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뮨 후기] 14장 십이지연기 +1
미오
/ 2018-06-05
/ 조회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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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계절입니다.
연두빛 아기 이파리들이 몇 번의 빗줄기를 견뎌내더니
이제는 제법 녹음(綠陰)을 띄고 있습니다.
나뭇잎을 관찰해보면 이들이 성장하는 데에는 두가지 법칙이 존재함을 알 게 됩니다.
첫 번째, 최대한 햇볕을 많이 받을 것.
두 번째, 최대한 어둠에서 벗어날 것.
사람에게도 이와 같은 법칙이 있으니,
첫째, 최대한 즐거움을 추구할 것.
둘째, 최대한 괴로움을 벗어날 것.
불교에서는 삼독(三毒 탐진치)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즐거움을 어떻게든 많이 오래 얻으려는 마음에서 탐욕이 나오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그렇게 안되니 분노가 나오며,
이러한 이치를 모르기에 어리석다고 얘기합니다.
이 삼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십이연기가 일어나게 됩니다.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우리(名色)는 컴퓨터에 비유하면 키보드나 마우스같은 입력기관이 존재하는데 이 기관이 눈, 코, 입, 귀, 피부, 의식(六處)에 해당합니다. 이 입력기관을 통해 외부의 다양한 정보가 들어와(觸), 이 정보를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 등등의 즉각적인 판단(受)을 하고 좋은 것을 얻으려 하고 싫어하는 것을 밀어내려하는 감정(愛)이 나오고 이 행위들이 반복되어 쌓(取)임으로서 자신을 형성(有)합니다. 이번 생의 결과(有)로 다음 생에 태어나(生)서 또 그렇게 살다가 죽는 것(老死)이 우리의 인생이며 이것을 밝힌 것이 십이연기입니다.
無明-行-識-名色-六處-觸-受-愛-取-有-生-老死
불교에서는 이러한 쇠사슬처럼 연결되어 있는 고리를 끊어내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로 ‘알아차림’이 그것입니다.
알아차림이란, 觸에서 受로 넘어가는 과정을 끊어내는 방법으로
오감을 통해 특정정보가 우리에게 들어오자마자 우리는 좋다, 싫다라는 감정이 찰나에 나오는데,
부처님은 이 찰나의 순간을 하나로 보지 않고 나누어 분석하셨습니다.
보자마자, 듣자마자 우리는 짜증이 올라옵니다.
하지만 봄, 들음이 있은 후(觸)에 감정이 올라오(受)는 찰나의 순간을 깨어있는 눈으로 그냥 지켜만 본다면(알아차림), 이 알아차림에 능숙해 지게 되면 觸에서 受로 넘어가는 쇠사슬이 끊어짐을 알게 됩니다.
나에게 다가온 일체의 정보가 色의 체험에서 空의 체험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알게 되었지만 실제 삶에서의 투영은 쉽지않습니다.
이글을 쓰는 바로 직전에도 어떤 일로 인해 실망한 저를 봅니다.
그 실망은 저에게 짜증과 분노를 불러일으킵니다.
앎의 전과 후가 달라야 되는데 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시간이 지나니 앎의 전후가 달라야 된다는 것이, 또 하나의 틀이 되어
나를 자유롭게 하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감정은 수없이 파도처럼 올라옵니다. 때로는 잔잔히 때로는 해일처럼 갑자기 올라와서
나를 순식간에 덮치곤 합니다. 이런 폭풍속에 있을 때 빠져나오기는 정말 쉽지않습니다.
나올려고 애쓸수록 더 감정의 구덩이속에 깊이 빠져있는 나를 봅니다.
나에게 쌓여있는 습관들로 인하여 감정은 자연스럽게 생기니 이것을 탓할 것도 아니고
막을 것도 아니였음을 떠올립니다.
폭우속에서 안보이는 문을 찾을 게 아니라 바라보며 ‘그렇구나’ 하고 흘러보내야 함을 떠올립니다.
이렇게 함이 탐진치가 되어 고통의 애로 쌓이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나에게 감정적 판단의 쌓임이 없을 때, 바라봄에 있어서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음이
‘분별없는 분별’을 가진 ‘자유’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처음부터 함께하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목차의 이끌림만으로 끌려들어온
이 책의 구절구절은 5월의 어떤 신록보다 빛났습니다.
어린 연두빛 이파리들에 綠陰이 들어 성장해 가듯이,
산들바람이 코끝을 간질이는 바람의 숨결에 오늘도 나를 놓아봅니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였습니다,
같이 했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댓글목록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이번 [불교세미나]는 '철학적 관심에서 불교'로 온 사람과
'불교적 관심에서 철학'으로 온 사람이 만났습니다.
저에게 처음 읽는 불교를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익숙한 방식으로 불교를 해석해준 이진경샘의 고마움도 있었지만,
직접적으로는 불교공부를 했던 친구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미오, 박사, 거은이 그런 친구였던 거 같습니다.
함께 공부했던 내내 즐겁고 새로운 감각이 생겨났던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인연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모두들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