은 다신론과 유일신론의 양극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응하는 두 원천은 한편으로 정념의 성질이며 다른 한편으로 연합의 양태이다(유일신론의 원천은 자연의 스펙터클의 통합, 형상 안에서 유사성과 인과성만이 보장할 수 있는 통합에, 다신론의 원천은 정념의 다양성과 계속되는 정념의 환원불가능성에 있다).

그리고 종교는 그 각각의 경우에 확장적 규칙의 체계로서 나타난다. 다신론의 신들은 정념의 메아리, 확장, 반성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확장적 규칙의 성격을 재발견한다(138). 즉 종교적 감정은 우연적인 것과 본질적인 것을 혼동하는 것이다. 그 기원은 인간의 삶의 사건들 안에우리가 거기서 발견하는 다양성과 모순 안에, 그리고 행.불행의 계속, 희망과 공포의 계속에 있다. 유일신론 역시 확장적 규칙의 체계이다(139). 이번에는 확장이 인식에 관련된다. 이런 의미에서 종교는 상상력의 과잉, 허구, 믿음의 허상이다. 그것은 발화된 반복, 그리고 구전이나 기술된 전통을 내세운다.

 

[종교의 교정] 종교는 확장적 규칙의 이중적 체계라면, 어떻게 교정되는가? 교정은 존재한다. 기적은 인식의 세계에 종속된다, 증언에서 나온 증거는 그것이 경험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계산에 집어넣는 하나의 개연성이 된다. 참된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교정적 규칙은 그렇게 정의된 영역으로부터 종교를 필두로 하여 인과성의 허구적 용도 전부를 축출하고서야 유효해진다(145), 요컨데 확장 안에서 종교는 경박한 것만을 보호하고, 진지한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그 까닭을 이해한다, 종교는 바로 상상력 안에서 정념의 확장이며 정념의 반성이기 때문이다. 종교와 더불어 정념은 연합의 원리에 의해 이미 고정된 상상력 안에서 진지함이 가능하도록 반성되지 않는다. 반면에 순수한 상상력 안에서, 그리고 오직 환상 속에서 이 원리가 반성될 때 종교가 존재한다(145). 종교는 오직 연합의 원리, 유사성과 인과성의 환상적 사용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철학이 원리의 원인에 대해서, 또한 그 힘의 기원에 대해서 아무런 할 말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았다. 거기에 신의 자리가 있다. ~~ 하지만 우리는 신을 세계의 원인으로서 부정적으로 이용 할 수있다. 유신론이 유효한 것은 이런 의미에서이다. 또한 합목적성이 재도입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이다, 합목적성은 우리에게 하나의 가정을 통해 기둰의 시원적 통일성과 특성화를 부여한다. 시원적 일치로서의 신의 관념은 일반적인 것에 대한 사유이다. ~~ 어떤 면에서 합목적성은 무한한 지성의 기획이나 섭리라기보다 생명의 약동이다.

 

2. 허구적 인과적 추론

인과성 원리의 허구적 사용. 1) 첫 번째 것은 경험에서 발생하지 않은 반복에 의해 정의된다. 2) 두 번째 것은 반복될 수 없는, 엄밀히 말해 하나의 대상이 아닌 특수한 대상, 즉 세계에 의해 정의된다. 3) 나아가 세번째로, 흄은 허구적 또는 넘쳐나는 인과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믿음 안에서 물체의 구별되고 지속적인 존재로 드러난다. 우리가 대상에 지속적 존재를 부여한다면 그것은 특정한 인상의 정합성의 기초가 되는 일종의 인과적 추론 덕분이다(149). 두 대상의 연접과 나의 지각 사이에서 발생하는 모순은 오직 상상력의 허구에 의해서만 해결된다. 다른 한편 구별되는 존재 그 자체가 인과성, 즉 허구적이고 모순된 인과성의 거짓 사용이다(150). 상상력은 언제나 자신을 고정시키는 원리인 인접성, 유사성, 인과성을 이용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 그 실행 조건 너머로 이 원리를 확장한다(151).

 

두 가지 특징이 확장적 규칙과 물체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구별하도록 해준다.

1) 우선 인식에 있어서 확장적 규칙의 대상은 상상력이 법칙의 가치를 부여하는 특수한 결정이다. 오성에 환상의 단순한 내용을 마치 그것에 관련된 대상인 양 제시하는 것이다, 상상력은 오직 감각이 우연한 마주침에서 만들어낸 어떤 경험의 순수하게 우연적인 내용을 다듬어진 일반 경험인 것처럼 오성에 제공한다(152). 종교적 믿음은 지금 우리에게 일종의 물체의 존재에 대한 믿음으로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믿음이 규칙의 성질을 가진다면 이는 그런 믿음이 세계를 특수한 대상으로 다루기 때문이고, 감각과 오성의 경험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2) 두번째로 물체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허구는 인간 본성의 한 원리가 된다. 바로 이 점이 가장 중요하다. 사실 인간본성의 원리의 모든 방향은 하나의 체계, 지식의 체계이자 지식의 대상의 체계 안에서 정신을 구성하는 관념의 다발을 변형시키는 데 있다. 연합의 원리는 충분하지 않으며, 인상의 생생함이나 단순한 믿음보다 나을 것이 없다(153). 그 체계는 우리의 지각들의 완전하고 전체적인 동일성을 유지할 줄 수 있는 지속적 존재를 가장함으로써 완성된다, 즉 그 체계는 체계의 동일성과 세계의 동일성 안에서 획득된다. 세계는 곧 상상력의 허구이다, 여기서 허구는 필연적인 원리가 된다,

 

물체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몇몇 계기로 분해된다.

1) 동일성의 원리로, 이것은 허구로부터 산출된다. 그 허구에 의해 시간의 관념을 불변적이고 지속적인 한 대상에게 부여한다.

2) 혼동으로 인해 앞선 동일성을 유사한 인상들에게 부여하게 된다.

3) 그 뒤에 새로운 허구, 지속적 존재의 허구가 만들어진다. 모순을 넘어서기 위해

4) 그런 동일성의 부여는 거짓이며, 우리의 지각은 실제로 중단되고, 지속적 존재의 긍정은 인간 본성의 원리의 불법적인 사용을 은폐한다(156).

흄은 모순이 확장과 반성, 상상력과 이성, 감관과 오성 사이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고 말한다. 다른 곳에서는 상상력의 원리와 이성의 원리 사이에서라고 좀더 명확하게 말한다. 이제 대립은 진정으로 모순이 된다. 마지막 계기에서 상상력은 정확한 지점에서 회복된다. 상상력은 하나의 원리로서, 세계의 원리로서 그것(세계)을 고정시키는 원리에, 그리고 그것을 교정하는 작용에 대립한다(157) 연합의 원리는 허구에 대립한다. 가장 내적인 대립은 구성된 상상력과 구성하는 상상력, 연합의 원리와 본성의 원리가 된 허구 사이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확장과 반성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가 발견되어야 한다(158). 그 관계는 우리에게 더이상 지속적 존재를 긍정하는 대중적 체계가 아니라 구별되고 독립적인 존재를 긍정하는 철학적 체계를 제안한다. 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정신은 단지 착락이고 망상일 뿐이다. 상상적이지 않은 완성된 체계, 종합, 또는 우주론은 없다. 그러므로 환상은 승리한다(159). 환상은 정신의 본성이 되어 자신의 본성에 대립하고 자신의 환상을 이행시킨다. 여기서는 가장 미친것이 더욱 자연스럽다. 체계는 광기의 착란이다(160). 이런 의미에서 흄은 독립된 존재의 가설에서 이 착란의 첫걸음을 보여준다. 환상 - 망상 - 착란[정신의 세 가지 비판적 상태]

 

3. 종합

정신에 나타나는 유일한 원천과 적극성은 자연, 실천, 도덕적 실천, 그리고 후자의 이미지에 비춰볼 때 오성의 실천이다. 자연이 정신을 지시하는 대신에 정신이 자연을 지시해야만 한다.

망상은 정신과 관련된 인간본성이다(161). 정신은 관념과 동일하며, 감응은 결정적 모순이 없이는 관념으로 표현될 수 없다. 거꾸로 그 감응과 관계되어 있는 정신은 일반 규칙과 믿음의 전체 영역을 구성한다. 그것은 완화된 중간지대이다. 그 안에 인간본성과 상상력의 모순이 이미 존재하고 늘 존속하지만 가능한 교정에 의해 조정되거나 실천에 의해 해소된다. 요컨데 과학과 삶은 일반 규칙과 믿음의 수준에서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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