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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뮨 후기] 불교를 철학하다. 분별, 중도 후기 +2
거은 / 2018-05-15 / 조회 1,726 

본문

  인간은 선악호오, 미추정사의 판단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중 호오의 분별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동물적 본능입니다. 위험의 순간에 감각이나 생각보다 먼저 감지, 작동되어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악호오, 미추정사를 분별하지 않는 것이 라고 합니다. 분별 즉 호오의 선판단은 정확하게 지각하는 것을 막아버리고, 생각하기 전에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분별은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들어 좋아하는 것은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싫어하는 것은 이해하지 않습니다.

  분별은 나의 기준으로 척도가 만들어집니다. 좋아서 가지려는 탐심, 싫어서 멀리하려는 진심의 작용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남을 이해하기 보다는 내가 옳다고 믿는 것에 남을 맞추게 하려는 권력도 작동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분별하지 말라는 것은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호오미추의 선판단을 떠나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입니다.

  분별심을 내려놓으면 타자성의 영역에 발을 디딜 수 있습니다. 타자성이란 내 인식이나 이해 바깥에 있는 것입니다. 나를 내려놓고 알 수 없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들어가는 것. 이러한 마주침 속에서 분별은 작동을 멈춥니다. 생각해야 하지만 생각할 수 없는 것, 알아야 하지만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과 만날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생각이 시작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만났을 때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이고, 이해하고, 마음을 연다면 따로 좋아할 것도, 따로 추한 것도 없습니다.

  호오미추의 분별을 떠난다면 각각이 가진 미덕이나 가치를 볼 수 있습니다. 이때 비로소 어떤 조건에서 어떤 것이 나은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별을 떠난 분별은 고정된 경계를 갖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경계를 활용할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얕은 물은 걸어서 건너기 좋고, 깊은 물은 배를 타고 가기 좋습니다. 비슷한 의미로 중도(예를들어) 선악이라는 이항대립을 만드는 경계를 떠나 선()이 악()이 될 수 있음을 보거나, 선과 악이 중첩되는 것을 보거나, 선도 악도 아닌 것을 보고 그러한 사태에 대해 그 의미나 이유를 질문할 수 있는 사유의 방법 또는 존재론적 상태입니다. 중도는 선악의 경계를 넘어 선악이 무의미해지는 영역으로 떠밀어버리고 묻습니다. ‘, 거기서 어떻게 하겠나?’

  무간도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은 경찰 신분을 속이고 범죄 조직원으로 들어갑니다. 경찰도 아니고 조직원 아닌, 그러면서 경찰이면서 조직원인, 경찰이면서 조직원이 되기도 하고 조직원이면서 경찰의 역할을 하기도합니다. 경찰과 조직원이라는 경계너머에 있는 주인공은 중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도에 있을 수 있다면 마음이 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영화에서 묘사된 주인공은 지옥과도 같은 곳에서 하루하루 버티는 삶을 살아갑니다.

  경계 너머 중도의 삶은 몹시 피곤해보입니다. 차라리 경계 안에서 선악호오, 미추정사를 하며 사는 것이 더 윤택한 삶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경계를 활용하는 분별 떠난 분별, 중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 해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해탈은 공부로 되는 게 아니라 지옥 같은 상태를 지날 수 있어야 (지옥 같은 곳에서도 지옥이 아닐 수 있는 신체가 되어야) 얻을 수 있습니다. 무간도 주인공을 중도에 서게 하고 해탈의 길로 안내한 이항대립이 경찰과 조직원이었다면 나를 경계 너머로 보내어 분별없는 분별을 하게하고 중도에서 해탈의 길로 이르게 할 수 있는 이항대립은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댓글목록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1. 경찰과 조직원의 경계를 횡단하는 존재

영화 [무간도]는 홍콩 르와르의 대표작품이지요.
경찰의 스파이가 된 범죄조직원과 범죄조직의 스파이가 된 경찰의 비대칭적 구조가 서사의 핵심인!

범죄조직의 스파이로서 경찰이 된 유건명(유덕화)은 거은의 말대로 경찰과 조직원의 이항대립을 횡단하는 존재이지요.
18살부터 범죄조직의 스파이가 되어 10년 이상을 경찰로 살아왔다면, 그는 조직원일까, 경찰일까?
거울을 보는 것처럼 반대편에 있는 경찰의 스파이로서 범죄조직원이 된 진영인(양조위) 역시 같은 경계에 서있습니다.

유건명과 진영인은 경찰과 조직원의 이항대립을 횡단하는 존재로서,
먼저, 이들의 존재는 스스로 뿐아니라 우리 역시도 그들이 경찰인지, 조직원인지 묻게 합니다.
다음, 이들의 존재로부터 우리는 경찰이란 어떤 존재이며, 조직원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묻게 됩니다.
즉 이들의 존재에 대한 물음은, 이제 경찰과 조직원에 대한 물음으로 발전합니다.
또한 경찰은 선이고, 조직원은 악이라는 기존의 이분법 역시 의미를 잃게 됩니다. 

2. 이항대립을 횡단하는 사유에 대하여

무간도의 언더커버나 트랙퀸, 트랜스젠더, 내부고발자, 외부자, 늑대인간.... 같이,
우리가 스스로 이항대립을 횡단하는 존재가 될 수 없다 하더라도,
그들을 통해 이항대립을 횡단하는 사유는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무간도의 언더커버나 트랙퀸, 트랜스젠더, 내부고발자, 외부자, 늑대인간.... 같이,
내 인식이나 이해의 바깥에 있는 타자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 즉
이들이 나의 분별을 정지시키고, 나의 사유를 새로운 지대로 이끄는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요?

거은님의 댓글

거은 댓글의 댓글

그동안 그런 그들을 보고 특이하다고만 생각했지 있는 그대로 보거나 이해하려고 한적은 없었던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보니 그들은 굉장한 수행자이자 저같은 소시민의 사유를 새로운 지평으로 이끌어가줄수 있는 선구자로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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