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 후기] 제5도살장 2회 +4
파에
/ 2018-05-24
/ 조회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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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2월 유럽 전선
1960년대 뉴욕 타임스퀘어
빌리가 트랄파마도어에 대해 말하기 위해 헤매고 다니던 타임 스퀘어와 1945년 2월 드레스덴의 간격은 너무나 큽니다. 보니것은 그 간격을 의식했기에 23년이나 드레스덴에 대해 침묵하거나 에둘러 말하는 자기만의 방식을 갖게 된지도 모릅니다. 저 타임 스퀘어의 사람들에게 드레스덴을 말하는 것은 까마득히 먼 이상한 이름의 외계 행성에 대해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을 테니까요.
제5도살장의 후반부에서 빌리는 여러 시간대와 장소를 분주하게 옮겨다니던 전반부와 달리 68년 미국과 45년 드레스덴에 집중합니다. 그는 저 화려한 타임 스퀘어에 드레스덴의 참상을 겹쳐보고 있었고 그가 본대로 말하려고 했다가 광인 취급을 받고 격리를 강요받습니다. 유일하게 그의 말을 이해한 사학자는 어쩔수없었다는 말로 그의 말을 중단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고, 공식 역사 또는 대중매체에 의해 신화화된 역사를 거부하고 트랄파마도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실 그것은 드레스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가 드레스덴을 이야기할수록 그것은 트랄파마도어나 아니면 다른 이상한 이름의 먼 외계행성 이야기로 들립니다. 아니, 차라리 트랄파마도어는 1945년 드레스덴에 포로로 있던 빌리의 시점에서 본 1968년의 미국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나이든 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이 있듯이 과거에서 본다면 현재, 곧 과거 사람들에게 미래는 낯선 외국일테니까요.
보니것이 기억투쟁을 통해 되살려낸 45년 드레스덴에는 몰트시럽을 입안에 넣고 우는 나이든 포로. 노래하지 못하는 사중창단, 먹이를 찾아 흘러든 적군 포로를 환대하는 눈먼 여관 주인, 그리고 적군의 전리품이 된 녹색마차를 끌고다니는 나귀가 있습니다. 이들은 공식 역사나 전쟁 신화에서는 자리를 찾지 못했겠지요. 보니것은 그들을 68년 당시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존재로 그려냅니다.
보니것의 말문을 트이게 한 또다른 힘은 베트남이었습니다. 당대 미국인들이 드레스덴을 먼 외계행성 이야기로 치부하듯이 자신 역시 베트남을 그렇게 보고 있다는 자각이 그를 이 작품을 쓰도록 내몰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의 얼핏 산만하고 혼란스런 구조는 그의 자각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 주 세미나 당시 여러 선생님들의 훌륭한 말씀을 제대로 옮기지 못하고 객적은 소리만 적은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아침에 해방촌에서 뵙겠습니다.
댓글목록
모로님의 댓글
모로사진속 타임스퀘어 모습이 정말 생경한 외계 같아 2차대전과 외계행성을 넘나드는 사유가 이제야 납득되네요.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누군가에게는 현실은 환상으로, 또는 환상은 현실이 됩니다.
그 어느 곳이 진짜라고 말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진실은 진실하다고 말하는 순간, 사라져버릴 테니까요.
여기, 그리고 다른 곳 어디쯤에 있는 트랄파마도어를 빌리가 만났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해방촌에서 봄을 함께 했던 기억만이 존재하게 되겠지요.
다른 시각과 정보들로 새로운 활력을 주셨던 파에님, 감사합니다.
다음 기회에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길 기대합니다.~~^^
파에님의 댓글
파에보니것 덕분에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커래스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다음에 또 뵈어요:D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커래스 동맹! 크로스!!! ㅋㅋㅋ
다음에 또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