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틀러 발제 3장 2절 푸코, 에르퀼린, 그리고 성적 불연속성의 정치학 5/17
현
/ 2018-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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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트러블 > 3장 전복적 몸짓들 - 2. 푸코, 에르퀼린, 그리고 성적 불연속성의 정치학
버틀러 세미나 18.05.17 목 / 현
◆ 푸코의 ‘공식적인’ 입장
- 섹스는 기원이기보다 결과
푸코는 성의 역사 1권에서 섹스의 일원적 구성이 섹슈얼리티에 대한 사회적 규제와 통제 작용으로 생산된 것이며, 전혀 다르고 관련 없는 여러 성적 기능들을 숨긴 뒤 그것을 인위적으로 통일하여, 어떤 원인으로 생산하고 인식하게 하는 내적 본질을 담론 안에 설정한다고 주장한다.(264) 그리하여 섹스는 기원이기보다 결과라고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억압과 지배의 권력/해방을 향한 성’ 도식이야말로 권력이 영속화되며 감추어지는 방법이기도 하다. 푸코에 따르면 ‘섹스’는 섹슈얼리티의 관점에서 맥락을 다시 설명해야할 뿐 아니라, 그에 따라 사법 권력도 자신의 생산기제를 감추는 생산 권력이 산출한 하나의 구성물로 다시 생각돼야 한다. (265)
- 성별화된 몸에 대하여
푸코는 자유주의 모델이나 해방 모델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하는데, 이러한 모델들이 ‘성’을 하나의 범주로, 권력관계의 신바화 ‘효과’로서 역사적으로 생산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법적 모델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이분법적 젠더 규제를 채택하지만, 푸코는 다른 노선을 탐구한다. 그에게 성별화 된다는 것은, 일련의 사회 규제에 복종한다는 뜻으로, 이러한 성의 범주를 미리 전제된 것으로 만드는 권력/지식체계의 전략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보았다.(266)
◆ 에르퀼린 바르벵의 일기 서문, 그리고 성의 역사와의 모순점
- 에르퀼린 바르벵의 일기 서문
에르퀼린은 어릴 적 여성으로 수도원에 살다가 사라와 연인관계를 맺게 된다. 에르퀼린은 자신의 신체에 대해 의사와 신부에게 털어놓으면서 사라와 강제로 헤어지게 되고, 에르퀼린은 남자로 살 것을 합법적으로 강요받다가 자살에 이른다. 이런 삶을 살았던 에르퀼린 바르벵의 일기를 편집하고 기타 문서들과 함께 출간하여 쓴 푸코의 서문은, 그러나 위의 <성의 역사>에서 쓴 바와 모순적인 태도가 상당수 드러난다.
- 푸코의 오독, 성의 역사와의 모순점
푸코는 에르퀼린이 남자로 살도록 강요받기 이전까지는, 그가 사법적, 규제적 ‘성’의 범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웠을 것인 양 서술한다. 이는 마치 법을 부과하기에 앞선 쾌락의 영역(270), 규제적 담론 바깥의 쾌락이 있는 듯이 가정하는 것, 몸의 쾌락이 ‘섹스’를 즉각적으로 자신의 기원적 원인이나 궁극적 의미로 의미화하지 않는 세계를 가정(267)하는 것으로, <성의 역사>에서 그가 내세우던 주장과는 상당한 모순점인 셈이다.
- 비정체성의 행복의 중간지대?
에르퀼린은 자신의 몸이 젠더 혼란의 원인이자 젠더 위반적 쾌락이라고 가정한다. 이는 마치 그/녀의 쾌락이 질서 외부의 본질인 듯이 말하지만, 사실은 완전히 텍스트화된 몸, 일의적 성에 대해 사법 담론이 생산한 해결 불가능한 양가성의 기호로 읽을 것이다.(272)
그/녀는 자신이 욕망하는 젊은 여성과 자신의 차이를 알게 되고 그것을 즐기지만,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욕망의 이성애적 모태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이러한 교환에서 자신의 입장이 위반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그런 입장을 취할 때 남성적 특권의 ‘찬탈자’가 된다는 것도, 자신이 그 특권을 모방할 때조차 그것에 저항하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찬탈의 언어란 그 범주에 참여한다는 것을 뜻하며, 동시에 이런 범주들이 탈자연화되고 유동화될 가능성은, 미리 전제된 성의 고정성과 연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에르퀼린은 성의 범주 바깥이 아니라 구성요소를 재분배한다. 사실 속성들의 자유로운 유희는 성의 환영적 특성을, 이런 다양한 속성들이 고정된다고 가정하는 안정된 본질의 토대로 나타내는 효과를 갖는다.(274)
푸코가 처음 성의 범주에 반대한 이유는 이질적인 성적 기능과 요소에 인공적인 단일성을 부여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이질성이란, 결국 그가 비판하고 있던 의료 담론에 기반한 명명이기도 하다.(275)
푸코 자신은 동성애에 관해 단 한 번의 인터뷰만 했고, 자신의 저작에서는 언제나 고백의 순간에 그것에 저항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에르퀼린의 고백을 염치없게도 교훈적인 어조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276)
- 에르퀼린의 두 번의 웃음의 의미, 법의 체현
푸코가 동성애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의 웃음, 보르헤스가 인용한 중국식 백과사전을 보며 터져나온 웃음, 데리다가 언급한 바타유의 웃음, 이 모두는 동일자와 타자의 이분법을 ‘파괴하는 웃음’인지 모른다. 그러나 동일자와 타자의 이분법은 남근로고스 중심주의의 형이상학적 경제를 강화시키는 환영이라고 이리가레는 말한다. 위와 같은 세계관에서 동일자와 타자, 모두는 남성일 뿐이다. 여성은 타자도 아니기에 재현도 불가능하다. 이런 남성 의미화 경제 안에서 여성은 하나가 아닌 성이며, 그 때문에 상징계 속에서 일의적으로도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에르퀼린의 다원적 쾌락은 일원적 의미화에 복종하기를 거부한다는 점에서는 여성적인 것의 표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에르퀼린의 두 번의 웃음은, 조롱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의사에게 보내는 경멸, 굴욕이나 조롱으로 드러난다. 이 두 가지는 법과 관련하며, 도구나 대상으로서의 법에 복종한다. 에르퀼린은 스스로를 헌신적인 딸, 개, 노예로 비유하며, 추방조차 처벌의 양식으로 받아들인다. 사라와의 관계에서도 남성들의 지위를 찬탈하려 하거나, 혹은 남성들이 자신을 금지하는 존재라고 고발한다.
결국 에르퀼린의 섹슈얼리티는 법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의 양가적 산물이다. 따라서 에르퀼린의 고백은 복종인 동시에 저항이다.(283) 사실 에르퀼린은 법을 체현한다. 칭호를 부여받은 주체로서가 아니라, 그러한 모반만을 생산하는 법의 기괴한 역량에 행해진 증언으로서의 법을 체현하는 것이다.(284)
◆ 결론적 비과학적 후기
- 페이지의 소논문 ‘인간의 Y염색체에서 성을 결정하는 부분이 징크 핑거 단백질의 기호를 만든다.’
(오류1. 모집단의 오류 : DNA 샘플이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집단에서 채취됨)
(오류2 XX염색체를 가지고 있음에도 의학적으로 남성으로 지칭, 반대의 경우도 있음 (근거도 명확히 밝히지 않음))
가정 : 남자의 성을 결정하는 DNA 연쇄가 있을 것이며, 그것이 위치변경을 할 수 있을 것→(오류2)를 밝힐 수 있을 것
입증 오류 발생 : 남성성을 결정한다고 하는 DNA 연쇄가 여성의 X 염색체에서도 똑같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
→ 이런 경우, 해부학적, 재생산적 구성이 확실성과 거리가 멀다고 해야 하지만
대응 : 남성에게는 이 유전자 연쇄가 존재하는 반면 여성에게는 부재한다는 것이 결정적 요소가 아닐 수도 있다고 대응
(남성에게는 능동적으로, 여성에게는 수동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 연구의 문제점
이들은 성의 구분을 외부 성기에 의존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XX염색체를 가진 남성, XY염색체를 가진 여성, 이러한 구분에 대한 동의 여부는 모호해진다. 외부 성기가 성의 구분의 전부라면, 이 연구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는 셈인 것.
또한, 성의 결정인자를 남성의 결정인자(고환 결정인자)와 융합시킨다. 애초에 난소 결정인자는 고려되지 않았으며, 여성에 대한 정의는 남성의 부재 혹은 수동적인 것으로, 연구 대상의 자격이 없어왔다고 주장하며, 이런 문화적 편견이 연구에 영향을 미친다고 비판했다.(에바 이처, 린다 L. 워시번)
발생학의 영역에서 세포핵 중심적 가정들 역시 비판 받았으며, 중요한 것은 ‘어떻게’가 아니라 핵-세포질의 상호작용이 가져오는 변화라고 말한다. (파우스토-스털링)
- 결론
남녀의 상대적 지위와 젠더의 이분법적 관계 자체와 관련된 문화적 가정들이 성을 결정하는 연구의 틀을 정하고 그 중심이 된다는 점. 일단 젠더화된 의미들이 가설의 틀이 되고, ‘섹스’는 그것이 획득한 문화적 의미에 선행하는 것으로 설정해두려는 생의학적 연구의 추론과정은 자기가 발견하여 중립적으로 서술하려는 대상의 문화적 집적 작용을 재생산(290)하고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