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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틀러 후기] 젠더 트러블 :: 실패하자. 그 실패를 반복하자. (0531 후기) +4
삼월 / 2018-06-03 / 조회 2,133 

본문

 

1. 정체성과 젠더의 수행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는 페미니즘 이론과 정치학에서 정체성의 구성물과 인식론적 출발점으로 작동해왔다. 버틀러는 섹스와 젠더, 섹슈얼리티의 허구성은 물론 이들의 관계를 의심하면서, 고정된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부정한다. 젠더라는 문화는 섹스라는 몸을 기반으로 한다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버틀러는 젠더가 섹스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구성하고 존재하게 한다고 본다. 몸의 사실성이 규범으로서의 젠더를 부여하기 위해 증명되는 것이다. 몸은 오염의 가능성을 핑계 삼아 하나의 경계를 구성한다. 문화적 규범인 젠더가 질서를 이유로 몸에 금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섹스와 젠더의 이분법은, 다시 몸을 경계로 나와 타자를 나누는 이분법이 된다. 정체성은 나에게서 타자를 분리하는 방식으로 형성된다. 주체를 안정되게 통합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과연 젠더가 안정되게 통합되고 고정될 수 있을까? 버틀러는 그럴 수 없다고 본다. 규범이란 늘 위반이나 수행불가능성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젠더의 실제란 늘 우리의 행위를 통해서만 구성될 뿐이고, 완벽한 수행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므로 고정된 젠더 정체성을 포함한 정체성이란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규범을 완벽히 수행하지도 못하고, 젠더 규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2. 행위주체성과 실패하는 패러디

 

버틀러는 《젠더 트러블》의 결론에서 ‘행위주체성’에서 대한 길고 어려운 설명을 늘어놓는다. 이미 책의 앞부분에서 버틀러 스스로 ‘행위 뒤의 행위자가 없다’는 말을 하면서, 주체의 허상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데카르트의 코기토(사유주체)로부터 시작하는 ‘행위주체성’을 다시 이야기한다. 행위주체성에 대한 가정은 자칫 담론의 영향력을 폄하하거나 과도하게 인식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버틀러는 알게 모르게 규범에 저항 혹은 불신의 태도를 취하는 우리를 간파한다. 문화적 구성물이 우리의 정체성을 단언하고 있는 순간에도 우리는 자신의 구성물과 협상한다. 어디까지 규범에 종속되고, 어느 부분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협상의 선을 가지고. 물론 이 협상이 늘 우리에게 유리하지는 않으며, ‘행위주체성’조차 사회적 의미화의 구조에서 자유로운 주체성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행위주체성’을 간과하거나, 축소해서는 안 된다. 모든 의미화는 반복의 충동에서 발생하지만, ‘행위주체성’도 그 반복 속에서 변형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젠더의 가능성이나 정체성의 전복은 오직 반복된 의미화 실천의 내부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주어진 젠더가 되어야 한다는 명령은 필연적으로 실패하고, 담론의 경로 안에서도 저항의 배치를 만들어낸다. 복합적 재배치와 재전개는 가능하지만, 초월이나 통합은 가능하지 않다. 오로지 선택만이 남는다. 원본이 없는 패러디에 불과한 젠더 수행의 반복이라는 선택. 그 패러디 역시 결코 성공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성공을 목표로 삼지 않은 패러디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실패한 패러디, ‘원본 없음’을 통해 전복적 웃음을 줄 수 있는 패러디인 패스티시이다.

 

3. 주디스 버틀러와 페미니즘

 

결국 버틀러가 말하는 젠더는, n명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매순간마다 재배치·재전개 되면서 무한대로 증가할 것이다. 그것을 ‘젠더’라고 부르는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때까지. 버틀러가 페미니즘에서 내세우는 ‘여성들’이라는 범주를 부정하는 것은 맞지만, 그 범주에 대항하는 새로운 범주를 내세우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버틀러는 현실 속 여성들의 다양함만큼 페미니즘의 방식도 다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페미니즘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거나, ‘특정한 방식’의 활동이 페미니즘이 아니라는 시각에 대해서도 부정한다. 정체성의 해체는 정치성의 해체가 아니다. 페미니즘의 정치성은 훼손되지 않는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 젠더의 ‘원본 없음’을 드러내기 위해 매순간 패러디를 하자. 실패하자. 실패하기 위해 하자. 그 실패를 반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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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젠더 트러블》을 함께 읽어주었고, 세미나를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마지막 시간 아라차가 선물해준 맛있는 케잌을 사진으로나마 공유하고 싶습니다~~

《젠더 트러블》에 이어 《젠더 허물기》도 함께 해요! 

 

댓글목록

아라차님의 댓글

아라차

어렵네요 ㅎㅎ
첫 장의 이야기들이 단순하고 쉬웠던지라
'그렇고 그런 얘기'인 줄 알았더니
결코 만만치 않았던 트러블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정체성의 해체가 정치성의 해체는 아니다"라는 것과,
그 정체성이 중요해지지 않을 때까지 "실패를 반복하자"는 결론은
명쾌하게 남겨지는 것 같습니다.
어려웠던 만큼 다음을 꼭 기약하게 만드는 마지막 장이었습니다!
후기 감사합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삼월님의 댓글

삼월 댓글의 댓글

트러블이 왜 트러블이고, 왜 트러블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려준 책이었죠.
원없이 열심히 읽었고, 그만큼 애정도 커졌습니다.
'실패를 반복하자'는 담대함, 강인함이 큰 위로와 격려로 와 닿기도 했고요.
이제 시작인 버틀러 읽기, 함께 더 가 보아요!

Jina님의 댓글

Jina

마지막 시간을 함께하지 못해 너무 속상합니다ㅠㅜ
시험공부 다 해놓고 시험보러 못간듯한 이 기분 .. 그래도 삼월님의 후기 덕에
그간의 내용이 정리된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세미나를 통해 요즘 고민하던 문제들에 대한 힌트를 얻었습니다.
이제 이 힌트들을 바탕으로 다음 세미나에서 좀 더 지유로운 N명 중 하나의 존재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함께해주신 분들도 감사합니다.

삼월님의 댓글

삼월 댓글의 댓글

저도 지나님과 마지막 시간 함께 하지 못해 속상했었... ㅠㅠ
세미나를 통해 요즘 고민하던 문제들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니 이렇게 기쁠 수가!
저 역시 그랬거든요. 힌트도 얻고, 격려도, 에너지도 얻고. 아주 찰지게 잘 활용했습니다. 후훗
그럼 다음 세미나 시간에 더 자유로워져서 만나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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