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발제] 훔친 권법으로는 나를 죽일 수 없다 :: 새로 쓴 옛날이야기 0503
삼월
/ 2018-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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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새로 쓴 옛날이야기》 중 일부
<서언>
루쉰은 1926년 혼자 샤먼의 석조건물에 살던 시절에 이 책에 실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기획한 글을 다 쓰지 못하고 중간에 도망쳤다가 13년 만에야 작업을 정리하고 책을 펴낼 수 있게 되었다. 13년 동안 루쉰의 마음과 상황은 달라졌다. 원래 루쉰에게 이 작업은 신화를 소재로 삼아 소설을 써보려는 진지한 기획이었다. 그러다 루쉰이 ‘가련하고 음험한 비평’이라 평하는, ‘눈물로 간청하노니 젊은이여 다시는 이런 글을 쓰지 말라고 호소’하는 글에 대항해 장난을 치고 싶어진 것이다. 여기에 문단의 평가들에 대한 루쉰의 장난스러운, 때로는 날선 비판의 태도들이 겹쳐진다.
<하늘을 땜질한 이야기>
여와는 잠에서 깬 후 무언가 미흡하거나 무언가 너무 많은 느낌이 들었다. 따분함 속에서 부드러운 흙을 쥐어 올리다 거기에 자기를 닮은 작은 것들이 생겼음을 알았다. 의욕과 기쁨 속에서 그 작은 것들을 계속 만들어내다가 지친 다음에는, 등나무 줄기로 흙과 물을 내리쳐 작업을 계속했다. 잠시 쓰러져 잠들었던 여와는 천지가 무너지는 소리에 깨어나는데, 땅이 패여 물이 흐르고, 파도가 일고 있었다. 무언가로 몸을 감싸고 얼굴에 하얀 털이 난 작은 것들이 여와에게 살려달라고 요청했다. 귀찮아진 여와는 그들을 큰 거북이 등에 태워 보냈다. 재앙은 쇳조각으로 몸을 감싸고 어려운 말을 중얼거리는 자들이 벌인 전쟁 때문이었다.
여와는 한숨을 쉬며, 하늘에 나 있는 깊고 큰 균열을 수리하기로 했다. 돌을 주워 모으는 여와의 손을 본 사람들이 냉소를 하거나 욕을 하고, 돌을 빼앗거나 손을 물어뜯었다. 아무 재미도 없이 작업을 반복하던 여와의 가랑이 아래에서 머리에 관을 쓴 자가 청죽 조각을 건넸다. 벌거벗고 음탕함에 빠지는 자를 경계하며 벌하겠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여와는 그런 것에게 말을 걸어보았자 통하지 않을 것을 알고 하늘에 불을 붙여 메워놓은 돌들을 녹이려 했다. 하늘은 새파란 색으로 수리되었으나, 우둘투둘한 감촉이 아직 남아있었다. 기력을 회복하고 작업을 계속하려던 여와에게 재를 실은 바람이 불어와, 여와를 잿빛으로 삼켜버렸다. 여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써 버린 몸’이 되어 해와 달 사이에 쓰려져 누웠다. 여와는 다시 숨을 쉬지 않았고, 천지사방에는 죽음보다 깊은 정적이 감돌았다. 여와의 죽음 이후 자신들만이 여와의 직계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나타났으며, 신선들이 거북의 등을 타고 바다로 나갔다는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한 자도 있었다.
<달나라로 도망친 이야기>
중국 고대의 활쏘기 명수인 예의 이야기. 명사수 예는 너무 많은 짐승을 잡아 죽인 나머지 이제 죽일 짐승이 없어 일 년 내내 까마귀고기만 먹으면서 나름 궁핍하게 살아가고 있다. 더구나 아내인 상아에게 핀잔을 들으며, 맛있는 것을 잡아다 주지 못하는 신세를 한탄한다. 어느 날 예는 사냥을 위해 더 멀리 나갔다가 남의 집 씨암탉을 쏘아 죽인다. 돌아오던 길에는 옛 제자 봉몽이 예를 죽이려든다. 그러나 봉몽은 예를 죽이지 못한다. 예는 ‘훔친 권법으로는 본인을 죽일 수 없’다고 웃으면서 대꾸한다. 그래도 봉몽의 저주에는 기분이 께름칙하다.
집에 돌아온 예는 아내가 자신의 선약을 가지고 도망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사가 준 선약을 먹으면 언제든 하늘나라로 올라갈 수 있다. 분노한 예는 아내가 올라간 달 쪽으로 활을 쏜다. ‘영원히 혼자 낙을 즐기’기 위해 ‘모질게 날 버리고 혼자 날아간 아내를 욕하며 허기를 느낀다. 닭고기 요리와 다섯 근의 떡을 하녀에게 만들어오라고 하고, 말에게는 흰콩 넉 되를 먹인다. 다음날에는 도사를 찾아가 선약을 더 달라고 할 작정이다. 궁술의 달인인 예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예는 왜 아내가 떠나기 전에 그토록 궁핍한 생활을 하였던 것인가. 정작 혼자만 영원히 낙을 즐기기 위해 아내를 버리고 날아가려고 한 것은 자신이었으면서, 왜 진즉에 도사에게 한 알의 선약을 더 달라고 하지 않았는가. 왜 그는 분노를 통해 삶의 활력을 얻는가. 애초에 권법은 누구의 소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