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뮨 후기] 불교를 철학하다 : 마음, 식 +1
거은
/ 2018-05-29
/ 조회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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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마음먹는다’ 는 것은 자유의지가 아니라 내 마음 밖의 외부조건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먹고 싶다는 마음은 내가 마음먹기 이전에 나의 감각기관과 음식이 만나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음이란 마음 밖에서 내게 다가온 외부조건과의 만남의 장이고, 먹고 싶다는 작용을 하여 먹게 되는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을 가집니다.
외부조건과 만나 작용하여 변화를 산출하는 이러한 과정은 일상적인 생존을 위해 신체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습관적인 의지들입니다. 그래서 모든 마음은 내부화되어 안정적인 동시에 하던 대로 계속 하려는 관성적인 성향을 필연적으로 가집니다. 부처는 연기적 조건에 따라 관성적인 힘에서 벗어나 이탈의 선을 그리는 능력입니다.
식
서양철학에서 눈과 귀는 ‘나’ 라는 유기체의 인식을 위한 도구라고 보는 반면, 불교에서는 눈이나 귀도 독자적인 인식을 한다고 합니다. 눈과 귀도 무언가를 포착하고, 알아채는 ‘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눈이라는 감각기관이 과도한 빛이라는 외부를 알아채고 눈을 찡그리는 식의 작용을 합니다. 식은 외부의 무언가를 알아채는 작용과 그 내용입니다. 외부조건에 반응하는 마음의 정의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외부의 과도한 빛을 알아채고, 눈이 부셔서, 찡그리는 눈은 식의 작용입니다. 눈에서 더 들어가 눈을 이루는 세포들, 세포를 이루는 분자들의 활동에서도 찡그리는 눈과 같은 식의 작용이 있습니다. 분자는 자신과 서로 분자를 알아채고 결합하여 세포를 이루고, 세포는 자신과 서로 다른 세포를 알아채고 결합하여 단백질을 만듭니다. 이렇게 분자, 세포, 단백질, 기관, 신체, 특정 행동으로 이어지는 생명체의 활동은 식의 흐름이 끊이지 않는 작동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체는 고정된 것이 아닌 식의 작용이 이루어지는 장입니다. 그래서 식을 통해 신체나 생명체를 집착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닌 변화되며 지속하는 과정만 있는 무상의 개념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댓글목록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지난 세미나는 특별히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았지요.
간략하지만 핵심이 드러나는 후기입니다. 잘 읽었어요! 거은님^^
거은의 의견에 잠시 보태면... !!
[마음의 2가지 능력에 대하여]
"마음이란 매순간마다 우리에게 다가온 연기적 조건이 갖는 작용의 능력이고,
(또한 마음이란) 우리로 하여금 우언가를 하게 만드는 능력이다."
"마음은 일상적 생존을 위해 신체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습관적 의지들이며, 경험이 내부화된 것이다.
하지만 '생명'이라는 이름에 부합하는 것은, 관성적 힘에서 벗처나는 이탈의 선이다."
전자가 연기적 조건이 우리에게 가하는 작용으로서 마음의 수동성을 뜻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연기적 조건에 대한 우리의 작용으로서 마음의 능동성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세포적 인식능력, 분자들의 인식능력 ...... 미시적 식의 작용]
눈 없이 보고, 코 없이 냄새 맡고, 혀 없이 맛을 느끼고, 귀 없이 듣고, 뇌 없이 기억하는 능력...
이 모든 능력은 유기체 수준 이하에서 벌어지는 식(앎)의 작용입니다.
우리가 유기체 중심주의, 인간 중심주의에서 넘어설 때,
이처럼 모든 생명체의 생명활동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