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맘]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1장
라라
/ 2018-06-04
/ 조회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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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가부장적 신화와 중독된 사회구조
우리의 몸은 에너지 시스템으로 만들어져 있다. 식생활과 인간관계, 유전형질과 문화, 그리고 이것들의 상호작용이 의식이 되고 몸을 만든다. 우리의 사고방식과 몸에 대한 편견을 이해해야만 건강을 지키려는 몸의 지혜와 몸의 회복 가능성에 도달할 수 있다.
문화적 유산
서구문명은 지난 5천년동안 가부장적 신화를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 남성이 문화를 전적으로 지배해왔고 여성의 몸도 또한 남성의 관점에서 정의되었다. 가부장제를 사회를 지탱하는 여러 시스템중의 하나로 본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문화에서는 남성우월(중심)주의를 극복할 때 여성의 완전한(건강한) 치유가 가능하다고 본다.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존재 자체에 대한 죄책감이 여성 내면 깊은 곳에 있다. 아직도 딸을 낳으면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여성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여성은 남성사회에서 거부당하는 것이 종종 보인다.
미국에서도(이책은 1994년 초판, 1998년 개정판) 여성은 38%가 성적으로 학대받고 있다한다. 여성의 3분의 1이 살면서 한 번 꼴로 강간을 당하고 있으며 기혼 여성의 절반 정도가 남편에게 폭행을 당한다는 통계자료도 있다. 흑인 여성의 경우 자살의 원인의 절반은 남편 때문이라고 한다. 백인여성도 4분의 1을 차지한다. 또한 전세계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여아는 남아의 4배에 달한다. 여성은 세계노동의 3분의 2를 담당하는데 총임금은 10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가부장 문화가 낳은 중독증
가부장 문화는 여성에세 가족의 요구와 남성을 위해서 자신의 꿈과 희망을 접도록 요구한다. 이렇듯 모든 욕구를 억제하면서 또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성은 남성에게 학대를 받든 스스로 학대를 하며 병자가 되어간다. 병자가 되어서도 여성은 가부장적 의료체계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다.
앤느 윌슨 새프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것에나 중돌될 수 있다. 알코올에 중독될 수도 있으며, 일에 중독될 수도 있다. 무엇인가 중독되면 억압된 감정을 완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독증은 우리가 절실히 깨닫고 느끼는 것에서 벗어나도록 우리를 마비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내면의 (고통적)정서를 인정하고 해소시킬 때 자신의 감정과 만날 수 있다. 감정을 내면의 안내자로 삼을 수 있다. 즉 내면의 고통을 깨닫게 해주는 새로운 형태의 의학과 지혜가 여성의 완전한(건강한) 치유의 첫걸음이다.
새프는 사실 가부장적 문화를 “중독된 사회구조”라고 정의하면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문제의 이해의 폭을 넓혀주었다. 중독된 사회구조는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해로울 뿐만 아니라 남녀모두가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소니아 존슨의 페미니즘에 대한 정의에서 치유의 가능성이 보인다. 페미니즘은 보편적 평등, 비폭력적 문제 해결, 자연과의 화합, 남녀의 상호부조, 다른 생명체와의 조화로운 삶을 말한다.
중독된 사회구조의 편견들
지금까지의 삶에서 나의 역할을 정확히 깨닫게 될 때 개인으로 사회적 구성원으로 건강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자신의 몸과 건강에 대한 문제를 분명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편견1 : 질병은 적이다.
한 사회의 가치관을 확인하는 쉬운 방법은 돈을 어디에 투자 하는 것이다. 사실 개인의 가치관 또한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부분 돈으로 환산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1분마다 무기 생산에 쏟아 붓는 돈은 영양실조로 신음하는 2천명의 어린이가 1년동안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액수이다. 탱크 한 대의 가격은 3만 명의 학생에게 교실을 만들어 줄 수 있다.
현대의학이 약물과 수술을 선호하는 이유도 공격적인 가부장 문화의 영향이 크다. 자연요법이나 비독성요법은 약물, 화학요법, 방사선치료에 비해 뒤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무시되는 치료법 중에 ‘기도의 효과’는 철저히 무시된다. 병의 원인 중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이야기 하면서 기도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무시한다.
중독된 사회구조는 육체를 뇌에 종속된 것, 뇌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뇌에게 피로감, 허기, 불안감을 무시하도록 가르친다. 육체를 적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육체가 보내는 메시지를 듣지 않고 메시지 자체를 보내지 못하도록 한다. 이제 우리는 그 몸의 메시지를 들어야만 한다. 그렇게 될 때 몸은 최적의 건강을 누릴 수 있다.
▶편견2 : 의학은 전능하다.
몸이나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곧바로 의사를 찾아가도록 배운다. 또한 의사가 우리보다 몸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다고 배운다. 치료는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배운다. 그래서 자신의 몸이 어떤지는 전문가가 더 잘 안다고 믿는다. 특히 여성에 있어 의사의 권위는 화신이다. 그러나 자기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여성은 자신의 몸과 판단력에 분명한 자신감을 갖지 못한다. 그러한 자신감의 결여가 여성을 심리적으로 불안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여성은 건강에 대한 대답을 외부에서 찾도록 길들여져 있다. 외부의 지속적인 도움없이는 건강을 지키기 어렵다는 의식이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이다.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의사의 절반 정도가 주치의를 두지 않으면서 자신의 환자들에게는 주치의를 두라고 권한다. 또한 20%의 의사는 전혀 운동하지 않으며 7%는 자신이 숙을 많이 마신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의사의 절반 정도는 매달 해야 할 유방 자가검진마저 소홀히 한다. 즉 건강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건강을 맡기고 있는 현실이다.
현대의학은 병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건강한 사람이 연구대상이 아니다. 만성병이나 회복불가능한 병에서 치유된 환자가 치유되었을 때 너무 쉽게 ‘오진’이었다고 생각한다. 환자가 회복한 진정한 이유에 대해 관심이 없다.
의학의 발전이 우리 생명을 연장하고 모든 변수를 고려해서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구가 거듭되고 자료가 축적되면 건강도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양적팽창을 질적 발전으로 해석하면서 돈이면 어떤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의학은 내면의 안내자를 무시하고 자가치유능력을 믿지 않도록 길들이고 있다.
의사들은 확실하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에 많은 검사를 처방한다. 불확실한 것은 용납하지 않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일지라도 정보가 많을수록 처방에 자신감을 갖는다. 환자도 불확실한 것에 대해 불안해 한다. “어떻게 이런 병에 걸렸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코 확실하지 않다.
▶편견3 : 여성의 몸은 비정상이다.
중독된 사회구조에서는 남성이 기준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성은 자신의 몸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델과 같은 체중에 속하는 여성은 17%로 불과하다. 신경성 식욕부진과 거식증환자의 비율이 남성에 비해 10배나 되고 증가추세이다.
편견들 때문에 여성은 자신의 몸에 혐오감을 갖는다. 자신의 유방을 만지려 하지 않고 유방은 남성을 위한 것이라는 무의식적 편견이 있다. 여성들 뿐만 아니라 월경, 폐경, 출산과 같은 정상적인 기능조차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여성의 몸은 태어난 순간부터 ‘의학’이라는 덫에 얽매게 만든다. 우리의 문화는 탄생, 질병, 치유, 삶과 같은 자연스런 과정들을 두려워한다. 상처를 입기전에는 겁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어린 아이의 말이 치유의 원칙이 될 수 있다. 상처를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된다.
과학을 ‘객관적’으로 믿는다. 과학이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현대의 과학은 중독된 사회구조의 모순으로 가득한 문화적 산물이다. 문화적 편견에 따라서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과 무시해도 도는 것이 결정된다. 누구도 이런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은 새로운 생각에 저항하는 항체를 만들도록 설계된 기관이다”라는 지적처럼 육체의 자연스런 치유력과 지혜를 부정하는 것은 편견이다.
여성의 권위를 되찾기 위하여
우리 몸이 기능하는 방법과 이유는 과학적 지식만으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 과학은 자연의 미스터리와 기적과 지혜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 결국 우리 내면의 안내자와 감정에 눈을 떠야한다.
중독된 사회구조는 감정적 대응을 경멸하며 감정을 억제하도록 가르친다. 학교교육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거나 오감으로 감지할 수 없는 것은 무시하도록 배운다. 자연의 순환과 밀접한 가능성이 있는 여성의 몸은 감정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 우리가 알고 느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상황에서 생기는 잘못된 습관에 무의식적으로 탐닉하게 되어 몸과 정신에 심한 타격을 입게 된다. 잘못된 습관은 내면의 안내자와 진실된 감정에 우리를 연결을 끊어버린다. 그런 단절은 고통을 더하고 단절을 부인할수록 고통은 커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럴 때 알콜과 담배의 힘을 빌려 벗어나려고 한다. 의사들마저 “술과 담배가 없다면 의사 노릇도 못해먹을 짓이야.”라고 말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과로나 과식, 충동적인 행위가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고 부정하게 만드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알콜중독에서 섹스중독으로 바뀌는 것은 중독의 해악성을 보여준다. 중독된 행위와 그 뒤 감춰진 개인적 고통을 인정해야 건강한 삶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관계중독의 최면에서 깨어나기
삶과 건강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기 위한 첫 단계는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잣대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데 익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부탁이나 지시를 거절하지 못한다. 거절하면 그들의 사랑에서 멀어질 것 같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내면의 인도자 노릇을 하려는 지배의 욕구이다. 일종의 관계중독이다.
중독된 사회구조에서 공통적인 특징은 협동이 아니라 의존이다. 새프 박사는 “스스로를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외부의 것이나 다른 사람이 당연히 당신을 돌보아줄 것이라는 생각이 의존성이다. 의존적인 사람은 감정적·심리적·지적·영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린다.”라고 말한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대부분의 여성은 경제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남성의 힘을, 남성은 감정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여성의 힘을 빌렸다. 여성이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한 것은 생존경쟁에 열중하는 사람을 돕는데 시간을 많이 허비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이런 식의 인간관계는 진정한 친교(관계)를 방해한다. 친교는 서로의 의존이 아니라 동등한 입장에서의 나눔이다.
문화적 정의에서 ‘착한 여성’은 자신의 욕구를 억제하면서 상대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여성이다. 일상의 중독현상에서 문화적 최면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이름을 붙이고 나면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 영향력에서 자유로워지겠다는 의미이다. “중독사회”라고 이름 붙이는 것도 사회구조를 이해하고 행동의 변화를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중독자는 사회를 반영하고 사회는 중독자를 반영한다.
<표1-1>중독된 사회구조의 특징들
특징 | 정의와 예시 |
비난 |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의 원인이 외부에 있다는 믿음 예>어쩔 수 없어. 나는 항상 이래. 어머니가 알콜중독자였거든 |
부인 | 자신의 느낌이나 욕구 혹은 어떤 정보를 외면함 에>왜 체중이 늘지?항상 건강식으로 먹었는데... |
혼돈 | 상황이나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명확히 알지 못함 예>대체 무슨일인지 모르겠어. |
건망증 | 잊어버리거나 관심을 끊음 예>약속, 열쇠, 개인 소지품, 신체적 욕구등을 잊어버림 |
결핍 (제로섬 모델) | 원하는 것에는 언제나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생각 예>내가 성공하면 다른 사람이 고통받을 거야 |
완벽주의 | 외적인 질서로 내면의 무질서를 보완하려는 극단적인 욕구 예>완벽한 체격, 가정, 친구, 직장을 얻기위한 냉철한 추진력 |
방어 | 과거의 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수정 예>내 월경전 증후가 가족과 관계있다고? 천만에 내 어린시절은 완벽해. |
자제력 (객관성의환상) | 자신의 욕망과 느낌을 두려워하면서 어떤식으로든 억누를 수 있다는 환상. 감정을 완전히 분리시킨 채 철저하게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
|
부정 | 근시안적 시각으로 삶을 바라봄 |
의존성 | 누군가 자신을 돌보아줄 것이라는 생각 |
위기전도 | 외적인 위기를 감정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삼음 |
거짓말 | 진실을 말하지 않는 행위 |
이원론적 사고방식 | 흑백론적 생각. 옳고 좋은 것과 틀리고 나쁜 것만 있음 |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건강을 대신하여 지켜주지 못한다. 어떤 의사라도 환자에게 적절한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자신만이 내면의 인도에 다가갈 수 있다. 생각을 바꾸면 삶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상처에 이름붙이기
몸은 종종 우리의 관심을 끔찍한 경험했던 때로 되돌려서 근본적 치유를 시작할 수 있게 도와준다. 진정한 치유는 그 때로 되돌아가 그 경험을 삶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는 것이다. 몸의 느낌에 충실할 때 우리는 내면의 인도자를 만날 수 있다.
▶치유란 상처를 잊는 것이다
대부분의 여성은 사회의 모순된 요구를 의식하지 못한 채로 갈아간다. 그러나 이제 많은 여성들은 억압에 눈을 뜨고 자신만이 고통받고 있는 게 아니고 사회분위기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고통에 이름을 붙이고 일상의 기준에서 건강을 되찾고자 하는 시도는 여성질환의 치유 가능성을 높인다.
정신과 육체의 관련성을 인정하는 건강관리사나 의사의 도움을 받아도 좋다. 중요한 것은 몸에서 드러나는 징후가 내면의 인도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실험실 자료를 믿듯이 자기 자신의 경험을 믿어야 한다.
의사와 환자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분야와 모르는 분야, 그리고 너머의 미지의 분야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내면의 인도자는 우리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다. 특히 몸은 우리가 얼마나 건강하게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정확한 바로미터이다. 건강한 삶은 우리 몸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