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게문학 읽기] 커트 보니것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 후기 +4
거은
/ 2018-04-27
/ 조회 1,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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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에 출간된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 에 나오는 로즈워터 가문이 재산을 불리는 방식은 2018년 우리나라 재벌가들이 재산을 유지하는 행태와 똑닮았습니다. 마치 이 책이 천민자본가들의 필독서나 매뉴얼이라도 되는 듯.
전쟁 중 총검 제작이나 가축을 사육해 돈을 불리고, 재산을 확장하기 위해 정략결혼을 하고, 씨앗자본에서 점점 물 탄 주식거래나 법망을 피해 범죄를 저질러 막대한 돈을 챙기고, 정치에 입문하고, 시민들에게는 최저임금 보다 못한 값을 지급하는 반면 값비싼 예술작품을 구매하고, 상속세를 내지 않기 위해 재단을 설립해 재산을 유지하는 등등. 1965년에 천민자본주의를 통찰한 커트 보니것의 통찰력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이 재벌들 사이에서 엘리엇은 돌연변이라도 되는 듯 쓸모 없고 버림 받은 자들을 도와줍니다.‘이 미국인들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 아시오? 그들은 더 이상 자신을 보살필 능력조차 없다는 거요. 어디에도 쓰일 데가 없기 때문이오. 강 이쪽의 공장, 농장, 광산은 거의 자동화되었소. 미국은 이제 이 사람들을 전쟁에도 써먹지 않소, 더 이상.’ ‘난 이 버림받은 미국인을 사랑할 거요. 비록 쓸모없고 볼품 없는 사람들이지만, 바로 그게 나의 예술작품이 될 거요.’ 실수로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 죄의식때문인지, 전쟁중 실수로 소방관을 죽인 죄의식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사고 후 다른 재벌들과 달리 엘리엇은 공산주의자라고 해도 무색할 만큼 자신이 재단에서 받는 일정한 돈을 그에게 도움을 구하는 자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도움 받은 자들은 '뭔가 속았거나 조롱을 당했지만, 어떻게 그리고 왜 그런 일을 당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 약간 부루퉁' 하게 돌아갑니다. 엘리엇에게 후원 받은 예술가도 이주 노동자에 대한 진실을 쓰는 것이 아니라 포르노를 쓰게 됩니다. 엘리엇에게 도움을 청하는 자들은 정신적, 도덕적,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었고 엘리엇은 그들에게 돈은 쥐어줄 수 있지만 그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들여다보고 소통하고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서민들과 경계를 짓고 자신들의 계급을 공고히 하는 자본가들과 달리 자본가 계급 안에 있지만 서민들에게 손을 내미는 엘리엇의 시도는 의미 있게 봐주어야 할 행위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의도와 다른 엉뚱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는 계급의 경계를 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비극으로 보여지기도 하고, 단지 엘리엇의 값싼 연민이나 자기위안으로 보여지기도 합니다. 커트 보니것이 엘리엇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음 2부가 무척 기대됩니다.
댓글목록
모로님의 댓글
모로
천민자본가들의 필독서..
적절한 표현이네요 ㅎ
도대체 저도 엘리엇을 통해 무슨 말을 하려는건지 궁금합니다 -_))))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지난 번 나왔던 엘리엇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위해, 왜 그런 삶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네요.
거은님이 발제에 이어 중요한 문제들을 제기해 주셔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많고도 많은 좋은 것들을 나는 사들였다네!
많고도 많은 나쁜 것들과 나는 투쟁했다네!"
엘리엇이 직접 쓴 이 시에서 그가 가진 모순과 갈등이 잘 드러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많은 것을 가진 자로서 불평등한 세계와 대적해 투쟁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그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꼭대기에서 추락하는 자기파괴적인 욕망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이것은 어머니의 죽음과 소방수를 사살했던 트라우마와 연관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다음날이면 다시 그 꼭대기에 올라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지만요.
하지만 거은님의 지적처럼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의 호의는 한계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진정한 동정과 연민은 상대가 느끼는 절망의 높이까지 함께 내려가지 않고서는 위선이나 자기기만으로 빠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엇에게는 어떤 몸부림이 보입니다.
세계와 개인으로서의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음에도
부딪혀 행동하지 않으면 안되는.....그 어쩔 수 없음. 그 내몰림이 처절해 보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혁명이란 이렇듯 내몰려 어쩔 수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엘리엇이 보여주는 그 비정상성.
그 비정상성이 세계에 조금씩 균열을 내고 힘을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요?
앞으로 그의 행보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혁명은 멀고 절망은 늘 가까우니까요......
거은님의 댓글
거은첨엔 엘리엇에 대한 풍자로만 읽혀서 이분법적사고로만 엘리엇을 재단했는데 다같이 얘기하고 보니까 자신이 속한 세계안에서의 혁명과 균열을 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고 엘리엇이 애쓰는 것도 알것같아요. 서로 토론하면서 나의 시각을 넘어 다른 관점으로도 생각해볼수있는것 같아서 좋습니다ㅎㅎ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함께 읽고 얘기하는 기쁨이 있죠.
저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