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틀러 후기] 1장: 5절_정체성, 성, 그리고 본질의 형이상학 +3
다인
/ 2018-05-05
/ 조회 1,579
관련링크
본문
진정한 의미에서 ‘나’는 존재하는가.
우리가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의 본질이라고 상상해 온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어떤 내적 자질이 내내 통용되는 자기 동일성이나 연속성으로 '나'를 확립하는가.
그래서 결국 나의 정체성이라고 상상한 그림은 그릴 수 있는 그림일까.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그리려는 순간 그것은 다른 형태로 바뀌어 있다.
인터넷에 ‘구름’이라고 검색하면 수많은 이미지들이 검색되지만,
우리가 봤던 구름과 동일한 구름은 없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도 매순간 바뀌는데, 보지 못하고 늘 짐작할 수밖에 없는
본질의 형이상학을 어떻게 확정지을 수 있을까.
자연과 사람을 나누고, 사람과 여자를 나누듯이 페미니즘에서 무수한 경계나누기를 시도하면서
페미니즘은 확장되지 못하고 한정(제한) 되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질문을 합니다.
...
여전히 알듯 말듯^^;; 그래서 긴장감을 놓지 못하고, 이 긴장감은 또다른 호기심을 불러 옵니다. ^^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정체성과 자기동일성의 확립. 본질이라는 것을 전제하는 일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지를
알게 해 주는 시간이었지요.
정체성을 유지하고 자기 안의 동일성을 유지하는 일에 늘 힘겨워했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니까
열심히 해 보려고 했는데,
그런 전제가 부자연스러운 거라는 버틀러의 논의가 얼마나 속시원한지.
다만 버틀러의 논의를 일반적인 페미니즘 비판 논의로 읽으려면 조금 더 세심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경계를 나누는 시도는 페미니즘에서만 있었던 시도가 아니고,
오히려 페미니즘은 그 나누어진 경계 안에서 이루어진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운동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요.
지난 시간에 구조주의나 리비어, 라캉의 이론을 이야기하면서 페미니즘이 왜 경계 안의 작업이 되었는지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몸살은 나으셨지요?
다음주엔 건강하게 뵈어요~
후기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그 시간의 세미나 내용이 조금씩 환기됐어요.
다인님의 댓글
다인
삼월님의 부연설명 늘 감사해요. 덕분에 한걸음?ㅎ 더 들어갈 수 있었네요.
몸은 며칠 푹 쉬었더니 회복되었어요. 금방 뵈어요~
라라님의 댓글
라라
후기와 답글 잘 읽었습니다^^
나누고 나누면서 섬세함을 알아가고 차이를 인정하는게 좋을 것 같은데 편할 것 같은데
나누고 나누면서 위계와 권위라는 이름으로 차별을 강조했던 일들이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