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후기] 인식과 진리의 관계 ::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 1,2강 후기(0517) +2
삼월
/ 2018-05-22
/ 조회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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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쏟아지던 목요일 저녁, 혼돈의 첫 세미나가 끝났습니다. 지식과 인식과 진리의 폭우 사이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칸트와 스피노자, 니체가 각자의 이야기를 떠들어댔습니다. 빗소리에 묻힌 그 말들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맨발로 빗속의 거리를 뛰어다니다 집으로 돌아온 느낌입니다. 발바닥에 남은 흙탕물 자국을 더듬어 그날의 후기를 적어봅니다.
이 책은 1971년에 있었던 푸코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를 엮은 것입니다. 1971년은 푸코가 콜레주드프랑스 교수로 취임한 바로 다음해입니다. 68혁명 이후 푸코의 주요관심사였던 권력의 문제를 분석하기 위한 이론적 기반들이 이 책 속의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듯합니다. 푸코는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기반이 경제력에만 있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부르주아지의 권력은 지식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형성되었고, 끊임없이 형성되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특히 푸코가 주목하는 지식은 의학, 정신의학, 사회학 등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들입니다. 이 학문들은 과학을 자처하는 담론으로서, 우리 사회의 명령적 체계인 형벌 체계에 편입되어 있습니다. 푸코는 그 편입을 통해 법 담론에서 진리 담론이 기능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고, 이 책의 연구를 통해 그 담론의 효과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푸코는 부르주아지의 지식-권력 기반에 대한 분석을 프랑스혁명 전후(16~19세기)로 한정하지 않습니다. 푸코의 계보학적 작업은 지금껏 우리가 진리 혹은 사실이라고 믿어온 지식들에 대한 의심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푸코의 작업은, 그 자신의 표현을 빌려 부르주아지의 ‘불명예스러운 고문서 보관소’라고 부르는 곳을 샅샅이 뒤지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지금껏 사실이라고 믿어온 것, 진리라고 전해져 온 것을 불신하면서 지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게 될 것입니다. 그 가능성을 위해 푸코는 우리를 자주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 곁으로 데리고 갑니다. 익숙한 이름을 가진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낯선 방식으로 펼쳐집니다. ‘사유체계의 역사’라는 이름으로 개설된 강좌답게 고대부터 현대까지 서구 철학의 주요 철학자들 역시 종종 등장합니다.
아무리 많은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이 방대한 이야기 앞에서는 자신이 가진 지식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기존의 해석을 뒤집는 푸코의 현란한 분석을 따라가기가 버거울 겁니다. 그 초라함과 버거움을 서로 다독이고,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함께 세미나를 하러 모인 것이겠지요. 무엇보다 우리는 지식을 경배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의심하러 모인 사람들이니, 그 초라함과 버거움에 눌리지 말아야겠다고 결연히 주먹을 쥐어봅니다.
1강에서 푸코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서두에 등장하는 낡은 구절을 세세하게 분석합니다. “모든 인간은 본성적으로 인식에 대한 욕망을 갖는다. 다양한 감각에서 오는 즐거움이 그 증거이다. 사람들은 쓸모를 떠나 감각을 그 자체로 즐기는데, 다른 감각들보다 특히 눈을 통한 감각을 즐기기 때문이다.” 푸코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식에 대한 욕망이 인식으로 흡수되었으며, 인식은 인식에 대한 욕망으로 재도입되었다고 분석합니다. 욕망과 인식의 이런 관계는 진리를 도입하면서 가능해집니다. 쓸모를 떠난 감각이 인식과 연결될 때, 그 인식은 다른 어떤 목적과도 관계없이 진리와만 관계 맺게 됩니다. 그 관계를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세 가지 형태의 지식을 배제합니다. 바로 그리스 비극의 위반적 지식, 소피스트적 지식, 플라톤의 상기입니다. 이 세 가지 형태의 지식이 했던 역할들에 대해서는 푸코가 차차 이야기를 풀어 주리라 기대해 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이어졌으나, 인식과 진리의 관계에 대한 그의 낡은 구절을 부정하고 의심한 철학자들도 많습니다. 먼저 욕망 및 인식과 관련해 진리가 맺는 관계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스피노자가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인식에 대한 욕망이 아닌 행복에 대한 욕망을 위해, 인식과 진리의 관계를 정교하게 체계화합니다. 니체는 의지-인식-진리의 관계를 문제 삼으며, 인식의 형식과 법에서 인식에 대한 욕망을 해방시키려 했습니다. 푸코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인식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식의 바깥을 인식하려는 니체의 시도를 발전시켜, 진리를 전제하지 않고 진리에 접근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제한된 인식이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고 역설한 칸트를 넘어서야 합니다. 칸트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다시 스피노자를 죽여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지요. 진리와 인식의 함축관계를 해체하려는 니체의 작업은 이런 방식으로 계속됩니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어딘지는 몰라도 일단 이 책이 끝날 때까지는 푸코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아야겠습니다. 힘들지만, 함께 해 주실 거죠?
댓글목록
아라차님의 댓글
아라차
함께 해야지요ㅎㅎ
멋진 후기 감사합니다.
후기 읽다보니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진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푸코를 따라가다 보면
진리의 발견이 아닌 우리를 자유케 하는 진리의 발명으로 나아갈 수 있겠지요.
함께 쭉 갑니다 ㅎㅎㅎ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
혼자 읽을때 미치미치 하고, 세미나에서 같이 헤매는듯 했으나. 어찌댔든 덕분에 잘 간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방대한 내용 앞에서 다들 조금씩 설명해 주지 않았따면 저 혼자 읽기 힘들었을꺼 같아욧 ~
다들 고맙습니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