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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후기] 아침꽃 저녁에 줍다. - 마지막 :: 0418(수) +2
토라진 / 2018-04-22 / 조회 1,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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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씨, 있잖아요......
  
 이번에 읽은 부분에서 루쉰은 어릴 때부터 외부로 밀려나가게 된 사건과 그 사건들 속에서 만난 사람들을 떠올리고 있다. 연부인과 후지노 선생, 판아이눙이 그들이다.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상식적인 인물이 아닐뿐더러 전형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연부인은 정이 많지만 위악적이고 장난기가 심하다. 여느 동네 아줌마들의 오지랖과는 다르다. 후지노 선생은 일본인임에도 루쉰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쏟는다. 하지만 주변머리도 없는 후지노 선생이 루쉰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를 도무지 찾을 수 없다. 판아이눙은 루쉰에게 반감을 가졌음에도 나중에는 루쉰에게 크게 의지한다. 반혁 운동을 함께 했지만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지도, 제대로 할 일을 하지도 못한 채 불운한 죽음을 맞이한다.


 루쉰의 글을 읽으며 나는 기억 속에 묻혀 있던 한 사람을 떠올​렸다. 오래 전 미국에 있었을 때 만났던 딸의 친구 엄마인데, 나는 그녀를 진아씨라고 불렀다. 그녀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집을 청소하고 아이들을 깨워 책을 읽게 한다고 했다. 미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것이 낯설었을 테지만 그녀는 어디서든 당당했다. 운전을 할 때 자기 앞에 끼어드는 미국인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이기도 했으며 서점에서 불친절한 백인 점원을 골탕 먹이기 위해 책을 구입하고 환불하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반면 지인들과 함께 있는 곳에 그녀가 나타날 때면 어디든 분위기가 밝고 유쾌해졌다. 미용비를 아끼려고 집에서 가위로 잘랐다는 커트 앞머리를 손으로 치켜 올리며 웃는 그녀의 웃음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았다. 
 하지만 그녀는 한 때 내게 금전적 손해를 입히기도 했다. 한국에서 오신 어머니가 허리가 아프다며 우리 가족의 보험증을 빌려가 지나치게 많은 진료를 받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나는 미국에서 함께 했던 어떤 사람들보다 그녀가 가장 보고 싶다. 그녀가 가진 대책 없는 자신감과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은 일상에 활력을 주었으며 그녀의 에너지에 전염되어 나는 힘을 얻곤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것은 그 때를 떠올리며 한참이 지난 후에 알게 된 것이었다. 
 
 루쉰은 그가 거론한 인물들에 대해 윤리적인 판단을 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과 얽힌 사건과 행동들을 기록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의 진술에는 ‘사람’자체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을 향해 냉혹하리만치 감정적인 분노를 쏟아내곤 했지만 말이다. 어쩌면 루쉰은 이성적인 지성인이 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무지한 야만인이 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이미 그는 자신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불가능성은 자신을 해부하는 그의 태도에도 비롯되는 것 같다. 타자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다시 자신을 반추하는 과정을 반복했을 테니 말이다. 그 과정 자체가 지성적 작업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 과정 바깥으로 벗어나려 했을 것이다. 그가 어릴 때부터 학교를 옮겨 다니고 새로운 학문을 받아들이면서 끊임없이 어디론가 탈주하려 했던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세계는 무한하지만 어떤 긍정도 섣불리 할 수 없는 모호하고 불분명한 것이었다. 언제나 실패를 가져다주는 고약한 지뢰밭 같은......그러므로 그는 탈주할수록 질곡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비애는 아마도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아씨......이름마저 사람과 너무 잘 어울렸던 진아씨. 루쉰을 읽으며 떠올렸던 그녀를 언젠가 다시 만나면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녀에게서 본 ‘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이야기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루쉰처럼 철저하지도 못하고 지성적이지도 못할 뿐 아니라 야만인이 되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러면 나에게 남은 질문들은 어떤 것이 있는 것인지......
 나는 자꾸 진아씨.....이름만 되뇌이게 된다.
 진아씨.....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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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저도 이번 세미나 분량 글을 읽을 때, 사람에 대해서 떠올리게 되었어요.
사람을 알아보고 관계를 맺고,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무엇일까.
나에게는 후지노 선생, 혹은 판아이눙 같은 동료가 있을까. 뭐 그런 생각들이 지나갔지요.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고, 기억 속에서 누군가를 불러내는 일이 무엇일까,
세미나 시간에 쫓겨다니듯 여러 고장을 떠돌던 당시 루쉰의 상황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었는데,
그 상황과 맞물려서 옛 기억, 옛 사람들에 대해 적었을 루쉰의 마음을 조금 들여다보아도 아직 모르겠어요.
토라진 님이 후기에서 던져준 질문과 함께
루쉰세미나 한 주 비는 시간 동안 그 마음을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네요.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댓글의 댓글

저 역시 기억과 그 쓸쓸함에 대하여......
그 속의 '사람'에 대하여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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